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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훌리아 Feb 27. 2016

밤의 도서관 - 알베르토 망구엘 '영혼의 행복'

영혼의 행복서재는 그 주인에게 '에우테미아'를 준다.

책으로 빼곡히 채워진 방에 처음 들어설 때 어떻게 행동하고,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지, 또 어떤 무언의 약속이 맺어지고 무엇이 허락되는지를 본능적으로 아는 사람은 없다.

도서관은 기술이 아니라 이성이 무질서하게 정리된 책들을 지배하는 곳이다. 책은 먼 옛날부터 예언의 도구였다. 책들은 내게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고, 내게 온갖 깨달음을 줄 뿐이다. 내 책들은 나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안다.

- 알베르토 망구엘 -


밤의 도서관 원작 표지 / 알베르토 망구엘



# 밤의 도서관 엿보기

알베르토 망구엘 프랑스 루아르 강 남쪽 자신의 책을 모아두기 위해 도서관을 마련한다. 어두운색의 목재가 벽에 붙어 있고, 은은한 햇살이 스며드는 도서관을 갖고 싶어 한다. 안락의자들을 곳곳에 놓아두고, 바로 옆에는 조그만 공간을 두어 책상을 놓고 참고용 도서들을 정리해두는 것이다. 책들을 이상적으로 정리되려면 큰 공간이 필요했지만 천장을 가로지르는 들보에서 20센티미터쯤 아래까지 올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한다.

낮 동안에 도서관은 질서의 세계이다. 하지만 바깥의 정원에 서 있는 사람에게, 밤의 도서관은 거대한 배처럼 보인다. 어둠 속에서도 조명이 밝혀진 창문과 반작이는 책들로 에워싸인 도서관은 닫힌 공간이다. 일정한 형태가 없이 저 너머에 존재하는 우주의 자족적 규칙을 대신하는 곳, 혹은 이를 다르게 바꿔놓은 것이라 주장하는 규칙들로 채워진 세계이기도 하다.

밤이 되면 소리는 줄어들고, 생각의 아우성은 더 높아간다. 깨어있는 상태와 잠든 상태의 중간쯤에 가까워지며 세상을 편안하게 상상할 수 있다. 유령 같은 존재로 변한다. 책들은 진정한 존재를 드러내고 독자는 어떤 페이지의 유혹에 이끌려 들어간다. 알베르토 망구엘은 자신의 도서관에 도서 목록이 없다. 저자의 알파벳 순서, 나라별로 최소한 분류하였다. 밤이 되면 그것마저도 힘을 잃는다. 그는 갑자기 떠올린 다른 문화와 다른 세계를 잇는다. 글의 세계에 파묻힌다.


밤의 도서관은 세상의 본질로 흥미진진한 혼란을 즐기는 듯하다.



# 애서가, 독서가

애서가 중에서 몽테뉴는 밤에는 잠을 잤다고 하니 모두가 밤의 도서관을 좋아했던 건 아니라고 한다. 몽테뉴는 "책을 선택할 줄 아는 사람에게 책은 많은 즐거움을 주지만 노력 없이는 얻는 것도 없다. 순수한 즐거움을 확실하게 얻는 것도 아니다. 다른 것들에 비해 즐거움이 더 큰 것도 아니다. 불편한 점도 있어, 책은 성가시다. 예컨대 영혼은 즐겁지만 내가 전에는 잊지 않고 챙기던 몸이 활동하지 않아 지치고 힘들어한다"

망구엘은 책들의 오래된 목소리와 새로운 목소리가 자신의 주변의 공간을 가득 채운다 한다. 다양한 양분이 근육 하나하나에 스며드는 기분이라 한다. 그 목소리 잠자리까지 따라와 꿈으로 이어진다. 밤이 되면 차분히 책을 읽고 정돈된 책을 보며 비슷한 것들끼리 짝을 짓고, 그 책들의 공통된 역사를 빚어낸다.

그는 낮에는 글을 쓰고 마음 내키는 대로 책을 읽으며 재정리한다. 새로 구한 책들을 따로 챙겨두고, 그들을 위한 공간을 마련한다. 새책들은 꼼꼼히 검열하고 중고책은 모든 표식을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남겨둔다. 책의 동반자들의 흔적이자 발자취이기 때문이다. 자신 안에 심어진 패턴으로 도서관의 형태와 구분을 따른다. 임의적 순서, 주제의 선택, 책 한 권 한 권의 사사로운 역사, 페이지들 사이에 남겨진 어떤 시대와 장소에 대한 흔적들.....

배우기 좋아하는 사람과 책 읽기 좋아하는 사람 간에 어떤 상관관계도 없음을 버지니아 울프는 이렇게 말한다. "학자는 고독한 사람으로 진리를 찾아 책을 뒤적인다. 그 재미에 빠져 소득이 준다. 독서가는 처음부터 뭔가 배우려는 욕심을 억눌러야 한다. 책을 읽다 보면 지식이 어쩔 수 없이 더해지기 마련이다. 지식을 추구하고 체계적으로 독서하면 전문가나 권위자가 되려 한다. 순수하고 사심 없는 독서를 향한 인간적 열정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마음가짐은 사라지기 십상이다"

모든 사서가 어느 정도까지는 건축가이다. 사서는 책 전체를 하나의 구조물이라 상상하며, 그곳에서 독서가가 길을 찾고 자아를 발견해 살아가도록 책을 쌓는다.

- 파리 퐁피두 센터 도서관 관장 미셸 멜로 -




프랑스 국립도서관 라브루스트실(室) 이상적 도서관은 옛 성당의 바닥처럼 두 형태의 혼합, 원형과 직사각형, 타원형과 정사각형이 혼합된 모습일 것이다.



나는 이 책들이 없는 곳에서 일해야 했던 때가 꽤 있었는데,
그때마다 눈이 멀고 목소리를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내 도서관이 내 삶의 일대기라면, 내 서재는 내 정체성을 결정짓는 곳이다.
- 알베르토 망구엘 -




# 나만의 도서관을 위해...

독서가의 힘은 눈으로 읽는 것을 해석하고 관련지어 생각해서 변형시키는 재능에 있다. 지식은 텍스트로부터 되살려내 다시 경험으로 승화시킨 경험, 독자 자신이 속한 세계만이 아니라 바깥 세계까지 보여준다. 독서가는 책이라는 삶에서 하나의 장章에 불과하다. 자기가 아는 것을 남에게 전하지 않으면, 책을 산 채로 묻는 것이나 똑같은 짓이다.

독서가는 자신이 읽는 책에서 많은 영향을 받는다. 망구엘은 닥치는 대로 책을 읽으며 책들을 자유롭게 관련짓고, 조그만 꼬투리라도 연결고리를 찾으며 책들이 하나의 공간에서 함께 호흡하게 한다. 책들은 의외의 행태로 모인다. 유사성, 연대순으로 정리되지 낳은 계보, 공통된 관심사와 주제 등과 같은 비밀스러운 규칙을 따른다. 모든 서재 및 도서관은 주인과 독자층의 자서전적 성격을 띤다. 소장한 책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는 증인이며, 책에 의해서 심판받는다.

서재는 그 주인에게 '에우테미아(euthymia,그리스어)'-영혼의 행복-을 준다.



*보르헤스 (남들은 도서관이라 부르는) 우주...... 거실과 침실의 책장에서.....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길버트 키스 체스터턴, 헨리 제임스, 러디어드 키플링의 책들 및 존 윌리엄 던의 <시간 실험>, H.G 웰스의 과학 소설들, 윌리엄 윌키 콜린스의 <문스톤>, 에사드 케이로스의 소설들, 19세기 아르헨티나 작가들의 책,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 <피네건의 경야>,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슈보브 <상상적 생활>, 존 딕슨 카, 밀취드 케네디, 리처드 헐의 탐정 소설들, 마크 트웨인 <미시시피 강의 생활>, 아널드 베넷<생매장>, 데이비드 가넷 <여우가 된 부인>, <동물원의 남자>, 오스발트 슈펭글러<서구의 몰락>, 에드워드 기번 <로마제국 쇠망사>, 에마누엘 스베텐 보리와 아르투르 쇼펜하우어의 저서들, 수학과 철학 서적들, 프리츠 마우트너의 <철할 사전>,시집들, 라틴 아메리카에서 발간된 영국 및 아이슬란드 문학전집, 영국의 민족학자 월터 윌리엄 스키트의 <영어 어원 사전>, 고대 영어로 쓰인 영웅시 <몰던 전투>의 주석판, 리하르트 마이어 <고대 독일 종교사>, 아르헨티나 시인 엔리케 반츠스, 하인리히 하이네, 후안 데 라 크루소의 시집들, 단테에 대한 연구서들


도서관의 이상적인 역할은 우연히 기막힌 보물을 찾아내는 것, 벼룩시장과 같다. 책을 서가에 꽂아두기만 하는 것보다 책의 내용을 마음에 새기는 것이 더 중요하다. 망구엘은 이미 자신의 책들의 관계망을 완전히 추적할 수 없고, 서로 연관 있는지 기억하지 못하고 알지도 못한다. 이런 관계는 우연으로 치부할 문제가 아니라 한다. 책들은 읽히는 순서에 따라 변한다 한다. 정신의 도서관 매번 새로운 모습으로 끊임없이 변한다.


# 미래의 독서가를 위해...

모두가 도서관을 이용하지 않으며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이 언제나 다수를 차지했다. 독서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 사람의 수는 소수에 불과했다. 두 집단의 비율은 변하지 않는다. 변한 것이 있다면, 책과 독서의 기술에 대한 시선이다. 거기에 더해 좋은 책과 읽히는 책이 다시 뚜렷이 구분된다. 사회는 독서 행위를 취미, 심심풀이, 부수적인 행위, 도서관을 불편한 창고로 여긴다.

웹은 즉각적이어서 현재만이 존재할 뿐 시간을 점유하지 못한다. 우리는 자신이 빚어내는 창조물의 변화 과정을 더 이상 기록하지 않는다. 상투적인 줄거리는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할 것이다. 수천 년 동안 축적한 공통된 어휘를 잃어가고 있다. 인간의 존재가 두 방향으로 흐른다. 하나는 우리가 흔히 세상이라 칭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를 가리키는 몸에서부터 타자이며 바깥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향해 흘러가는 것이다.

책은 가능성이다. 무수한 가능성.... 우리는 읽고 싶은 책을 상상할 수 있다. 상상까지 막을 수는 없다. 우리는 보유하고 싶은 책으로 가득한 도서관을 상상한다. 자아의 절대적 주인은 원하는 만큼 도서관을 사용하고, 원할 때 도서관에 출입하며, 원하는 만큼 도서관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책은 우리 삶에서 최고의 재산이다. 책은 우리의 변하지 않는 영원한 친구이다. 나만의 도서관을 갖지 못 했던 것이 못내 아쉽다.
- 바를람 샬라모프 <나의 도서관들> -




이집트 신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인식 가능한 세계로 경계 지어진 원의 중심으로 여겨졌다) / 21세기 웹은 무한의 의미(무한의 일종, 유형적 무형성을 부여했다.






<마무리>


이 책 속의 많은 역사정보와 이야기들은 내 머릿속에 남지 않는다는 걸 나는 무척 잘 알고 있다... 나의 초심을 생각하고 있다. 진정한 독서가는 묵묵히 책을 읽고, 필사하는 분들이지 싶다. 고독한 학자는 아니지만 자신의 위치에서 꾸준히 읽는 것으로 이미 그 뜻을 이루고 있다.

나의 독서력을 깨부수려고 내 작은 머리를 혹사시켰다. 생각 없는 에스트라공을 밉상이라 여겼는데 어쩌면 나는 그 밉상짓을 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 무대에서 바보와 더 바보의 차이는 '사랑'이 판가름하지 않을까 싶다. 아는 척하는 블라드미르는 더 바보짓을 하는 에스트라공을 업고서라도 데려가려 한다. 함께 그 무대에서 기다리지 않나.... 한 번도 둘 중 내가 누구인지 대입해보지 못했는데.... 바보짓인지 모르고 물었지만 여하튼 깨달아서 다행이다. 순간순간 블라드미르와 에스트라공이 되겠지만 그 무대의 나무 한 그루 기억하길.... (p.s 사무엘 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를 떠올리며...)

책을 읽는 것은 몸통으로 읽어낸다는 이 말을 나는 새겨듣는다. 내 정신의 도서관 속 그 이미지와 텍스트들은 기억의 벽을 서서히 허물어트려 조금씩 변형된다. 기억해 내려면 미로 속을 헤매든지 겨우 도달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과거를 돌이켜보고는, 처음에 읽던 책들이 나중에야 명확해진 관심사와 어렴풋이 관계가 있다는 걸 확인하고 놀란다 한다. 독서 방향이 나타내고 있는 바가 궁금하긴 하다...

독서가들은 서재를 주제로 계층적으로 분류해야 할지 서적의 규모와 구입 날짜를 바탕으로 정리해야 할지 논쟁하였다 한다. 바르부르크는 기계적 분류법은 위험하며 좋은 이웃 법칙에 대해 언급한다. 어떤 책이나 크고 작은 정보를 담고 있고 이웃에 놓인 책을 보완해주기 때문에 관련된 책을 한꺼번에 모아 놓으면 제목만으로도 인간 정신의 근본적인 힘과 역사를 인식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끊임없이 본능적으로 서가에 꽂힌 책들을 재정리했다.

알베르토 망구엘은 정말 책을 자신의 도서관을 사랑했다. 그에게 위안이었을 그 공간이 참으로 부럽다.... 한 번도 서재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 없는데....


내 마음을 종잡을 수 없었다. 새가 눈에 띄면, 열심히 쫓아가던 사냥감을 버리고 어김없이 새를 향해 짖어대는 사냥개 스패니얼과 다를 바가 없었다. 내가 정당하게 불만을 터뜨릴 수 있고 당연히 불만을 터뜨려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디에나 있지만 아무 데도 없는 사람처럼) 나는 모든 것을 좇았다..... 나는 별다른 수가 없어 큰 욕심 없이 많은 책을 읽었다. 이 도서관 저 도서관을 다니며 다양한 저자의 책을 두서없이 닥치는 대로 읽었다. 책을 읽는 기술이나 질서도 없고, 기억력과 판단력도 부족해 작은 이익밖에 얻지 못 했다.
- 로버트 버턴, <우울의 해부> 중...





by 훌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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