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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훌리아 Jan 14. 2016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나의영혼이 다시 떨릴수 있을까'

멕시코 문학 - 여성작가 라우라 에스키벨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원제 Como agua para chocolate(Like Water For Chocolate)이란 말은 "초콜릿을 끓이기에 가장 적절한 온도의 물 "을 뜻하지만 흔히 분노에 차 있거나 열정에 휩싸여 있을 때 비유되곤 한다.


3월 장미 꽃잎을 곁들인 메추리 요리 / 12월 호두 소스를 끼얹은 칠레고추 요리

칠레 고추의 초록색과 호두 소스의 하얀색, 석류의 빨간색이 어우러져서  칠레고추 요리는 자랑스러운 멕시코 국기의 색깔을 나타내고 있었다. P252

이건 신들이나 먹을 수 있는 황홀한 음식이야!


시인이 단어로 유희를 즐기듯 티타는 음식을 마음대로 요리하며 유희를 즐겼다. 연금술 같은 묘한 작용이 일어나 그녀의 존재 자체가 녹아들어 가 누군가의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그 음식을 먹은 사람들 모두가 성적인 메시지가 지나는 매개체가 되는 줄 모르고 당황한다. 그녀 자신은 경험이 부족한 탓에 상상력에 많은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에로틱한 상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티타는 멕시코 식민지 전 시대부터 대대로 내려오는 요리 비법을 전수받은 마지막 계승자였다. 그녀는 요리라는 이 신비한 예술을 최고로 잘 표현할 줄 아는 요리사였다. 로사우라를 위한 차벨라 웨딩 케이크를 먹은 사람들은 걷잡을 수 없는 그리움, 슬픔, 좌절했던 옛사랑을 떠올려 구토했고 장미 꽃잎을 곁들인 메추리 요리를 먹은 헤르트루디스는 그 요리가 최음제 작용을 일으켜 집에서 도망쳤다.

혁명군과 정부군이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로 인해 도처에 굶주림과 죽음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었지만 그 요리를 먹는 순간만큼은 모두들 마음에서 날아다니고 있는 총탄을 잊어버린 것만 같았다. 자신의 요리 비법은 사랑을 듬뿍 담아 만드는데 있었다. 이상하게도 먹은 후에는 모두 들뜨고 흥분한 상태였다. 황홀했던 경험을 말없이 되살리는 추억이 되었다. 티타는 요리책을 썼다. 선호하는 방법 강조해서 적기 시작했다....


요리사 티타는 부엌 식탁 위로 태어났다. 엄청난 눈물 급류에 떠밀려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이다. 예사롭지 않은 출생 덕분에 부엌에 큰 애착을 느끼고 부엌에서 거의 살다시피 한다. 다만 여자로서의 운명은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그 덫은 눈물이 마른 채로 계속 울게 했다.

  

거세해서 살찌운 수탉으로 만든 요리는 기가 막힌 맛을 내는 최고급 요리였다. 거세는 수탉의 고환 부위를 절개해 그 안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잡아뗀 다음, 상처 부위를 꿰매고 신선한 기름이나 새의 지방을 문지르면 되었다.

티타는 시선을 들어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거세할 상대를 잘못 찾았으며 자기를 거세시켜야 했다고 소리 지르고 싶었다.



몇 세대를 내려오는 가문의 관습으로 티타는 청혼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막내딸은 결혼하지 않고 자신의 어머니를 죽는 날까지 돌봐야 했다. 이 어처구니없는 결정을 속수무책으로 받아들여야만 했고 거기다 자신의 청혼자 페드로가 언니 로사우라와 결혼하고 로베르토를 낳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빌어먹을 체면과 예의범절 때문에 점잖고 올바르고 남자다운 사랑스러운 페드로는 티타를 향한 크고 영원한 사랑을 지키기 위해(?) 그녀의 언니인 로사우라와 결혼한다. 두 자매 간의 경쟁심은 로사우라가 티타가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하면서 정점에 다다랐다. 로사우라는 페드로가 티타를 헤아릴 수 없이 사랑한다는 건 몰랐다.


마마 엘레나는 혼자 농장 운영의 큰 부담이 있었다. 딸 들인 로사우라,헤르트루디스, 티타, 요리사 나차, 하녀 첸차 집안 여자들에게 엄격했고 모두들 두려워하고 복종했다. 규칙을 지키고 공손히 말하며 고분고분하게 굴어야 했다. 독하게 마음먹고 단번에 끝내지 않으면 오히려 더 큰 고통만 안겨주게 되는 것을 익히 알고나 있던 것처럼 싹을 잘랐다. 그럼에도 티타와 페드로가 뭔가 꾸미고 있다고 확신했고 의심한다.



페드로와 티타

그대를 본 순간부터 나는 행복했지.
그대에게 내 사랑을 바치고 영혼을 잃었지......


열여섯 그녀는 페드로를 포함한 모두를 증오했다. 살아 있는 동안은 이제 그 누구도 절대 사랑하지 못할 거라고 믿었다. 이런 생각은 티타가 자기 손으로 직접 로사우라의 아들을 받아내는 순간 사라졌다. 몇 년 후에 페드로와 육체적 사랑을 나누게 될 거라는 사실을 그때 티타가 알았더라면 그렇게까지 절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글거리는 시선이나 춤추는 듯한 매혹적인 몸동작, 거친 숨소리, 욕망 그 모두가 두 사람의 것이 아닌 한 사람의 것...


처음 어깨 위로 느껴지던 페드로의 눈빛과 마주쳤을 때를 떠올렸다. 그 순간 팔팔 끓는 기름에 도넛 반죽을 집어넣었을 때의 도넛처럼 후끈 달아올랐다. 우연히 스쳤던 그 손길의 감촉은 영원히 잊을 수 없었다. 페드로의 강렬한 시선으로 티타는 그의 사랑에 대한 확신을 되찾았다. 그녀는 더 맛있는 요리를 내놓기 위해 갖은 정성을 다 기울였고 요리를 통해 다시 전처럼 둘만의 교감이 되살아나길 바라면서 새로운 요리법들을 개발했다.


사랑은 생각하는 게 아니에요. 느낌으로 오는 거지요.

티타와 아기 (로베르토 / 에스페란사)


티타는 풍요의 여신 케레스 그 자체였다. 아무 경험도 없이 혼자 로사우라의 아이를 받아내서 모두를 놀라게 했다. 어린 소녀가 아니라 아름다운 여인으로 성숙해져 갔다. 모든 요리를 신들린 듯할 뿐 아니라 배고픈 조카에게 처녀로서 젖까지 물려 배를 채워줬다. 여기에서 일어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설명이 필요할지도!) 페드로와 로베르토는 그녀의 것이었으며, 이제 더는 바랄 게 없었다.


이 싸움에서 털이 몽땅 뽑히고 애꾸눈이 된 암탉 세 마리만이 간신히 살아남았다.


1월에서 12월까지 요리와 함께 티타의 삶을 들여다보는 재미는 컸다. 티타에게 일어났던 날벼락 같은 일들은 그녀를 침묵하게 만들었고 다시 힘을 내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이야기는 급진적으로 진행되었고 거짓말같이 정리가 되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습기에 젖어 있던 자신의 영혼이 조금씩 불타오를 수 있기를 바랐다. 진정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을 찾고 싶었다. 가슴속의 불꽃이 사그라지지 않도록 영혼을 위로하고 싶었다. 하지만 티타에게 삶은 너무 무겁게 느껴졌다. 절대 사랑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맹세했지만 영원히 포기해야 할지도 몰랐다.


당신은 내 눈 안에서 빛나네
나는, 나는 살아가네......


이 책은 그녀의 요리법을 한 단계 한 단계 읽어 내려가는 것과 같았다. 부드러운 실 단계, 단단한 실 단계, 말랑말랑한 진주 단계, 단단한 진주 단계, 부풀어 오르는 단계, 깃털 단계, 응고 단계, 캐러멜 단계, 그리고 공 닫계(시럽이 식으면서 공 모양으로 응고되어 만들어진 것) 이런 식의 삶의 답을 찾는 것이었다....





<마무리>
마지막까지 티타의 결정을 알 수 없어서 흥미로웠다. 오랜만에 재밌게 책을 읽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환상이 그려지기도 하고 동화 같기도 했고 무척 슬프기도 했다. 분명 아주 오래전에 영화를 봤다고 생각했는데 책 속의 이야기는 처음 듣는 것처럼 새로웠다. 계속 다음 이야기 듣고 싶어서 빠르게 책장을 넘겼다.  


페드로와 로베르토는 그녀가 간절히 원하던 사랑이었다.  상실의 아픔이 와 닿았다. 여성과 요리 문학은 무척 친근하게 느껴졌다.(요리를 즐겁게 할 수만 있다면 더 좋았을 테지만!) 꼭 나의 이모할머니를 떠올리듯이 티타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티타는 어렸을 때 기뻐서 흘리는 눈물과 슬퍼서 흘리는 눈물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 했다. 삶의 즐거움과 먹는 즐거움을 혼동했다. 냄새를 흠뻑 들이마시며 그 각별한 냄새나 향과 함께 자신의 추억 속으로 여행을 떠나는 걸 좋아했다.

그녀의 마음속 불길이 다시 타오를 가능성이 모조리 사라졌을 때... 이 책 끝이라고 생각할 때조차 끝이 아니었다. 티타의 삼 헥타르(1ha=10,000m2)나 되는 담요의 넓이만큼 모든 감정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녀의 선택을 어떤 식으로든 존중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잿더미 아래에서 갖가지 인생이 꽃을 피웠고 가장 비옥해질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티타 이모할머니는 누군가 그녀의 요리법으로 요리를 하는 동안은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다. p259


p.s 가벼워도 좋고 지나치게 여성적이라도 좋다!



by 훌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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