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 가면.

날 것이 있다. (74번째 이일)

by 김로기

이미 이사를 온 뒤지만

다음에 이사를 가게 된다면

시장 근처로 가야겠다 싶었다.

나는 친절한 지붕 아래 마트보다도

투박한 시장을 좋아한다.

시장에서 팔리는 물건들의 정서가 좋다.

누구에게도 과하지 않고

천 원짜리 한두 장이면 입에 넣을 무언가를 찾을 수 있다.

내가 사는 물건들이야

고작해야 반찬거리 몇 가지

과일 야채 몇 가지뿐이기도 하지만

나 이외에 많은 사람들에게도

시장은 그런 느낌이다.

사실 요즘은 따져보자면

인터넷이나 마트가 더 싼 경우도 허다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시장을 좋아하는 이유는

날 것을 구경하기 위해서다.

마트에 예쁘게 포장되어 진열된 과일이나 야채보다

투박하고 허름한 박스 위에 놓인

과일들이 더 탐스럽고 보기 좋다.

그리고 사람들 또한 유니폼의 각 잡힌 직원들이 아니라

제마다 개성 있는 모습의 상인들이다.

그래서인지 그리 크지 않은 시장도

꼼꼼히 둘러보면 한 시간은 족히 걸리곤 한다.

그곳에 있으면 어떻게 시간이 가는 줄 모른다.

세상 내게 놀이터와도 같다.

한참을 돌다 허기진 느낌이 들거든

오뎅가게 앞이나 호떡 장사 앞에 서면

어렵지 않게 큰돈을 들이지 않고 허기를 채울 수도 있다.

봄이 되고 제철 식재료가 바뀌어가는 지금.

시장에도 봄이 온다.

마트에선 느낄 수 없는

봄의 향과 모습들에 벌써부터 신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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