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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롱 어린양의 기도.

염치없지만 그럼에도 부디 닿기를 바라며. (53번째 삼일)

by 김로기

나는 뱃속에서부터 성경을 읽고 말씀을 들었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계속된 신앙생활은

나이를 먹고 나의 의지가 뚜렷해질 무렵 중단되었다.

일요일엔 교회대신 가고 싶은 곳이 많았고

성경대신 읽고 싶은 책이 많아졌다.

점점 나는 교회와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요즘 들어

그런 내가 두 손을 모으게 되는 날들이 있다.

나 같은 나이롱 어린양의 기도를 들어주시기는 할까 싶지만

그럼에도 나의 기도는 꽤나 진지하다.

내가 미워지는 날.

바닥까지 주저앉은 나를 아무도 구원하지 못할 것 같은 날.

그런 나를 부디 다시 일어서게 해달라고 빌고 싶은 날.

그런 날엔 가만히 손을 모은다.

때론 조용히 눈을 감기도 한다.

나의 기도의 제목은 대부분 나를 지켜달라는 내용이 많다.

내가 필요한 순간에만 누군가를 찾아대는 것이 염치없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내가 마음이 힘들어지는 순간은 어김없이 기도를 하곤 한다.

내가 필요한 순간에만 기도를 하는 것처럼

기도의 내용 또한 이렇게 이기적일 수가 없다.

"나는 지금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습니다. 부디 미워하지 않게 해 주세요."

어찌 보면 남을 향한 기도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내 마음 편하자고 조르는 기도일 뿐이다.

주변에 기쁜 일에 진심을 다해 기뻐하지 못하고

안 좋은 일에 뼈 속까지 슬퍼하지 못한다.

그런 나에게 실망하는 날이 늘어가고

그렇게 점점 주저앉는 일이 많아진다.

그래서 나는 요즘 무턱대고 기도를 한다.

나의 모든 마음이 진심이 되어 다른 이들에게 전달되기를.

나의 이기적이고 못된 마음이 부디 사라지기를.

그래서 내가 느끼는 죄책감이 조금 줄어들기를.

요즘 들어 부쩍 두 손을 모을 일들이 많아진다.

마음이 또다시 어려움에 처했다는 뜻이다.

너무나도 이기적인 어린양의 기도가 닿기를 바라며.

오늘도 두 손을 모은다.

"부디, 제 기도를 들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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