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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린 잎사귀.

벌레로부터 어린잎을 지키자. (4번째 이일)

by 김로기

꿈을 꾸었다.

별 다를 것 없는 하루였고, 늦지 않은 시간에 잠자리에 들었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보통의 날들 중 하루였다.

웬일인지 기분 나쁜 꿈을 꾸었고

그렇게 눈을 뜨고 말았다.

아주 아주 울창한 숲 속을 헤매다

나뭇가지 하나를 잘못 건드려서

온몸에 벌레를 뒤집어쓴 꿈.

한 번도 본 적 없던 작은 벌레들이 온몸을 기어 다니는

소름 끼치는 느낌 그대로 잠에서 깨고만 것이다.

누구라고 벌레를 좋아하겠냐만은

그 순간은 정말 머리끝까지 소름이 돋았다.

나는 베란다에 작은 식물들을 키우는 걸 좋아하고

그 잎사귀 안에서 연둣빛 새잎이 돋아나는 것을 보고 있으면

그저 흐뭇한 사람이다.

초록의 즐거움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작은 레몬나무 끄트머리에 눈길이 갔다.

투명하게 초록이던 어린잎의 연약함을 알았는지

이파리 아래로 작은 벌레들이 한두 마리 보이기 시작했다.

"감히."

처음엔 눈에 보이는 대로 모두 잡아 없앴는데

날이 갈수록 개체수가 점점 늘어나는 게 눈에 보였다.

물도 뿌려 보고, 약도 뿌려 보고

몇 날 며칠을 애써 보았지만 그때뿐이었다.

그때부터 아끼는 마음이 조금씩 식어 갔다.

작은 새잎 하나에도 크나 큰 애정이 가던 나의 레몬나무는

그렇게 내 마음 한가운데서 조금씩 벗어났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날의 작은 벌레들이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도 않았을

고작 그것들이.

내가 아무리 아끼는 무엇이라도

한 순간 마음에서 흘러 버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했다.

그것이 지금은 작은 레몬나무 한그루지만

어떤 소중한 것들이 내게서 멀어질지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나로부터 멀어지게 할 수 있는 것들은

벌레 한 마리보다 더 작은 무엇일 수도 있을 테니까.

방심하지 말자.

어디서 어떻게 나의 어린잎을 노리고 있을지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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