페이지의 첫 줄을 틀리자마자 드는 생각. (91번째 삼일)
독서노트를 작성하다가
글씨를 틀리고 말았다.
한 글자쯤이야 눈에 잘 띄지 않겠지 하며
다음 한 줄을 다시 써 내려갔다.
그리고 다시 한 글자를 틀리고 말았다.
잠시 펜을 내려두고 고민했다.
"한 장을 찢어, 말아?."
하지만 그 페이지를 찢어버리기엔
앞 장에 먼저 기록된 독서 기록이 남아 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한 장을 찢고
먼저 기록한 페이지를 옮겨 적을까 고민하던 나는
그냥 다시 이어서 한 줄 한 줄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비록 틀린 글씨 때문에
끄적거린 윗줄과 그 윗줄이 계속해서 눈에 거슬리긴 했지만
일단은 그냥 모른척하기로 했다.
책을 읽으며 내게 공감을 불러온 구절과
그 구절을 통해 느꼈던 그때의 감정들과 생각.
그렇게 계획했던 내용들로 한 페이지를 채우고 페이지를 한번 훑어봤다.
생각했던 것처럼 깔끔한 기록은 아니었지만
그냥 그런대로 봐줄만했다.
사실 독서노트라는 것이 정갈하고 예쁘게 기록되는 것만이 주된 목표는 아니다.
하지만 하얗게 비어있는 페이지를 검은색 글씨로 깔끔하게 채워나가는 과정에 있어
조금씩 비뚤어지고 끄적거린다는 것이
성격상 썩 내키는 일이 아니었을 뿐이다.
다분히 독서노트를 작성할 때뿐만이 아니라
다이어리나 필사를 할 때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다.
하지만 지나고 보면 그저 그날의 기록들일 뿐이기는 했다.
애초에 내가 추구하던 바는 매일의 기록들이 쌓여 한 권이 채워지는 일이다.
오히려 완벽하게 한 페이지를 채워가려던 내 욕심이
그 한 권을 만드는 일에 방해가 되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그때의 티끌 같은 끄적임이
내가 진짜 목표를 이뤄가는데 방해가 되고 있었다.
물론 요즘은 수정하기 쉽게 수정액이나, 수정테이프가 나와 있기도 하지만
사소한 곳에 너무 신경을 쓰다 보면
결국 이루려던 바를 이루지 못하고 금세 지쳐버릴 수도 있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생각해 보고
작고 사소한 문제쯤은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는 여유 또한 필요한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