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인정하고 표현해야 한다. (57번째 이일)
아직은 부모의 입장이었던 적은 없다.
하지만 자식 중 하나의 입장으로써 느낀 점은
부모에게 있어
자식이라고 다 같은 자식은 아닐 것 같다는 점이었다.
나와 동생을 대하는 엄마의 태도만 봐도
엄마에게 있어 나와 동생은 엄연히 다른 자식이다.
누구를 더 사랑하고 덜 사랑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같은 자식일지라도
부모가 느끼는 자식의 형태가 다를 것이라는 점이다.
물론 똑같이 사랑하는지에 대해 물어도
객관적으로는 판단할 수 없는 존재들이기에
어딘가 묘하게 다르다는 본인만이 알 수 있는 생각을
"당연하다"라는 말 뒤에 꽁꽁 숨겨두었을 테지만.
사람들은 종종 아픈 자식, 아픈 손가락이라는
말을 하곤 한다.
여러 자식들 중 나사가 하나 빠진 듯 불안하고
그래서 안쓰러운 자식들.
같은 뱃속에서 나왔는데 어쩜 그리도 다른 건지 싶을 때는
스스로 잘 살아가는 자식보다
그 안쓰러운 자식들에게 한번 더 손이 가는 모양이다.
가끔은 반대 자식의 입장에서
그 손길 한 번이 서운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나도 이만치 애를 쓰고 노력한 끝에 얻어낸 결과들이다.
그런 노력들이 부모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 같아서
가끔은 서운하다.
다른 집을 봐도 매번 의지하는 자식에게 의지하게 되고
더 챙기는 자식은 뒤로라도 더 챙기게 되는 것 같다.
자식의 입장에서는
어찌 보면 이 모든 일들이 불공평하다고 느껴지지만
그럼에도 내색할 수 없는 이유는
나는 부모에게 든든한 자식 이어야 하고
계속해서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런 알 수 없는 책임감이
부모로 하여금 의지가 되게 했는지도 모른다.
때로는 부모를 향한 나의 마음이
부모의 마음에서 한번 더 가공되어
다른 자식에게 향하고 있는 억울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물론 이렇게 말하고 있어도
부모의 애정을 모르고 자랐다고는 말할 수 없다.
나 또한 충분히 사랑받았고 그들의 손길로 자라왔다.
하지만 때론 서운하고, 때론 억울한 감정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점이다.
부모는 자식에게 본인을 투영한다고 하던데
자신의 안쓰러움을 모른 척하기 힘들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어떤 자식을 향해 손을 뻗기 위해
적어도 다른 자식에게
등을 돌리지는 않으려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부모도 인정하고 표현해야 할 것이다.
자식이지만 어쩔 수 없이 다른 자식이라는 것을.
그래서 때로 고마워하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