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어린 시절의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일찍이 전원생활의 꿈을 품고 귀농한 부모님 덕분에 나는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냈다. 그 시절 학교에 가려면 집에서 삼십 분쯤 걸어 나가 이십오 분에 한 대씩 오는 버스를 타고 또 이십 분을 달려야 했다.
집에 오는 길은 늘 길었다. 난 걸음이 느린 아이였다. 시골길엔 아이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들이 아주 많았다. 봄엔 벚꽃과 버찌 열매, 여름엔 강아지풀과 올챙이들, 가을엔 밤과 도토리, 겨울엔 얼어붙은 논... 가끔 길에서 마주치는 고양이나 개 따위와 의미 없는 눈싸움을 하기도 하고, 날거나 뛰는 벌레들을 집요하게 쫓기도 했다. 길에서 주운 돌멩이들로 양쪽 바지 주머니를 터질 듯 채우거나, 각종 잡풀들을 잔뜩 꺾어 꽃다발을 만들기도 했다. 길가의 개울에 발을 담갔다가 수렁에 빠지면, 진흙으로 엉망이 된 신발을 끌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언 논에서 얼음을 타다 살얼음을 밟고 빠진 적도 있었다. 엄마는 그런 어린 딸을 보며 몹시 황당해했다. 여유롭게 걸어도 삼십 분이면 충분한 거리를 나는 늘 두 시간을 훌쩍 넘겨 걷곤 했다.
아마도 초겨울 무렵이었던 것 같다. 친구들과 함께 걷던 그 길을 어쩐 일인지 혼자 걷고 있었다. 기온은 제법 쌀쌀했지만 바람은 불지 않았고, 늦은 오후의 햇볕은 오히려 따뜻한 느낌이었다. 코끝으로만 찬 냄새를 맡을 수 있을 정도의 그런 날씨였다. 주변은 이상하리만큼 고요했다.
어디선가 고양이 울음소리 비슷한 게 들렸다. 나는 질질 끌던 발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다. 잘못 들었나 무시하고 지나치려던 차에 다시 한번 소리가 들렸다. 이번엔 좀 더 확실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희미하긴 했지만, 그건 분명 사람의 신음소리였다.
길 옆에 작은 개울이 있었다. 논에 물을 대기 위해 만들어진 수로였다. 겨울이라 물이 콸콸 넘치진 않았지만, 바닥을 드러내고 쫄쫄 흐를 정도는 되었다. 소리가 난 곳은 그쪽이었다. 쫄쫄 대는 물소리 사이로 불규칙한 간격을 두고 숨소리인지 신음소리인지 모를 소리가 섞여 들려오고 있었다.
나는 개울 쪽을 내려다보았다. 그곳에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누구인지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동네 아이들 사이에서 마귀할멈이라고 불리던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내 기억이 맞다면, 그 동네에서 가장 큰 집이었던 건배 삼촌네 집에 방 한 칸을 얻어 혼자 세 들어 살고 있었다. 동네 아이들은 모두 그 할머니를 무서워했다. 어딘지 괴팍하고 음침해 보이던 외모도 아이들의 공포를 키우는데 한 몫했을 터였다. 하지만 아이들이 할머니를 무서워했던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는데, 그건 할머니가 알코올 중독자라는 점이었다. 할머니는 늘 술에 취한 채 어디를 바라보는 건지 알 수 없는 흐리멍덩한 눈을 하고 마을 여기저기를 비틀비틀 돌아다니곤 했다. 할머니 곁에서는 항상 알코올 냄새가 진동을 했다.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기분이었다. 아마 할머니는 술에 취해 비틀거리다 넘어져 그대로 개울에 처박힌 것 같았다. 의식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움직임 없이 간헐적으로 끙끙 앓는 소리만 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숨도 못 쉬고 겁에 질려 굳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나는 뒤도 안 보고 그대로 뛰었다. 당장이라도 할머니가 마귀할멈이 되어 쫓아올 것만 같았다. 집까지 멈추지 않고 한달음에 달렸다. 방에 들어와 이불을 뒤집어쓸 때까지 쿵쾅거리는 심장은 진정될 줄 몰랐다.
다음 날 아침, 동네 아이들과 함께 등교를 하다가 전날 밤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사라진 할머니를 찾기 위해 온 동네가 발칵 뒤집어졌던 모양이었다. 건배 삼촌네와 가까이 살았던 아이는 전날 어른들 틈에 끼어 보고 들은 얘기를 우리에게 신나게 재잘거렸다. 마침 문제의 그 장소를 지나고 있었다. 아이는 걸음을 멈추고 우리에게 말했다. 할머니 어제 여기서 찾았대, 하고. 그날 새벽, 할머니는 그곳에서 발견되었다. 싸늘하게 식은 채로.
그리고 나는 이 얘기를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터닝포인트가 온다. 처음 달리던 방향에서 몸을 틀고 다른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하는 순간이나, 혹은 달라기를 멈추고 뒤돌아 맞서 싸워야겠다고 결심하는 순간 같은 거 말이다. 내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삶에서 어떤 전환점이 되는 순간은 대체로 명확하게 인지되는 편이다.
반면, 파장이 시작되는 순간은 그렇지 않다. 터닝포인트는 하나의 점이지만 파장은 길게 이어진 선이다. 이를 테면 그런 거다. 흐르는 물에 둑을 쌓아 막으면 물줄기는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 이것은 터닝포인트다. 하지만 거기에 돌멩이를 하나 얹어 놓으면, 물줄기는 돌멩이를 피해 여러 갈래로 갈라질지언정 흐르는 방향이 바뀌지 않는다. 여전히 같은 방향으로 흐르기 때문에 그 순간 어떤 변화를 감지한다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한참 뒤에 돌아보면, 어느 순간 다른 갈래로 흐르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 날의 사건으로 변한 것은 없었다. 나는 여전히 걸음이 느린 아이였고,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도 어느 순간 잊어버렸다. 다만 시간이 흘러 어느 순간, 그러니까 오늘 같은 날 불현듯 떠올라 되새겨 보는 것이다. 그 날의 기억이 내 삶의 물줄기에 얹어진 작은 돌멩이 하나가 아니었을까 하고.
언젠가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