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훌리아 Sep 26. 2015

<세상의 모든 아침>은 다시 오지 않는다...

음악은 흐르는 강물...

세상의 모든 아침
Tous les matins du monde



비올라 다 감바(viola da gamba)는 첼로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원전 악기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자주 나오는 악기여서 나름 상상하기를 첼로라고 생각했는데 첼로의 모태 격인 악기가 맞았다. <세상의 모든 아침>은 1960년 프랑스 봄, 아내를 갑작스레 잃은 음악가 생트 콜롱브의 이야기다. 그는 극도의 수줍음과 무표정에 언제나 심각했다. <회환의 무덤>을 작곡한 것은 아내의 죽음 때문이었다.

이런 얼굴과 움직임이 적은, 경직된 몸짓 뒤에는 복잡 미묘한 세계가 감추어져 있었고, 이것은 오로지 그의 음악을 통해서만 읽혔다.(p21)



그는 두 딸아이 마들렌과 투아네트를 엄격하게만 대한다. 따뜻한 표현은 못해주지만 자녀들과 비올라 다 감바 삼중주를 연주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의 연주는 왕의 부름을 받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그러나 왕명도 단칼에 거절해 버린다. 왕은 그가 포르루아얄파와 관련 있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생각을 접어둔다.

포르루아얄파는 17~18세기 프랑스에서 전개된 얀센운동의 주동자들이다. 거의 무신론에 가까웠던 얀센주의는 인간의 자유의지도, 이성도, 사랑도 믿지 않았다. 인간 본성에 대한 이들의 깊은 통찰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부정하는 비관주의로 오해되었고, 자기 존재에 대한 불안의식은 인간을 지나치게 냉소적으로, 절망적으로 만든다는 비판을 받았다.(p31)





불평 없이 침묵을 지켰던 마들렌과 반항하고 대들던 투아네트는 아름답고 재능을 갖춘 처녀로 성장한다. 그는 어엿한 여인이 된 두 딸아이를 낳아준 아내 생각에 잠겼다.

어느 날 밤 아내가 죽음과 조우하기 위해 그를 떠났을 때 작곡한 <회한의 무덤>이 기억났다.(p.34)
그는 여전히 깊은 사랑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똑같은 사랑, 똑같은 단념, 똑같은 밤, 똑같은 추위였다.(p77)
그는 자신의 보르드에서 소리 나지 않게 비올라 다 감바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악보도 필요하지 않고 자신의 손만이 자유자재로 움직여 음이 높아져갈 때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믿어지지 않는 일이 일어난다. 그의 부인이 나타났다. 이후로 몇 번이고 그가 열정적인 연주를 할 때면 그녀가 나타나 그와 이야기를 나눈다.
그의 깊숙한 곳에서 뭔가 완성되었다는 느낌이 있었다.(p38)



생트 콜롱브 앞에 목소리가 망가져 더 이상 성가대에서 노래할 수 없어 거리로 쫓겨난 한 소년이 나타난다. 그 소년은 아버지처럼 갖바치는 되고싶지 않았다. 쫓겨난 굴욕을 되갚기 위해 그는 음악가가 되어서 자기를 저버린 목소리에 복수해야겠다고 유명한 비올라 다 감바 연주자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어렵게 제자로 받아들여졌지만 인정은 받지 못한다.

자네의 망가진 목소리가 나를 감동시켰네. 자네 고통 때문에 받아들였지. 자네 기교 때문이 아닐세(p53)

  


제자가 된 마랭 마레는 그로부터 소리를 찾는 법을 배운다. 비에브르 강 하류에서, 보쟁씨의 붓 소리에서, 두 여인이 대사를 읊는 소리에서, 뜨거운 오줌 소리에서... ㅎㅎ 마레는 스승에게 배운 대로 응수하기에 이른다. 이런 시간은 그러나 오래가지 않았다. 마레는 왕의 부름을 받고 연주를 하고 돌아온 후 생트 콜롱브는 마레의 비올라 다 감바를 부숴버린다.

악기란 무엇인가? 악기는 음악이 아닐세(p68)



스승에게는 내쫓겼지만 마들렌은 그를 감쌌다. 그에게 아버지한테 배운 여러 가지 것들을 전수해 준다. 1676년 여름 스무 살이 된 마레는 왕실 음악가로 곧 입궁하게 된다. 마레는 천둥번개가 치는 어느 날 스승의 오두막 아래에서 그의 연주를 엿듣고 있다 그만 들키고 만다. 매질을 당했지만 그것보다도 더 스승을 이해할 수 없었던 마레는 그뒤 돌아오지 않았다. 오랜시간이 지나고....... 어느 겨울 다시 마레가 스승 앞에 섰을 땐 음악을 찾기 위해서 궁을 떠났을 뿐이었다.

선생님, 마지막 수업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내가 첫 수업을 해도 되겠소?  (p118)



영화를 통해서 예술가들의 광기를 보기도 했다. 예술이란 혼을 잃어버릴 정도의 무엇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기도 했다. 생트 콜롱브는 연습을 통해 실기에 완벽을 기했다. 선율이, 혹은 탄식이 그의 손가락 아래에서 흘러나왔다. 선율이 다시 생각날 때면 그를 몹시 괴롭힐 때면 얼른 붉은 음악 노트를 펼쳐 적기 시작했다. 신의 경지에 이른 음악이 탄생하는 순간을 목도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의 보르드에서 메마르지 않은 살아남은 혼이 연주를 시작한다.

생트 콜롱브, 이 음악가는 오두막을 자신의 '보르드'라고 불렀다. 보르드는 버드나무 아래 물이 흐르는 축축한 가장자리를 가리키는 옛말이다.(p18)                                    



옮긴이의 말을 빌자면 파스칼 키냐르 작가는 무명자를 발견하고 탐색하길 즐긴다고 표현한다. 속세에서 한자리 차지했던 유명인 마랭 마레의 비올라 다 감바 스승이며, 비올라 다 감바에 현 하나를 덧붙여 더 깊은 저음을 연주했다는 기록만 가지고 주인공을 만들어냈다. 앞으로 읽게 될 그의 책들을 미리 엿보자면 그의 주인공들은 모두 격세하는 은둔자들이거나 야망을 버린 야인들이라고 한다.

그저 음악이 없어 견딜 수 없을 지경이 되면 몸이 지쳐 쓰러질 때까지 연주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p131)



마랭 마레와 기운이 다른 두 자매의 관계는 스승인 생트 콜롱브에게 가는 과정일 뿐인 것일까? 단지? 그런 거라면 너무도 가혹하다.. 마들렌의 침묵은 길었고 무엇으로 위로를 받을까 생각했는데... 그것은 마레의 회한과 눈물의 연주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과 하나가 되고 사랑도 하나가 되려는 몸짓으로.....

세상의 모든 아침은 다시 오지 않는다.(p112)



예술가를 만나면 내가 무척 열정이 모자란듯싶다. 견딜 수 없는 지경을 겪어보지 않아서 영원히 모를 테지만....  

                               


<음악의 본성, 번역가 류제화>

음악이 시간이라는 길게 누워 흐르는 강을 껴안고 함께 가는 것이라면, 언어는 강물 위로 튀어 오르는 잉어처럼 시간을 이따금 박차고 나온다.  음악이 현재진행형의 상실이라면, 언어는 끝나버린 사랑이다. 인간의 언어에 늘 되말하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과 오기가 배어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By 훌리아

보리차를 유리글라스에 담아...

http://roh222.blog.m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