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이를 미워하지 않는 방법. (32번째 삼일)
어느날 퇴근 후 돌아온 남편이 갑자기 미워졌다.
일 잘하고 돌아와서는
괜히 심술을 부리는 내가 이상하기도 했을 것이다.
주방에는 미처 끝내지 못한 설거지와
마른 지 꽤 되어 보이는 건조대 위 빨래들과
어느새 꽉 채워진 분리수거함.
남편은 슬슬 눈치를 보며
정리되지 못한 채 널브러진 것들을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을 보니
어딘가 속이 시원하기도 했지만
스스로 못났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남편이 없었다면
아무렇지도 않게 내가 했을 일들이다.
신혼 초에는 각자가 손해 보는 느낌이 들어
"어디까지는 내가. 나머지는 네가."를 외치며 싸워대기도 했다.
이른바 신혼 기싸움이라고들 하는데
정말 유치해지는 순간이다.
그 순간만큼은 나 자신이
이 세상의 가장 불쌍하고 힘든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상대로 하여금
조금의 가사라도 더 짊어지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기싸움도 차근차근 줄어들게 된다.
조금씩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고
자연스럽게 역할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유치한 싸움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런 마음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내가 일을 잠시 쉬게 되면서
상대적으로 시간과 체력이 많아지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가사 일의 많은 부분을 내가 담당하게 된 것이다.
나도 여유가 되는 사람이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남편의 퇴근과 함께
그런 생각은 싹 사라지고
집에는 유치한 어린아이만이 남아버렸다.
남편이 없는 동안은 아무런 감정의 동요 없이 혼자 잘 지냈는데
왜 남편의 얼굴을 보자마자
나는 아이가 되는 것일까.
그래서 그냥 혼자라고 생각해보기로 했다.
더불어 남겨진 일들도 나의 일이라고 생각해보기로 했다.
어차피 나의 일이라 생각하니
조금 덜 억울해졌다.
그리고 조금 덜 원망하게 됐다.
어차피 인생은 혼자라는 말이
나에게도 영향을 미칠 줄은 몰랐다.
부정적인 의도로 남편을 비꼬기 위함이 아니다.
생각만으로도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을 수 있다면
그저 좋겠는 마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