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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훌리아 Oct 30. 2015

백수가 미래다.

자유, 젊음

#01. 자유


오랜만에 친구와 통화를 했다. 친구는 그동안의 안부를 묻고 자신의 안부를 전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시작했다. 결혼하고 아이는 6살이 되었다며 이제는 그 아이가 커서 자신의 감정을 헤아리기도 한다며 아주 신기하고 기쁘다고 얘기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보기도 아까운 아들 자랑에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넌 신랑이 좋아? 아들이 좋아? 그랬더니 당연하게 "아들이 좋지~"라고 하는 것이었다. 자식사랑은 말릴 수 없나 보다. 신랑 섭섭하겠다. 얘기하며 웃어 넘겼다. 그리고 조카들이며 동생들 얘기를 하며 그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에 대해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아이들이 자유롭게 직업을 선택하고 자기의 시간을 자유롭게 누렸으면 좋겠어. 그러려면 외국이 더 좋을 것  같아.라고 무심결에 얘기하고 말았는데... 생각해보니 그건 나의 진심이란 생각이 들었다.


미래의 아이들은 우리보다 더 자유로울까?


과거의 우리 부모와 그 앞 세대들이 보는 우리는 어떨까? 자유로워보일까? 어느 부분에선 훨씬 자유롭다고 생각하고 계실지 모르겠다. 10년 전 20년 전에 비해 그럴 수 있다. 사회가 발전하고 학력 수준이 올라가고 누릴 수 있는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할 수도 있으니깐 말이다.


하지만 그 10년 전이나 20년 전의 우리의 앞 세대가 했던 것처럼 『우리도 똑같이 소득을 증대하고 많을 것을 누리기 위해 직업에 매여 내 시간을 갖는 것보다 내 시간을 파는데 여념이 없고 남는 건 허무함과 번뇌 그리고 몸의 질병만이 남는 반복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은 문화평론가 고미숙님이 한 말이지만 나도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을 무한 반복하고 있었던 것 같다.


자유로운 사고와 선택 그리고 광장으로  뛰쳐나가고 싶다. 는 생각만  들 뿐이다.

마음만은 백수이고 싶다.

요즘의 내 깊은 사고(思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F8gctGuXmg

세바시 418회 백수의 정치경제학 @고미숙 문화평론가


<백수의 정치 경학_동영상 내용>
어떤 일을 하고 싶다던가, 활동하고 싶은 게 아니라 정규직만 열망하는 거죠. 근데 자기 청춘 다 바쳐 정규직이 되어도 그만두거나 다른 데로 이직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생각해야 합니다. 정규직이 내 삶의 무게중심이 될 수 있는가? 중요한 건 백수라고 하는 건 특별한 삶의 조건이거나, 열등하거나, 비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는 거죠. 제가 동서양 고전을 쭉 섭렵하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어요. 제 인생 모든 걸 걸고도 배우고 싶은 고전의 스승들은 모두 백수라는 거죠. 그 대표적 인분이 공자입니다. 자유인이란 직업을 갖지 않는 존재죠. 고대 그리스 로마에서 직업을 갖는 건 노예예요. 노예는 아주 확실한 정규직입니다. 자유인은 놀아야 합니다. 광장으로 나와서 철학도 하죠. 그러면 이런 게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바로 인간의 원초적 욕망은 직업으로부터 자유롭고자 한다는 얘기입니다. 자본주의에 와서 유독 노동에 대한 애착과 직업에 대한 열망이 생겼어요. 왜 그럴까요? 삶을 위해서도, 인간을 위해서도 아닙니다. 화폐의 증식을 위해서입니다. 직업이 없으면 자기 자신을 자책하고 괴롭힙니다. 어떻게든 직업을 가져야 한다고 망상 하죠. 그래서 억지로 정규직이 됩니다.

근데 정규직이 무엇을 꿈꾸죠? 돈 많이 벌어서 자유롭게 세계 여행하고 친구를 만나고 인생과 우주에 대해서 배우고 싶어 하죠. 근데 그게 바로 백수가 하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정규직의 미래도 바로 백수인 거죠. 왜 정규직을 얻고 싶어 합니까? 아마 연애하고 싶어서겠죠? 돈 있어야 연애하니까. 연애하면 결혼하죠. 결혼하면 스위트홈이 될 거라 생각하지만 사실 지옥이 되죠. 그다음엔 더 좋은 집, 더 높은 연봉을 받았다고 치죠. 그다음은 뭡니까? 자식을 낳아서 다시 그 레일에 올라오게 합니다. 똑같은 것을 반복하는 거죠, 이것을 바로 소유와 증식이라고 하는 삶의 척도입니다. 도대체 무엇을 향해 달려가는지도 모르면서 더 많은 것을 누리기 위해 달려갑니다. 소유와 증식을 끊임없이 추구했는데 결과는 삶의 번뇌와 몸의 질병입니다. 근데 소유와 증식은 반복이죠. 그 반복은 삶의 새로운 가치를 생성시키지 못합니다.

그러면 백수는 무엇을 하느냐? 자기를 온전히 배려하는 일만 하면 돼요. 자기 앞가림만 잘하면 된다는 뜻입니다. 많은 것을 가질수록 책임과 부담과 의무는 무한히 같이 증대합니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 짐을 지고 걸어가는 거죠? 그렇다면 백수는 삶의 구성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물질적으로 풍요롭기 때문에 굉장히 많은 공공자산을 갖고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도시락을 싸서 집에서 가까운 공공도서관으로 갑니다. 거기에는 책과 인문학 강의가 있습니다. 이거보다 더 고귀한 삶은 없습니다. 그다음은 백수들끼리의 연대와 네트워크입니다. 나이, 직업 신경 쓸 거 없어요. 어떤 것도 다 넘나들 수 있는 시대예요. 정보를  주고받던지 같이 공부를 하던지. 이것을 통해 새로운 윤리적 가치가 생성됩니다. 이러한 가치의 핵심은 화폐로부터 벗어나는 것이고 스위트홈이라는 망상에서 벗어나 다양한 인간관계의 지도가 그려진다는 것입니다. 소유와 증식이 아닌 우정과 지성을 통해 소통과 순환의 기예를 터득하는 거죠. 이것은 인류가 공자 이후 몇 천 년 동안 갈고 닦고자 했던 삶의 경지입니다. 정규직은 이렇게 할 시간이 없어요. 공공자산 이용할 시간도 없죠. 백수가 이런 윤리를 새로 이끌어 내서 고생하는 정규직에게 나눠져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앞으로 인류의 미래는 백수라고 단언합니다. -마침-



#02. 젊음                                            


뮤지컬 그리스를 보게 되었다. 친구 덕분에 뜻하지 않게 보게 되었는데..... 생각과 다르게 흥이 나질 않았다. 왠지 딸이 있었으면 보여주고 싶은 기분이었다. 친구에게 왜 보고 싶었는지 물어보았다. 애초에 내가 정한 작품이 아니니 친구의 의사가  궁금해졌다. 젊음을 느껴보고 싶고 회상하면 또 그립고 또 지금이 지나면 다시 이 날을 그리워하겠지 싶어서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Tell me more ~ Tell me more ~


이 부분만 계속에서 귓가에 맴돈다. 익숙한 멜로디라서 그런 것이겠지라고 생각했다..

친구는 젊음을 떠올리기 위해라고 했지만 나는 딱히 젊음이란 걸 목매지도 않거니와 또 나이 듦에 더 정신을 기울이기 때문에? 젊음을 느껴보려 애썼지만 뜻대로 되질 않았다. 그냥 겉돌 뿐이었다. 애써 웃으며  재밌었어하고 말았는데... 내 이런 빈정거리는 투덜거림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을까 조심스러웠다. 온 마음을 던져 흥하고 싶은데 왜 그게 되질 않을까.... 씁쓸했다....


김탁환의 에세이 [읽어가겠다(우리가 젊음이라 부르는 책들)]를 읽기 시작했다. 뭔가 내가 바라던 젊음에 관한 의문에 대해 풀어갈 실마리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 이상한 기분을 답답했던 기분을 다독여 주는 것만 같았다.


김탁환 작가가 말했듯이 이 책에 소개된 책들은 젊음을 상기시키는 그런 책들로 묶여져 있었다. 목차를 읽으면서도 즐거웠고 앞으로 내가 읽어봐야 할 책들이란 걸 알아챘다. 책과의 인연은 쉽다가도 어렵다. 어려움에 봉착했었다. 내가 원하는 책이 뭔지 나조차도 헷갈렸다. 때마침 읽게 되어 참 다행이다 싶다.


작가는 여기 소개된 책을 4번씩 다시 읽었다고 한다. 책을 다시 읽는다는 건 정말 애정애정 해야 한다. 인내심도 필요하다. 아직 4번씩이나 읽어본 책이 없어서 잘은 모르겠지만...ㅎㅎㅎ



#03. [에세이] 읽어가겠다

(우리가 젊음이라 부르는 책들) - 김탁환


젊음을 상기시키는 23권의 책이라고 소개되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읽었던 책들을 여기서 다시 보니 아주 반가웠다.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으로 헤르만 헤세 '크눌프', 생택쥐페리의 '남방우편기', 코맥 매카시의 '모두가 예쁜 말들'이며  김탁환 작가가 들려주는 책의 이야기는 책을 다 들여다 본 것처럼 느껴져서 눈물이 두어 번 차올랐는데 그 두 권의 책은 아니 에르노의 '한 여자'와 존 버거의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이다. 그 책을 우선적으로 찾아 읽어볼 생각이다.


리뷰는 이렇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참 좋구나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추억과 그 시절에 느낌으로 비슷한 추억을 떠올릴만한 책을 소개해 주기도 하고 다방면으로 여러 가지 지식을 적재적소에 참고로 들려주기도 하고 읽는 사람인 나로서는 참으로 편했다. 그래서 리뷰를 이렇게 써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권의 책을 어린 시절에 한번 성인 되어서 한번 그리고 힘들 때 찾게 되어서 또 한번 그리고 이 책을 엮으면서 다시 한번 총 4번이나 읽었다고 하니 정말 한 권의 책에 든 모든 비밀을 얼마나 꼽씹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확실히 한번 읽고 지나치는 글귀가 참 많다. 앞서 가지 않고 한 글자씩 음미하고 전체를 잘 유지하며 읽어나가야 되는데 사실 읽다 보면 급한감이 없지 않아 있다.


책과의 인연은 내손 끝에 닿는 데로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렇게 고른 책들이 내게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없는 읽다가 놓아버린 아쉬운 그런 책들이 많았다.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하나 갑자기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내게 필요한 책이 뭐였더라? 나는 그런 채로 있었다. 그러다 이 책의 리뷰를 어디선가 보고선 나도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읽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이 든다. 새롭게 안 작가와의 만남도 좋았고 알던 작가의 다른 작품을 또 소개받아서 좋았고 내가 더 읽어나가야 할 책들이 많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나는 젊다라는 것이 나에게 어느 정도 남아있나? 그런 샘을 해보곤 한다. 젊은 쪽에 가까운지 나이 듦 쪽에 가까운지 가늠해보기도 한다. 겉모습에선 좀 애를 써서 그나마 나이보다 덜 늙어 보인다고 생각은 하지만 여지없이 "야~ 너도 나이를 많이 먹었구나"라던지 "눈가에 주름이 있네  에휴~"라는 소리를 듣는다던지 그러면 "아 나도 이제 나이를 먹긴 먹었구나" 그런 생각을 한다.  또 다른 식이지만 "이제 나이가 낼 모래 마흔이 아니냐!" (이건 뭐 너무 가도 한참 가셨다!) 이런 말이라던지 "왜 그렇게  칠칠치 못하게  흘리느냐"라는 말을 들으면 철없이 느껴져 나이 거꾸로 먹는 줄 안다. ㅎㅎ 타인이 보는 시선에 내가 젊고 나이 듦을 느낀다. 그런 불필요한 말이 없다면 난 그런 생각을 안 할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정신적으로 완전한 독립을 이뤘느냐라고 물으면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난 알에서 한 번은 깨고 나왔고 절망에 가까운 시련도 겪었고 무모할 만한 도전이라고 까진 할 수 없지만 (그래 그것 정도는 해봤어야 하는데... 아쉽다) 뭔가 시도하려는 날갯짓도 여러 번 해보았다. 그리고 후회도 많이 남아있어서 그것을 다 치유하기도 버거운 죄인이라 스스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래도 생각해보면 젊음이 좋았다. 아직도 포기하기엔 이른 젊음이 내 안에 있다. 젊음을 잘 가꾸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아름다운 나이 듦이 되고 싶다면...



                                                               

<김탁환 프롤로그 중에서....>


이 소설들에 '열망'과 덧없음'이 가득 차 있습니다. 열망이란 무엇입니까. 견딜 수 없는 몸부림이자 결연한 단절이며 치밀한 계획이자 무모한 도전이지요. 결과가 아닌 과정 자체에 빙점이 놓이는 작품들입니다. 그 열망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 속엔  피와 땀이 흐르는 '인간(人間)'이 있습니다.


'덧없음'은 실패와 이어진 감정이 아닙니다. 활활 영원히 타오를 것처럼  이어지던 이야기와 이야기 사이에 짧은 침묵이 찾아듭니다. 그 침묵엔 많은 것이 담기지요. 어찌할 수 없는 이별, 잊히지 않는 고통, 그리움, 부끄러움이 한순간 밀려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걸음걸음을 디뎌 나올 때의 헛헛함이라고나 할까요. 멀리서 들려오는 굶주린 짐승의 울음에도, 긴 꼬리를 지우며 떨어지는 별똥별의 궤적에도 인간으로서의 덧없음이 얹히지요.


스물세 편의 소설에는 인간답게 살아가는 나날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합니다. 지극히 평범한 이웃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로부터도, 인간으로 태어나서 당신을 만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그것은 또한 인간다워야 할 때에 그렇지 못하고 흔들리는 나 자신에 대한 경멸로도 이어지겠지요. 열망과 덧없음처럼, 자부심과 경멸 또한 젊음이란 동전의 양면인 겁니다.


삶은 길고, 아직 맞닥뜨리지 않은 문제는 많이 남았습니다. 이 정도면 되겠다고 방심할 때 어김없이 상상 밖의 어려움에 빠지는 것이 바로 인생이니까요. 그 혼란의 와중에 잠시 숨을 고르면서, 스물세 명의 친구들이 어떻게 막막함을 견뎠는지 귀기울여 보는 건 어떨까요.

오늘도 어제처럼 내일도 오늘처럼, '나 지금 여기'의 문제에 주먹을 내지르며, 어깨를 비비며, 입을 맞추며!






by 훌리아

http://m.blog.naver.com/roh222/220152212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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