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에게도 백 퍼센트 공감은 힘든 법이다. (93번째 이일)
나와 남편은 둘 다 F 성향의 사람들이다.
둘 다 F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평소 하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우리는 영락없이 F 가 대부분인 사람들이구나 싶었다.
그런데 그런 나도 가끔 T 가 되는 순간이 있다.
공감보다는 상황을 직시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사람.
내가 그다지 마주치고 싶어 하는 사람의 모습은 아니지만
오히려 내가 그런 모습이 불쑥 튀어나오는 순간이 있다면
바로 남편이 하루의 힒듬을 토해내는 순간이다.
남편은 하루 일을 마치고 퇴근할 무렵이면
항상 전화를 걸어온다.
오늘 있었던 일들을 주고받으며 하루를 마무리하곤 하는데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안 좋았던 일들 또한 이야기하게 된다.
처음엔 나도 그런 일이 있었냐며 같이 공감하고
때로는 분노하곤 하지만
그의 고충이 길어질수록 나는 점점 한계에 다다르고 만다.
그렇게 나도 목소리가 커지며
대화는 서로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만다.
남편 대신 온갖 얕은 수의 해결방안을 제시하며
어쩌면 바닥 난 나의 인내심을 드러낸 체
남편을 다그치고 있던 걸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는 해결방안을 제시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그저 그의 이야기가 답답했을 뿐인지도 모른다.
막상 내게 닥친 상황이라면
그저 나도 남편과 다르지 않았으리라는 것은 알지만
기분 좋게 저녁을 보내려던 상황에서
어딘가 불만스러운 말과 말투를 듣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부부가 살다 보면 정말 많이 겪게 되는 순간이다.
각자의 고된 하루를 보내고
그 하루에 대해 부부간에 고충을 털어놓다 보면
결국 누구 하나 '이제 그만 좀 했으면' 하는
순간에 다다르고 만다.
부부사이를 떠나서 타인의 고충을
백 퍼센트 공감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자신이 집접 겪고 느껴야만 모든 것을 공감할 수 있다.
처음엔 분명 적절한 태도로 공감하며
잘 이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한계점에 도달하고 나면
결국 이야기를 끝내기 위해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등의 회피를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때부터는 공감보다는
해결방안을 중심으로 한 대화가 흐르고 만다.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해 보면
이러한 대화의 끝이 상대에게
서운한 마음으로 남겨질 것이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나의 감정이 앞서 상대의 감정에 대해
공감하고 싶어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종종 갑이 되기도 하는
남편과의 관계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그때는 마치 나는 F가 아니라 대문자 T가 된 것과도 같다.
누군가를 끝까지 공감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 맞다.
하지만 그 대상이 나의 공감을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면
그들에게만큼은 조금 더 참아내고 조금 더 귀 기울이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