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걸 언제 다 먹지. (92번째 이일)
빈틈없는 냉장고를 바라보며 드는 생각은
"아, 이걸 다 언제 먹지." 싶은 생각이다.
아이러니한 것이
냉장고를 채우기 위해 쇼핑을 하다가도
적당히 비어 있는 냉장고를 원하기도 한다.
막상 점점 채워져 가는 냉장고를 보면 한숨이 나온다.
처음부터 이렇게 꽉꽉 채우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빈틈없이 채워져 있는 냉장고를 보고 있으면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해치워야지 하는 생각에 머리가 빠르게 돌아간다.
한 톨의 마늘도 버리지 않겠다는 일념에서이다.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생각이지만
못 먹고 버리는 것이 어느 날부터인가 너무 아깝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오래도록 잠들어 있는 재료를 활용해 무엇이든 만들어 댔고
그러다 보니 당연히 살이 찌기도 했다.
이래서 엄마들의 살이 늘어가는 거구나 싶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렇게 남겨진 음식들로 내 살을 찌워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든 생각은 완전히 비워질 때까지
소비를 멈추는 것이었다.
어쩌면 당장 필요한 하나를 구매하기 위해
언젠가 필요할지도 모르는 다른 것들도 함께 구매하곤 했었던 것 같다.
주말이 다가오면 오랜만에 함께 먹을
주말의 밥상을 위해 신선한 재료를 구매했고
그러다 보면 조금씩 남은 재료들은 조용히 뒤로 밀려나곤 했다.
결국엔 우리의 소중한 한 끼를 위해 식재료들을 사들이는 일이
시든 재료로 냉장고를 채우는 일이 되어 버린 것이다.
언젠가 필요할지도 모르는 것들이란
지금 당장은 필요하지 않은 것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냉장고 속에서 시들게 하는 일은 이제 그만하고
무엇이든 사기 전에 비우는 일이 먼저가 되게 해야 할 듯싶다.
그것이 진짜 신선한 재료로 우리의 소중한 한 끼를 차리는 일에 더 도움이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