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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훌리아 Sep 26. 2015

판화가 몸므 '로마의 테라스'

재생시킬 시간

몸므, 그가 보았을 절벽 아래 파도를 생각한다.


<로마의 테라스> 17세기 주인공 '몸므'는 판화가이다. 35년간 작업을 하면서 몸므는 한 번도 손의 존재를 자각해본 적이 없었다. 파스칼 키냐르의 책을 읽으면 쓸 말이 사라진다. 보는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읽으면서 보이는 책, 읽는 순간 나타남을 느낀다.



몸므는 자연

그저 번개나 달이 되었거나 혹은 폭풍우가 몰아치는 대양에서 해안의 검은 바위에 부딪혀 거품을 일으키는 파도였을 수도 있었으리라. 옷자락 밑으로 우연히 드러난 알몸이거나 땅속에서 발견되는 짐승의 뼈, 혹은 규석의 심지였을 수도 있었으리라.(p37)



아브라함 반 베르헴이 말한다.

"사람은 늙어갈수록, 자신이 통과하는 풍경의 광채에서 몸을 빼내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네. 바람과 세월에 닳고, 피로와 기쁨에 탄력 잃은 살갗, 갖가지 체모, 눈물, 땀방울, 손톱과 머리카락. 이런 것들이 마치 낙엽이나 죽은 나뭇가지처럼 땅에 떨어져, 두툼한 살갗 외부로 점점 더 빈번히 빠져나가는 영혼을 흩어지게 하지. 마지막 떠남은 사실상 흩어짐에 불과해. 늙어갈수록 나는 내가 도처에 있음을 느끼네. 이제 내 육체 속에는 내가 많이 남아 있지 않아. 나는 언젠가 죽는다는 것이 두렵네. 내 살갗이 지나치게 얇아졌고, 구멍이 더 많이 생겼다고 느끼지. 난 혼자 중얼거리네. '언젠가 풍경이 나를 통과하겠지.'" (p82-83)



몸므가 외친것 처럼 그 노인을 끌어안고 두 볼에 입을 맞춘것처럼 나도 누군가를 떠올리고 그리워했다.



생 시랑의 말이다.

"어둠은 이 세계를 출생과 죽음 사이로 분리시킨 강렬한 대비를 표현하기에는 언제나 부족하다. 그렇다고 눈을 가려보아도, 눈을 가린 띠를 두 번 돌려서 뒤통수에 묶에보아도 소용이 없다. '출생과 죽음 사이'하고 말해서는 안 된다. 하느님이 말씀하시듯 '성Ssexualite과 지옥 사이'라고 단호하게 말할 필요가 있다"(p91)



몸므의 말년

"동판을 마주하고 앉으면 비애가 느껴진다. 내게는 한 이미지를 몽상할 시간, 아니 눈앞에 붙잡아놓고 재생시킬 시간이 더 이상 없다. 내 작품은 다른 곳에 있다."(p131)                                     



몸므의 사랑, 회피를 다는 이해할 수 없었다. 잃어버린 여인 나니를 판화에 새기며 다른 모습으로 그녀의 마음을 유혹한다. 마리는 그녀의 그림자일뿐이었다. 지난 시간의 회상으로 남은 생을 살아버린 남자는 그녀의 분신과 마주치는 것을 거부한다. 문을 굳게 닫는다. 생을 다하는 그날까지....      



By 훌리아

보리차를 유리글라스에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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