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92번째 삼일)
나에게는 안 좋은 습관이 하나 있다.
물론 따지고 들면 그것이 하나뿐이겠냐만은
그중에서도 모두가 반기지 않을 습관 중에 하나.
뭔가 일이 꼬였을 때 내 탓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좋게 말하면 나를 탓하지 않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나 이외의 누군가를 탓하는 것.
두가지 의미이지만 결국은 하나의 방법.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매사 나를 그 책임에서 배제시킨다는 것이
나의 미래를 위해 좋은 일이 아니라는 것쯤이야
당연히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생각으로 일이 벌어진 순간
잠시나마 나를 다독이고 진정시키기에는
나쁘지 않은 것도 같다.
그 생각이 계속해서 나를 나태하거나 반복적인 실패로 이끌어 간다면
그것만큼 불행한 인생이 아닐 수 없겠지만
일단은 나를 너무 몰아붙이지 않는 것.
정확히는 누구도 탓하지 않는 것.
그 태도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나는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순간적으로 많이 위축되는 사람이다.
그 지경이 되면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판단력이 흐려지곤 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되면
그 일을 해결하고 수습하는 것이
제일 우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되면
나 때문에 모든 일을 그르치면 어쩌나 하는
내가 결국 모든 것을 망쳐버린 것 같다는
자괴감이 제일 먼저 드는 사람이다.
그런 생각들로 얼어붙어있는 나를 선택하기보다는
어쩌면 내 탓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우선 택하기로 한 것이다.
내가 아닌 누군가의 탓으로 생긴 일이라고 생각하면
어떻게 수습해야 하는지 이성적으로 떠올릴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차분하고 냉정하게 일을 처리한 뒤에
스스로에게 책임을 물어도 늦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나의 탓을 하는 일이 되겠지만
잠시 그 책임을 회피하는 것.
그것이 내가 예상치 못한 일을 마주했을 때
그것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다.
잠시나마 이성적으로 생각하며
자괴감에 빠진 스스로를
마구잡이로 몰아붙일 일이 없다는 것은
나에게 나쁘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모두가 입을 모아 좋지 않다고 말하는 이 습관을 유지해보려고 한다.
조금 이기적이고
어찌 보면
나를 너무 관대하게 생각할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뭐 어떤가.
고작 잠시동안의 생각 따위가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도 아닐 텐데.
그런 이기적인 생각으로
나는 나를 몰아 붙이지 않는 법을 선택하기로 했다.
누군가는 이런 나를 향해 손가락질 할 수도 있겠지만
그저 나는 잠시 올바른 길을 잃을 수도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