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죽어있고 생명이 없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숨어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많은 물건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지만
무기이기도 하지. 그것은 1604년
영국에서 만들어졌네.
사람들은 그것에 꿈을 실었네. 거기에는
소리와 분노, 밤과 선홍빛이 있네.
내 손바닥이 그것의 무게를 느끼네. 그 안에
지옥이 담겨 있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운명의 여신이자 수염 난 마녀들,
어둠의 법칙을 수행하는 단도,
죽어가는 것을 보게 될
성의 미묘한 공기,
바다를 피로 물들일 수 있는 가냘픈 손,
칼과 전쟁터에서의 함성.
이 조용한 소동이 잠들어 있네.
조용한 서가 위, 그중 한 책의 영역 안에서
잠들어 있네. 자면서 우리를 기다리네.
시가 내게 온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나는 사로잡히게 돼요.
거기서 해방되어야 해요.
유일한 방법은 그걸 글로 쓰는 것이지요.
다른 방법은 없어요.
쓰지 않으면 사로잡힌 상태가 계속되죠.
<보르헤스의 말> 중 P66, P121-122
http://roh222.blog.me/2209967565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