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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훌리아 Aug 05. 2017

 아주 오래된 서점

헌책방의 매력, 현실과의 미묘한 엇갈림

책방 주인은 까다로워 보여도 실은 책을 좋아하고 대화를 좋아하는 사람일 거란 생각이 든다. 너무 당연한 것 아닌가? 책을 매개체로 마음을 터놓게 되면, 프로로서 책에 대한 지식이나 정보를 때로는 지겨울 정도로 아낌없이 알려준다. 헌책방을 지혜롭게 이용해서 살리는 것도 죽이는 것도 당신 하기 나름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아는 척이나 허세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 헌책방 주인은 오히려 순진하고 성실한 책벌레를 좋아한다.

헌책방은 서점보다 책을 싸게 살 수 있는 장소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그곳에는 전쟁을 사이에 둔 종이의 역사가 있고, 출판사와 작가의 시행착오가 있으며, 인쇄술의 변화가 있고, 사람들의 생활이 있으며, 조상의 지혜와 장난기가 있고, 시대의 색과 거기서 불거져 나온 선이 있으며, 그리하여 끝없는 낭만이 있다.




아주 오래된 서점   /저자 가쿠다 미쓰요, 오카자키 다케시

출판 문학동네 / 발매 2017.02.06.

책방 가는 길 yes24 http://yimay.kr/t4939xpoam




<아주 오래된 서점> 저자 가쿠타 미쓰요는 1년 동안 오카자키 사부의 헌책 도장에 다니며 지령?을 받는다.
1. 어린 시절 즐겨읽던 책을 찾아라!
2. 책 진열법을 배워라!
3. 헌책방을 만끽하라!
4. 청춘시절의 책을 찾아라!
5. 초판을 찾아라!
6. 균일가를 노려라!
7. 그 지방 작가의 책을 찾아라!
8. 취향에 맞는 책을 찾아라!



헌책방을 운영하며 드는 생각 중 하나가, 물건이나 사람의 소멸은 그 자체가 기억이나 기록의 소멸을 뜻한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물건만이라도 남아 있으면, 그에 관련된 '이야기'를 알고 싶어 하고, 또 알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나타날 가능성은 남지 않을까요.

-헌책방은 그 이야기를 넘겨주는 중개자-





일본 고서점 거리 진보초(도쿄 시내)




인이 좋아하는 책만 두고 싶고, 실제로 좋아하는 책만 둔다는 가게 주인의 말처럼 책장은 서로 연관성을 띠며 이어져 있다. 서점이든 헌책방이든, 가끔 내 책장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드는 가게가 있다. 물론 내 책장은 이렇게 거대하지 않지만, 구석구석에 낯익은 책이 있고 낯선 책은 죄다 읽고 싶어지며 이곳이 가게라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헌책방 순례의 목적은 그저 책을 사러 가는 것이 다가 아니다. 가게에 이르기까지 풍경 구경도 재미있고, 기분도 즐겁다. 책을 읽듯 거리를 읽는다. 헌책방을 향해 낯선 거리를 걸어가는 기분은 좋아하는 작가의 학수고대하던 시작을 펼치는 느낌과 비슷하다.  



사람은 자신의 체험으로 세계를 만든다.
내게 헌책방의 이미지란 너무도 확고하게 된장절임이었다.
어수선하게 늘어놓은 책, 빛바랜 얇은 종이로 싸놓은 책,
형광등의 흰 불빛, 책이 겹겹이 쌓인 좁은 통로,
먼지와 종이가 뒤섞인 냄새,
고요히 흐르는 정적, 안경을 낀 무뚝뚝한 초로의 가게 주인.

방금 둘러본 두 가게는 나의 바깥쪽 세계에 있었다.
세계가 갑자기 넓어진 느낌이다. 

-<오래된 서점> 가쿠타 미쓰요 -






헌책방 안은 약간 어두컴컴하고 낡은 책이 가만히 소리를 흡수하듯 벽을 만들며, 시간이 묘하게 가라앉고 있다. 활짝 열린 문 건너편에 일정한 속도로 나아가는 눈부신 현실이 있다.  물건이 금방 흘러넘쳤다 사라지는 피상적인 현실과는 달리, 시간이 침전하는 신기하게 고요한 공간을, 그 매력을 알았으면 좋겠다.



친구 집에 가면 그 집의 책장에는 그 친구를 연상케 하는 책이 꽂혀 있다.
친구는 그 책을 전부 읽었을 테고, 그러므로 그와 그녀는 그답게, 그녀답게 자랐다.
책장과 그, 책장과 그녀가 완벽하게 일치한다.

그런 것이다. 
헌책방의 책장에 꽂힌 책은 전부 한 번은 누군가에게 읽힌 뒤 그 누군가를 완성시키는 작은 세포 하나가 되었고, 그런 다음 여기로 왔다는 느낌이 든다.






처음에는 좋다 싶은 책이 나올 때마다 그 장소를 기억해두었지만,
얼마 못 가서 분명 잊어버릴 것을 깨닫고 마음에 드는 책은 꺼내서 껴안고 걷기로 했다. 그야말로 일생에 단 한 번뿐인 인연이다.



(↑)책에서 모두 발췌한 글임









책방을 다니는 사람, 책 읽는 사람이 어떻게 책을 좋아하는지 궁금해서 읽게 된 책이다. 나는 그다지 책을 좋아하는 않는 사람처럼 책이 없다. 온라인으로 책을 사거나 도서관에서 책을 찾거나 전자책을 읽는게 전부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 중엔 나 같은 사람은 없을 것만 같다. 지금도 읽는 책만 몇 권 가지고 있을 뿐이다. 동생 책을 가져다줘야 한다. 개츠비는 동생 책이다.

서면 교보문고에 다녀와서 다음날 우리 동네 북카페를 찾았다. 대형서점에서 느낀 허전함을 여기서 조금 메운 느낌이 들었다. 기억이 뒤죽박죽이지만, 대형서점의 화려함에 젖어 아기자기한 여러 기념품 등에 더 시선이 빼앗기기도 했다. 베스트셀러를 들여다보고 외국서적의 책장은 하나, 둘.. 읽어보고 싶은 책이 있긴 했지만,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찾으려던 책은 재고가 없고, 결국 온라인으로 구입해야 되겠군. 하며 돌아 나왔다.




우리 동네에도 북 카페가 있었다. (있었다니... 8년 만에 알았다) 조용한 곳이었고, 틀어놓은 음악은 내가 좋아하는 애니의 피아노 버전이 몇 곡 들어있었다. 밖은 무더웠지만, 시원한 이곳에서 홍차 라테와 아이스 아메리카노, 허니브레드를 순식간에 먹어치우고, 책장을 구경했다. 아니 책장을 먼저 구경했다. 이름 모를 종교 서적들이 책장 하나는 차지했고, 소설과 인문이 거의 대부분이 채워져 있었지만, 많은 수는 아니었다. 식객과 어린책이 있는 걸 보면 다양한 손님이 오고 가는 곳이구나 생각했다.





시몬드 보부아르 <위기의 여자>를 흥미진진하게 읽었는데 책을 가지고 가고 싶었다. 서점에서 찾은 기억이 나는 걸 보니 북 카페를 가고 다음날 책방을 찾았나 보다. 회사 첫 출근 후 이틀째인데 내 기억용량에 문제가 생겼나 보다. 퇴근길에 버스정류장에 가방도 두고 왔으니... 맙소사.  물병 뚜껑은 재활용 봉투에 던져버리고, 발코니로 나가는 문은 잠그지도 않았고, 위기의 여자는 바로 나일지도 모르겠다.



위기의 여자              

저자 시몬 드 보부아르

출판 문예출판사

발매 1998.11.10.

시몬 드 보부아르의 <위기의 여자>는 이방인이 돼 어버린 남편으로 인해 비로소 자신을 돌아보게 된 한 여자의 오뇌와 좌절을 일기 글 형식으로 그렸다. 9월 13일 레 살린에서 일기를 시작으로 다음 해 3월 24일까지 쓰였다. 중년부부의 삼각관계, 애정의 미묘한 갈등을 묘사하고 있다.


위기의 여자 - YES24 책방 가는 길 http://yimay.kr/t493927ahi







<오래된 서점>을 제대로 읽지 않고 쓰기 위해서 펼친 책이다. 읽어야지 생각했는데 일본의 헌책방이라 그렇구나 생각하고 잊어버렸다. 책을 좋아하는 그 감정만 느껴보고 싶었다. 나도 분명 좋아하지만, 그 느낌이 어떻게 다른지도 비교해보고 싶었다. 이상한 비교 심리다. 다들 어떻게 책과 만나는지 궁금하다. 나는 배회하다 이 책인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감정과 그래 이 책이었나 보다 애썼다. 그런 감정이 문득 들 때가 있다. 읽고 싶은 책만 진열하고픈 마음을 알 것도 같았다. 

내 청춘은 만화책인데, 가리지 않고 다 봤었는데... 만화책이 아닌 책은 잘 그러지 못하고 있다. 우선 이해하기 어렵고, 이해하려면 나는 정말 애를 써야만 한다. 아직 그 단계가 쉽지 않아서일까. 읽으면서 혼자 이해했다고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우려를 하고 만다. 독서에 할애할 시간을 부족하게 만드는 것은 나다. 줄어든 시간 앞에서 소설책 한 권을 집어 들지 못하고 있다. 읽고 싶은데 자신이 없어진다. 이렇게 우울감이 드는 독자도 있을까.

이 책에서 배울 점 하나는 책에 대한 끝없는 주시다. 분명 나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느리지만, 내 나름대로 주시하고 배회하고를 반복하지 않을까. 그러다 보면 조금은 나아져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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