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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자는 여름휴가가 없다.

어느때보다 더 뜨거운 여름을 보내기 위해. (95번째 이일)

by 김로기

매년 이맘때쯤이면 어쩌면 이보다 조금 더 일찍

여름휴가 계획을 세우곤 했다.

날이 더워지기 전에 올해의 여름 휴가지를 정하는 일은

푹푹 찌는 더위를 기다리는 유일한 이유이기도 했다.

바닷가 앞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사 먹으려 해도 늘 사람이 많고

휴양지 주변이라면 어딜 가나 한참을 기다려야 한 끼를 먹을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여름의 바다는 몇 개월 전부터 우리를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다.

뜨거운 햇빛에 잔뜩 인상을 찌푸린 사진임에도

그때의 기억은 언제나 좋았다.

그런데 올해는 그런 여름을 기대하기는 조금 어려울 것 같다.

작년과 올해 가장 달라진 것이 있다면

나의 퇴사와 남편의 이직이다.

9 to 6의 규칙적인 5일 근무 직장생활을 하던 무렵에는

여름휴가 정도는 언제나 우리의 계획 아래 있었다.

몇 개월 전부터 휴가지를 정하고 숙소를 예약하는 일쯤이야 어렵지 않았다.

어찌 보면 여름이 다가오면 당연히 해야 할 일중에 한 가지이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프리랜서에 가까운 남편의 직업 탓에

두어 달 뒤의 일을 계획하기란 무엇보다 어려운 일이 되었다.

물론 프리랜서라는 직업 특성상 시간을 조율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고도 볼 수 있으나

어찌 보면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일이기도 하기에

여름휴가를 대비해 언제 일이 생길지 모르는 시간을 미리 비워두기에는

우리는 아직 초보 자영업자에 가깝다.

그런데 매년 이맘때 원하는 날짜에 원하던 숙소가 마감되면 어쩌나 초조했던 것과는 달리

오히려 느긋하다.

숙소를 예약할 생각에 전전긍긍하지도 않고

최대한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는 동선으로 이동하기 위해 고민할 필요도 없다.

막상 여름이 되고 저마다의 휴가를 보내는 사진들이 퍼질 때쯤엔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저 고요하고 여유로운 지금도 나쁘지만은 않다.

누군가는 그저 먹고사는 일에 급급해서 여름휴가 같은 것은 꿈도 꾸지 못하는 것을

스스로 위로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하겠지만

우리는 올해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바가 있고

두 사람 모두 그것을 위해 열심히 애쓰는 여름을 보내기로 한 것 뿐이다.

그렇게 보낼 여름도 썩 나쁘지만은 않을 것 같다.

물론 뜨거운 태양 아래

하나같이 부채질을 하며 줄을 서 있는 사람들 틈에 끼어 있지 않거나

뜨겁게 달궈진 모래사장 위에 발을 동동 구르는 일을 기대하기는 어려워졌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조금 특별한 여름을 기다리고 또 기대한다.

그리고 그 여름에도 물론 우리는 함께일 것이기에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여름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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