깎아달라는 말.

얼굴이 두꺼워지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다. (100번째 이일)

by 김로기

"깎아 주세요."

여전히 쉽게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말이지만

예전에 비하면 상당히 자연스러워졌다.

나도 아줌마가 되어가는 중인지.

아니면 성격이 변해가는 건지 모르겠지만

종종 그 말이 입 밖으로 터지듯 나올 때가 있다.

물론 아직까지 그 말을 하면서도 떨리고 조마조마하고

그럼에도 한구석 기대하는 마음에 조심스레 내뱉은 말이지만

아직까지는 대차게 거절 당해 상처받은 일이

그다지 많지 않아서 여전히 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나름 승률이 괜찮은 그 말로

단돈 백 원이라도 아끼게 된 셈이니 그걸로 되었다.

한차례 한차례 성공률이 높아질수록

나의 얼굴은 조금씩 더 두꺼워지는 것 같다.

일단 말이라도 뱉고 보는 것이 어느덧 당연해졌다.

물론 정가제를 실시하는 곳이나

전혀 깎아줄 기미가 보이지 않는 곳이라면

나 또한 절대 그 말을 내뱉지 않는다.

그런 눈치는 어느새 이만치 차올라있다.

얼마 전 시어머님이 사주신

남편의 공진단을 몇 알 더 구매하기 위해

한의원의 전화를 걸었다.

한 번에 구매를 했으면 조금 더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었을걸 하는 간호사의 말에

나는 또다시 그 말을 뱉고야 말았다.

"깎아주시면 안 될까요."

어렵게 꺼낸 말인 양 절절한 나의 요청에

오히려 간호사가 더 쩔쩔매는 목소리였다.

결국 여쭤보고 다시 연락을 주겠다던 간호사는

얼마뒤 나의 승률을 조금 더 올리는 말을 전해왔다.

그렇게 나는 오만 원을 더 깎았다.

그리고 나는 그 오만 원으로 일주일 먹을 반찬거리를 구매했다.

예전 엄마의 입에서 나온 깎아달라는 말은 왜 그렇게 창피했었는지 모르겠지만

밑져야 본전인 그 말 덕분에

엄마는 천 원이든 만원이든 더 아낄 수 있었다.

그 돈은 다시 우리 식구의 식탁에 찬거리가 되어 올랐고

엄마는 그걸로 뿌듯했을 것이다.

이제서야 조금 그때의 떨리면서도 기대하던 엄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서로가 기분이 상할 정도의 상황은 만들지 않겠다는 마음은 여전하다.

나이를 먹고 조금씩 경험이 쌓여가며 두꺼워지는 얼굴이

마냥 슬픈 일만은 아닌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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