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겁이 많다.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고, 매사에 남들보다 많은 걱정을 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나에게 자리 잡은 걱정이 하나 있다.
혼자 남겨진다는 것.
아이가 없다는 건.
나의 남편과 나, 둘 중 하나는 미래에 무조건 혼자 남겨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금이야 마흔이 다 되어가는 나이임에도
밥은 먹었는지 아픈 데는 없는지 궁금해하시는
부모님이 곁에서 함께 하고 계시지만
언젠가는 곁에 없을 것이고
그때도 오로지 내가 의지하고
나를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남편일 것이다.
그런 남편이 내 곁에 없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벌써 나를 두렵게 한다.
이런 불안은 지금도 미래에 늙어버린 날에도
당연히 계속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내게 큰 두려움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지금의 삶이 여유롭거나 편해서가 아니다.
그 두려움이 나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한
나의 가장 중심의 선 걱정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종종 어차피 인생은 혼자 사는 거라고들 말하지만
나는 그 말이 피부로 잘 와닿지 않는 편 인 것 같다.
나 스스로도 나의 인생은 결국 혼자서 책임지고
혼자서 살아갈 줄 알아야 한다는 말에 동감하지만
뜻대로 잘 되지 않는다.
어떤 행위를 해내는 것, 그저 하루를 살았다. 하고 느끼는 행위 말고
나는 오늘 하루 혼자가 아니었구나 하는
감정이 들 수 있는 하루를 살아가기를 원하는 것 같다.
그런 감정의 중심에 어느 순간 남편이 들어와 앉아있는 셈이다.
며칠 전 몸이 안 좋아서 응급실을 찾은 남편은
갑작스레 며칠 동안 입원을 하게 되었다.
물론 심각한 병이나 매우 위험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혼자 집으로 돌아와 문단속을 하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십 년 가까이 같이 살면서 자기 전 문고리를 채우며 문단속을 하는 일은
항상 남편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문고리를 보고 채워야지 하는 순간.
바로 남편이 생각났다.
하물며 십 년이 아니라 몇십 년을 함께 살아가다 보면
남편을 생각나게 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아질까.
먼 훗날 남편의 부재에 그런 습관적인 일들을 하나씩 마주할 때마다
얼마나 남편이 생각나고 사무칠까.
그런 사소한 일상 속의 행동들이
한 번씩 나를 무너지게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종종 나를 너무 두렵게 한다.
벌써 너무 슬픈 일이다.
요즘은 반려견이나, 반려묘를 많이들 키우니까
자연스레 남편과 나도 관심을 가지고는 있는데
이것 또한 그런 일상 속 슬픔을 미리 하나 추가하는 일이 아닐까 싶어
한참을 망설이고 있다.
다들 데려오기만 하면 그들로 하여금 무조건적으로 오는 행복에
오히려 감사할 것이라고들 말하는데
그 말에도 절대적으로 공감하고 있지만
어느 순간 미래에 겪을 펫로스에 대한 감정이 내게는 벌써부터 걱정인 것이다.
순간순간 행복 할 수 있을 것 같고 반려묘나 반려견에 대한
무수한 애정과 케어를 쏟겠지만, 동시에 걱정이 앞선다.
얼마나 많은 정을 주며, 애정을 쏟을지 알고 있기에.
그 상실감이 얼마나 클지도 예감하기에.
유기견 어플을 살피다가도 꾹 참고 어플을 닫아 본다.
한번 찾아가 볼까도 싶었지만 그때는 정말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아서.
거기까지는 자제해 본다.
먼 훗날, 아주 아주 먼 훗날.
지금으로선 외롭다는 말을 정확히 몸으로 이해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나에게는 곧 외롭다는 말이 두렵다는 말과도 같게 느껴진다.
그것이 남편에게는 나와 같은 크기로 느껴지지 않는 듯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는 자리하고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너무 큰 슬픔이자 두려움이기에.
미리 준비하고 싶지도 않다.
그저 오늘 하루 미워하지 않고
먼 훗날 가지고 갈 후회를 줄이기 위해 하루하루를 애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