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우리는 만나지 못한 날, 엄마 아빠가 되었다

by 로기

입원 10주 차, 일요일 아침이었다.

참을 수 없는 복통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동안 아이를 위해 무조건 버텨야 한다고 다짐했던 모든 것들이 이제 더는 견딜 수 없는 고통으로 바뀌어 있었다. 주말이라 담당 교수님 대신 당직의가 있었다. 너무 아프다고 호소했더니 초음파를 확인한 그는, 자궁문이 조금 열려 있다고 했다. 수축은 멈추지 않았다. 당직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주말에 출산하게 되면 제가 아이를 받게 됩니다. 담당 교수님께 맡기시는 게 어떨까요?”

나 역시 담당 교수에게 출산을 맡기고 싶었기에, 다시 마음을 다잡고 월요일 아침까지 버티기로 했다.


아마도 그날 밤이 내 인생에서 가장 긴 밤이 아니었을까. 통증은 한층 더 집요해졌다. 식은땀이 비 오듯 흘렀고,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잠은커녕 눈을 감는 것조차 두려웠다. 겨우겨우 의식의 꼬리를 붙잡고 버티자, 동이 트고 있었다. 월요일 아침 7시, 담당 교수가 병실로 들어왔다. 나는 핏발 선 눈으로 그를 보며, 갈라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교수님, 저 더는 못 버티겠어요.”

교수는 잠시 지그시 나를 바라보았다. 그 짧은 순간에 모든 상황을 파악한 듯,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응급수술을 합시다.”


곧바로 수술 준비가 시작되었다. 수술용 바늘로 교체하고, 제모를 하고, 머리카락을 덮는 모자를 쓴 채 수술복으로 갈아입었다. 휠체어를 타고 수술실이 있는 층으로 이동했다. 남편은 급히 연락을 받고 병원에 달려왔지만, 그 당시는 코로나가 극성일 때라 출입 전 PCR 검사를 받아야 했다.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병원 안으로 들어올 수 없었다. 결국 나는 혼자 수술실로 향했다. 안경을 벗고 침대에 누우니, 이상하게도 마음이 차분해졌다. 아이들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조용히 주문을 걸었다.

“괜찮아. 잘될 거야.”

내가 굳게 마음을 먹지 않으면, 아이들도 힘을 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33주 2일. 정상 출산보다 7주나 이른 시점이었다. 쌍둥이 응급수술이라 제왕절개로 진행되었다. 태어나 처음 겪는 수술이었지만 덤덤했다. 수술실로 가는 복도의 천장 전등이 연속적으로 눈앞을 스쳐 갔다. 마치 드라마 속 장면 같았다. 수술실 문이 열리자, 담당 교수가 팔짱을 낀 채 기다리고 있었다. 의료진들이 분주하게 움직였고, 나는 수술대 위로 옮겨졌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많이 긴장되시죠?"

마취과 의사의 나직하고 차분한 목소리에, 정말 괜찮을 것 같다는 믿음이 생겼다. 그 믿음과 함께 눈이 스르르 감겼다.


"계속 크게 호흡하세요!"

간호사의 큰 목소리에 눈을 떴다. 마취 가스를 빼야 한다며 계속 깨웠다. 배 위엔 묵직한 압박감이 있었고, 통증도 있었지만 참을 만했다. 그러나 눈은 자꾸만 감겼다. 잠들려고 하면 번개처럼 날카로운 목소리가 쏟아졌다.

“안 됩니다. 정신 차리세요!”

나는 눈을 부릅뜨고 억지로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동안 마음속은 단 하나의 생각뿐이었다.

‘우리 아이들은 잘 태어났을까?’

내 마음을 읽은 듯, 간호사가 말했다.

“아이들은 무사히 태어났어요. 다만 몸무게가 작아 신생아중환자실로 갔습니다.”

33주 2일 만에 세상에 나온 아이들. 마음은 아팠지만, 둘 다 무사하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밀려왔다. 회복실을 거쳐 병실로 돌아와서야 남편을 만날 수 있었다. 그가 내 손을 붙잡는 순간, 참고 있던 눈물이 글썽였다.

"혼자서 고생했어…"

나를 위로하는 그의 목소리 끝에는 출산의 순간 곁에 있어 주지 못한 미안함과 아쉬움이 묻어났다. 하지만 이내 "당신이랑 둥이들 모두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야"라며 안도의 숨을 골랐다. 비록 품에 아이는 없었지만, 우리는 분명 두 아이의 엄마 아빠가 되어 있었다.


아기들은 같은 층 복도 끝, 신생아중환자실에 있었다. 불과 몇 걸음이면 닿을 거리였지만, 나는 병실에, 아이들은 인큐베이터 안에 있었다. 가까이 있지만 함께하지 못했다.


출산은 끝났지만, 진짜 시작은 그때부터였다.

작가의 이전글2화. 조금만 더, 버텨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