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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훌리아 Jun 23. 2016

벤야민, 이 거리를 산보하는 자에게....일방통행로

벤야민 생전 유일한 비학문 책이다. <일방통행로,1928>는 현실과 초현실세계의 다양한 경험들에 대한 아포리즘-인생의 깊은 체험과 깨달음을 통해 얻은 진리를 간결하고 압축적으로 기록한 명상물로서 가장 짧은 말- 모음이다. 기술실천적 글쓰기, 정치가로서 혁명적 글쓰기, 지식인으로서 성찰을 담고 있다.


그는 <일방통행로>로 시작하여 <파리의 파사주 프로젝트> -1820년대 파리 상점가를 가리키는 파사주Passage(이행, 통로 등의 뜻)들은 1930년대 생겨난 백화점들에 밀려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기 시작한다. 파사주들 속에 잠재된 혁명적 에너지를 읽어내는 지적 작업-의 종결로 보았다. 이 작업을 13년간 매달렸고 결국 완성하지 못한채 죽는다.

천재에게는 어떠한 단절이나 힘겨운 운명적 타격이라 할지라도, 완성하지 못한 단편들이 더 비중 있게 다가온다.-는 그의 말처럼 파사주는 미완으로 남아서 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산문으로 남았을지 모른다. 그의 사유의 모티프들은 그의 글쓰기 방식, 문체, 형식, 그의 단편들 더 나아가 파사주 프로젝트까지 연속성을 뛴다. 

<일방통행로>는 도시의 길거리 모습, 다양한 공간들, 이 거리를 산보하는 자에게 열림과 닫힘, 멀어짐과 가까워짐의 모습들로 보여지고 읽힌다. 그의 각별한 의미를 지닌 이미지다. 이미지들의 배치는 몽타주적 방식이며 모두 60편의 짧은 글로 이루어져 있다. 입구에 위치한 주유소는 대도시, 역동성, 에너지를 상징하고 있다. 확신과 신념이란 인간적인 덕목이 도시 속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고리타분한 덕목이 되었다.는 식으로 도발적, 의미심장함 내세운다.

발터 벤야민의 <일방통행로EinbahnstraBe>



1편 일방통행로



# 우리 자신의 매력포인트


아이는 꿈속에서처럼 산다. 유목민으로 보내는 아이의 세월은 꿈의 숲속에서 보내는 시간들이다. 우리가 열다섯의 나이에 이미 알고 있었거나 실행했던 일만이 언젠가 우리 자신의 매력 포인트를 구성하게 된다. 소년시절이 지나면 결코 만회할 수 없는 일, 부모로부터 도망칠 기회를 놓친 일이다. 특이하게도 아이들에게는 뭔가를 만드는 작업장으로 찾아가는 성향이 있다. 자신들의 사물세계, 이 커다란 세계 안에 있는 작은 세계를 자신들을 위해 만들어낸다.

책 읽는 아이
텍스트는 눈송이들처럼 온화하고 은밀하게, 촘촘하고 끊임없이 아이를 감싼다.
책을 읽을 때 아이는 귀를 닫아둔다.
아이는 형상과 메세지를 흩날리는 눈발 속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주인공의 모험들을 문자들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읽을 줄 안다.
온갖 등장인물들이 아이에게 입김을 분다.
자리에서 일어나면 아이는 마치 눈으로 뒤덮인 것처럼 
온몸이 방금 읽은 것으로 흠뻑 덮여 있다.
p109-110




# 성스러운 텍스트


베껴 쓴 텍스트만이 텍스트에 몰두하는 사람의 영혼에 지시를 내린다. 이에 반해 텍스트를 읽기만 하는 사람은 텍스트가 원시림을 지나는 길처럼 그 내부에서 펼쳐 보이는 새로운 풍경들을 알 기회를 갖지 못한다. 해설과 번역은, 성스러운 텍스트라는 나무에서는 영원히 바스락거리는 잎사귀들이고, 세속적 텍스트라는 나무에서는 제때익어 떨어지는 열매들이다. 

문학이 중요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은 오직 실천과 글쓰기가 정확히 일치하는 경우뿐이다. 광고는 문자를 결국 강압적 방식으로 수직으로 내몰고, 책의 태곳적 정적에 침잠할 기회가 거의 사라져버렸다. 트락타트Traktat는 아라비아 형식, 외부에서 알아차릴 수 없고 내부로부터만 열린다. 서로 중단 없이 엉켜 들어가는 장식의 망들로 덮여 있다.

좋은 산문을 쓰는 세 단계 작업
1) 산문을 작곡하는 음악의 단계
2) 그것을 짓는 건축의 단계
3) 마지막으로 그것을 엮는 직조의 단계


# 작가의 기법


어떠한 생각도 자기도 모른 채 흘려보내지 말 것이며, 외국인 등록 일을 담당하는 관청처럼 자신의 노트를 엄격히 관리할 것. 영감이 떠오르는 대로 따라가지 말고 펜을 뻣뻣하게 굴릴 것. 말은 생각을 정복하지만 글은 그 생각을 지배한다. 집필의 단계(사고-문체-글) 사고는 영감을 죽이고, 문체는 그 사고를 묶으며, 글은 그 문체를 보상해준다. 작품은 구상의 데스마스크totenmaske다. 파괴할 줄 아는 자만이 비평할 능력이 있다.



# 인간다운 사용법


우리는 우리를 에워싼 힘들과 은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개인이나 공통체의 고통에서 그 이상 넘어갈 수 없는 경계는 하나뿐이다. 그 경계는 곧 파괴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태어나면서부터 짊어진, 수십만의 사람들을 얽어맨 지금의 이러한 궁핍은 모욕적인 것이다. 이미 오래전에 잃어버린 삶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절실한 위험의 순간에 지성의 인간다운 사용법(예견의 능력)을 발휘하는 데 실패한다. 신은 모든 인간에게 영양을 공급한다. 그리고 국가는 모든 인간을 영양실조에 걸리게 한다.



# 물질세계의 위험성


사물에서 온기가 빠져나간다. 매일 사용하는 물건들이 소리 없이, 그러나 집요하게 우리를 밀쳐낸다. 독일의 봄이 영원히 오지 않는 것은 독일의 자연이 해체되고 있는 무수한 유사 현상 중의 하나일 뿐이다. 모든 사물은 서로 섞이고 혼탁해지는 부단한 과정 속에서 그 본성을 잃어버리게 되어, 고유한 것 대신에 이중적인 것이 그 안에 자리를 잡게 된다. 도시도 그렇다.

몸이 굳어지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물건들의 냉기를 
우리들의 온기로 완화시켜야 하고
피를 흘리지 않기 위해서는 가시 돋친 물건들을 
아주 숙련된 솜씨로 다루어야 한다.


지적 동반자이자 연모의 대상이었던 아샤 라치스(Asja Lacis)


# 순수사랑, 이별사랑


나와 그녀, 우리 둘 가운데 어떤 일이 있어도 내가 먼저 상대를 보아야만 했다. 아주 복잡한 구역, 어느 날 사랑하는 한 사람이 그곳으로 이사하자 일순간 훤해졌다. 극소수이긴 하나 사랑에서 영원한 여행을 찾는 이들도 있다. 그 사람을 집중적으로 생각하다보면, 거의 모든 책에서 그 사람의 초상을 발견하게 된다. 누군가를 아무 희망 없이 사랑하는 사람만이 그 사람을 제대로 안다.

우리는 애인을 바라보는 순간 우리 자신을 벗어난 곳에 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곳에서 우리는 고통스러울 정도의 긴장과 환희를 느낀다. 이별하며 떠나는 자는 얼마나 쉽게 사랑을 받는지! 사라져가는 사람을 비추는 불꽃은 그만큼 더 순순하기 때문이다. 시선은 한 인간의 마지막 남은 부분이다.

적어도 한 번은 어떤 일이 있어도 
자기 혼자 외따로 있으면서
자신의 감정을 우선 스스로 관찰하고 즐겨본 연후에야
비로소 사랑하는 여인에게 가서
사랑을 고백한다.






<생각>
발터 벤야민 선집 <일방통행로, 사유이미지> 페이지 109-110에 책 읽는 아이, 지각한 아이, 군것질하는 아이, 회전목마를 타는 아이, 술래잡기하는 아이는 <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시절> 단편들에 나온글이라 한다. 나는 이 부분이 가장 즐거웠다. 짧은 글 다 옮겨놓고 싶었다. 내 안의 아이같은 구석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자신이 실천한 이미지적 사유, 지각, 신체, 매체, 기억에 대한 관심 등 전방위적으로 글들을 나열하고 있다. 


파스칼 키냐르(1948~)의 선배같다고 표현하면 이상할 테지만.. 철학적 아포리즘을 모은 벤야민(1892~1940) 사상의 몽타주-조각 요소들이 어울려 하나의 큰 그림-적 글쓰기, 꿈, 위트 등 사유의 이미지화의 파편적인 글들은 파스칼 키냐르의 것과 비슷했다. 벤야민을 좌파 아웃사이더로 구분짓는 부분과 소설을 썼는지 모르겠지만... 그 부분에서 그와 다를지도 모르겠다. 은둔자 키냐르.. 그마저도 같으려나 모르겠다. 그도 아웃사이더...
 
엔지니어로서 작가는 이 거리를 뚫었다. 그녀의 이름을 따 '아샤 라치스 거리'로 부른다-라고 표현한 부분이 참 애틋하고 좋았다. 그녀와의 관계로 인해 도라와 결혼생활을 종지부를 찍으며 그는 점차 무산계급 지식인으로 전락하기 시작한다. 위자료로 자신이 수집해온 고서 등을 고스란히 넘겨주고 물려받은 재산까지 처분했다. 라트비아 출신 아샤 라치스는 그에게 사상적 좌경화, 평론가로서 입지를 굳히는 등 1920년대 후반 이후 많은 영향을 주었다. 

빨리 알고 싶은 마음에 채할듯 읽어버렸다. 조금은 아쉽다.... 주관적인 발췌뿐이었고... 해설편을 다시 읽고서야 이해가 된점으로 보아 더욱 다시 읽어야겠구나 생각했다. 또 시대상엔 인간의 참혹하고 일그러져 있는 부분들이 있다. 그는 사물에서 이해하려고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폐허로 변해가기 시작한 건축물들 속에 시선을 던진다. 어디까지 이해했는지도 모르겠고... 여기서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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