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을 되찾기 위해.

당장 오늘부터. (120번째 이일)

by 김로기

헐렁한 바지를 입다 보면 그에 맞게 살이 불어난다.

집의 크기를 늘려가면 그만큼 살림살이가 늘어가고

냉장고를 비워놓으면 그만큼 장바구니가 무거워진다.

이쯤 되니 여유가 생기면

그 공간은 채워지고야 만다는 것이 당연한 이치가 된 듯하다.

그리고 그것을 채워가지 않는 것에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가끔은 가득 차지 않은 것으로부터 오는 편안함이 있고

빽빽하게 들어찬 것으로부터 느껴지는 두려움이 생기기도 한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잠시 집안을 둘러보자면

싱크대 선반부터 소파 위까지

여백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고 그 위에 놓인 것들이 당장 필요한 것들도 아니다.

잘 생각해 보면

저들 중 몇몇을 제외하고는

이전에 사용 후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렇게 하나둘 눈에 보이는 곳으로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부터

집안에서는 서서히 여백이 사라졌다.

예전의 여백을 되찾기 위해서는

절실한 마음가짐과 함께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내가 이토록 집안 곳곳을 채워가고 있던 것에는

무수한 핑계와 갖은 이유들이 난무하지만

결국엔 모두 귀찮다는 한 가지로 대체가 가능한 것들이다.

이제는 그냥 내버려 두기에는 조금 멀리 왔을뿐더러

분명한 목적 또한 생기고 말았으니

실행으로 옮길 때가 되었다고 본다.

마음의 여백마저 사라지기 전에 말이다.

비록 집안 곳곳이 가득 채워졌던 시간처럼

비워내는데도 꽤나 시간이 필요할 듯싶지만

지금 시작해야 늦지 않을 것 같다.

당장 오늘부터

이전의 여백을 되찾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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