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근한 사랑.

by 김로기

얼마 전 방송에서 아내를 얼마나 사랑하냐는 질문에

한 영화감독의 대답이 인상 깊었다.

양손을 들어 "이 정도?"라고 말했던 것 같다.

그 순간 웃었지만 크게 와닿았다.

누군가는 정말 열렬히, 애가 닳아 없어질 정도로 배우자를 사랑한다고 말하겠지만

글쎄, 나는 어느 정도라고 해야 적당할까?

포도알 스티커를 붙이듯이

좋아한다는 마음 열개가 모여 사랑한다는 마음이 되는 것도 아니고

만난 지 몇 년 동안만 사랑이라고 정의된 것도 아닌데

그냥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 크다면 나는 그걸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의 남편 또한

마음에 불이 붙어서 타는 냄새가 날 정도로 사랑했다 말할 수는 없다.

미안하지만 그것이 사실이다.

나는 굉장히 방어적이고

내가 그어 놓은 선 밖으로는 나갈 생각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 나에게는 인생의 목표, 계획 같은 것들이 몇 가지 있었는데

적당한 대학에 가서 적당한 직장에 취직을 하고

적당한 남자를 만나서 스물여덟 가을에 결혼을 하는 것.

적당함에 어떤 기준이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저 과히 바라지 않았다는 의미다.

스물여덟이란 나이는

왠지 모를 찝찝한 아홉수가 뒤에 있었고

그 다음해인 서른 전에는 결혼을 하고 싶은 마음에 결정된 숫자였다.

또 5월의 신부는 너무 식상했고

여름과 겨울은 너무 덥고 추웠고

양가 경조사를 다 피해서

우리만의 결혼기념일을 방해받지 않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가을.

그 계절의 11월.

김장이라는 최대의 변수는 까마득하게 모른 채로.

그리고 그 당시 매월 보름까지는 회사 업무로 바쁜 날들을 보내야 했기 때문에 셋째 주.

일주일간의 신혼여행 기간을 고려해 봤을 때

딱 스물여덟 11월 셋째 주 토요일이

내게 오래전부터 계획되어 있던 결혼 날짜였다.

그리고 그때가 다가 올 무렵 내 옆엔 지금의 남편이 있었다.

그는 이런 디테일한 계획까지는 알리가 없었지만

안다고 하더라도 내가 원하는 데로 맞춰줬을 사람이었다.

다행히 양가 어른들도 내가 계획한 날짜를 못마땅해하시는 분들은 안 계셨기에

나의 계획대로 무사히 진행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떤 확신이 들어서 그와 결혼했다기보다

결혼할 무렵 그가 내 옆에 있었기에

그와 결혼을 했다는 말이 더 맞는 것 같기도 하다.

또 그렇다고만 하기에는

그때 만약 다른 남자가 내 옆에 있었다고 한다면 그와 결혼을 했으려나?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는데.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하나?

그냥 운명이라고 해두는 게 좋을 것 같다.

누가 봐도 엄청난 사람은 아니다.

물론 나도 그런 사람은 아니니까.

근데 요즘 이런저런 흉흉한 일들이 뉴스에 많이 나오는 걸 보면

이상한 사람도 정말 많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되니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누군가 생각하는 것처럼

하루하루 애가 닳게 그와 사랑한 건 아니지만

미지근한 정도로 사랑해 온 것은 맞는 것 같다.

여러 종류의 사랑 중에

우리는 그냥 적당히 미지근한 사랑을 했다.

가끔씩 나는 불 같이 뜨겁고 차갑게 식고를 반복하곤 하지만

한쪽이 유지가 되면 결국엔 그 사랑도 유지가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남편의 덤덤함이 지금의 우리의 관계에 큰 기여를 하고 있던 셈이다.

예전엔 똥차는 피했으니 그거면 됐지, 하는 마음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요새는 똥차를 탈 뻔했던 나를

구제해 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고마울 때도 있다.

수시로 변하는 나의 온도를 느긋하게 유지시켜 줄 그릇이

생각보다 두껍고 커다란 것 같아서.

그래서 우리의 미지근함이 유지되어가는 것 같아서 다행일 때가 많다.

한 번씩 나의 불타오름에 부응하지 못해 답답할 때도 있지만

어쩌면 그렇기에

우리의 오늘이 있고, 다가 올 내일에 감사할 수 있던 것은 아닐까.

이전 10화혼자 남겨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