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낯설고 어려운 일. (95번째 삼일)
평온한 저녁을 보내며 티브이를 보고 있었는데
익숙하지만 결국엔 낯선 누군가로부터 전화가 왔다.
사촌 오빠였다.
특별히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사촌들에게서 전화가 오면 어딘가 모르게 불편한 마음이 든다.
어릴 때는 대부분의 사촌들이 멀지 않은 동네에 모여 살았기 때문에 자연스레 자주 보게 되고
그 만남이 불편하다는 생각을 못했었다.
그런데 내가 결혼을 하고부터
어쩌면 그보다 조금 전부터 그들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명절 때나 가족행사가 있을 때면
시댁 위주로 참여하곤 했고
그러다 보니 그들과의 사이는 점점 더 멀어져만 갔다.
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남자 형제들이었기 때문에
나를 빼고는 자연스럽게 그들끼리의 만남이 잦아지게 되었다.
나는 어쩌면 이런 관계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생각했고
그런 생각은 점점 더 내게서 그들을 낯설게 만들었다.
그러다 한 번씩 사촌오빠들에게서 안부전화가 올 때마다
왠지 떳떳하지 못한 마음으로 어렵게 전화를 받곤 했다.
그저 안부인사나 한 번씩 주고받자는 가벼운 통화일 뿐인데도
어딘가 지금 나의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꾸짖는듯한 느낌이 들곤 한다.
자주 보지는 못하더라도
연락이라도 자주 하고 살자는 그들과의 통화는
잠시 나를 쩔쩔매게 하다가도
잘 지내라는 마지막말로 겨우 끝을 맺는다.
사실 이제 나는 그들에게 먼저 전화를 걸고
선뜻 안부를 묻는 일이 쉽지 않아졌다.
무엇인가 굉장히 낯설고 그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할 것만 같은 느낌.
오랜 잠적 끝에 뜬금없이 그들에게 존재를 내비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언젠가는 내가 먼저 그들에게 전화를 걸어
아무렇지 않은 척 안부를 물을 일이 생길 수도 있지만
아쉽게도 지금 그들은 내게 어려운 숙제로 남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