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들 무사히. (93번째 일일)
습한 계절 앞에 서서
바깥의 창문을 열지도
습기 가득한 욕실문을 열어두지도 않았던 그날.
내 바람과는 다르게 침대 매트리스는 눅눅하게 젖어 있었다.
자기 직전 간신히 뽀송함을 유지했던 몸은
잠시 눅눅한 침대와 맞닿았을 뿐임에도
군데군데 끈적한 불쾌함이 솟아난다.
장마가 코앞에 다가 온 요즘의 날씨는
내가 아무리 뽀송함을 유지하려 애를 써도
쉽사리 내 노고를 알아주지 않는다.
꽁꽁 닫아둔 문틈사이로
결국 습기가 스멀스멀 기어 들어온다.
습기에도 색깔이 있었다면
지금쯤 온 집 안이 불쾌한 색으로 칠해졌을 것이 분명하다.
이제부터 꼼짝없이 한 달쯤은 이런 색으로 가득 찬 공간에서 생활해야 한다.
매년 겪어야 하는 일이지만 참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진짜 장마가 시작되면
이런 나의 불쾌함 따위는 그저 얕은 푸념에 불과하구나 싶어 질 때가 있다.
고작 집 안에서 쾌적함이 조금 사라졌다는 사실에
아침부터 얼굴을 찌푸리던 내게
매년 이맘때면
그칠 줄 모르고 퍼붓는 비에 집을 잃은 사람들과
보이는 것마다 통째로 날려버릴 듯한 태풍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
그들이 학교나 관공서에 모여
똑같은 모양의 얇은 텐트로 각자의 집을 대신하며
모든 걸 잃고 망연자실하고 있는 모습들은
나의 푸념이 그저 투정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게 했다.
그때가 되어서야 나의 불쾌함마저
누군가는 부러워할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올해도 배부른 불쾌함이 느껴지는 것을 보니
작년 그맘때가 다가온 듯싶다.
부디 모두가 무엇도 잃지 않고 이때를 잘 보낼 수 있기를.
그저 시간이 지나 적당히 불쾌한 장마였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