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과 배움이 늘 좋은 것만은 아니다. (91번째 이일)
어릴 때는 이토록 비를 싫어하지는 않았다.
정확히는 비가 싫다기보다
비 오늘날의 습기와 번거로움이 싫어졌다는 말이 맞지만.
어릴 때는 비가 오면
신발이 젖어도 옷이 젖고 습해도
그저 물웅덩이 근처에 쭈그리고 앉아
색색의 우산을 모아 만든 우산집 아래 모여 놀았다.
편히 눕지도 움직이는 것이 수월하지도 않았지만
그때는 그 집이 그렇게도 좋을 수가 없었다
그런 내가 자라면서
비를 싫어하게 됐다.
나는 자라면서 천진난만한 웃음과
별거 아닌 것에도 기뻐하는 낭만을 잃어갔고
대신에 운동화가 젖으면 잘 마르지 않고 냄새가 나며
그것들을 쾌적하게 만들기는 아주 어렵다는 사실과
그 과정이 매우 번거롭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모두 자라면서 터득한 것들이고
그 배움의 과정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 배움 덕분에
나는 좋아하던 일이 싫어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시간이 가고 경험을 통해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많을 것들을 알게 되고
그 덕분에 취향이라는 것도 생기기 마련이지만
때로는 그것들을 알기 전의 모습이 더 낫다고 느껴질 때도 있다.
그때의 나는 그저 웃고 떠들고 기뻐했다.
지금은 어떻게 해도
그날의 온전한 기쁨을 그대로 누릴 수 없다는 것이
조금 아쉬워지기도 한다.
비 오는 날 우산집 아래에 모여 놀던 그때의 천진난만한 나 대신
물 웅덩이에 젖을 신발과
버스 안에서 우산을 통해 흐르는 물줄기를
더 걱정하는 지금의 내가
조금 안타까워지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