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뛰어넘게 할 누군가. (120번째 삼일)
일단 저질러야 가능한 것들이 있다.
아무리 내가 J성향이 가득한 유형의 사람이라고 하지만
그런 나조차 계획하지 않고 우선 저질러버릴 때가 있다.
저질러버린다기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저히 계획이 서질 않기 때문에
실행에 조차 옮기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한 달의 수입을 계산하고 그에 맞는 지출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떤 달에는 분명 구멍이 나고 만다.
고정비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절대 줄일 수 없는 무엇인가가 그 구멍을 키우고 있다.
매달 나가는 돈은 비슷한 처지인데
들어오는 돈이 오락가락하다 보면
어떤 달은 한참을 가계부 앞에서 입술만 뜯고 앉아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삶의 이치라는 것이
마냥 구멍 난 신세만이 계속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조금은 알고 있기에
그럭저럭 유지되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그런 우리에게는 자녀 계획을 세운다는 것이
그야말로 사치에 불과했다.
한 달에 아이에게 들어가는 돈을 따져보면
도저히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서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을
계획 하에 두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들의 부모도
우리를 잘 낳아 잘 키워왔다.
물론 지금의 시대가 예전 우리가 나고 자란 시대와는 다르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그때라고 아이 하나 둘 키워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도 지금의 우리처럼 막막하고 아득한 앞날을 두고
너무나 당연하게 우리를 키워 냈을 테니까.
나와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을 보며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깨닫곤 한다.
하지만 그들 또한 말한다.
자녀 계획이 있다면
일단 낳고 보는 것이 맞다고.
하나부터 열까지 따지고 들면
불가능한 일을 벌이는 것이 틀림 없지만
일단 세상 밖으로 나온 아이를 위해서는
그들 스스로 생각했던 자신들의 역량보다
훨씬 더 대단한 능력이 숨겨져 있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생기노라고.
그러니 너무 따지기보다는
일을 벌이고 하나씩 해결해 나가면 된다고 말이다.
그런 그들의 말에 조금씩 용기가 생기곤 한다.
그리고 기대해 본다.
내가 생각했던 나를 뛰어넘게 할 그 순간에 대해.
또한 그 순간을 만들어 낼 누군가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