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칼 키냐르 장편소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자신이 느끼는 것을 자신에게마저도 털어놓지 못한다.
- <은밀한 생> 파스칼 키냐르 -
<은밀한 생>은 몽상할 수 있는 그런 책이다. 몽테뉴, 루소, 바타유가 시도했던 것이다. 그들의 사유, 삶, 허구, 지식을 하나의 몸인 듯 뒤섞었다. 연속되는 하나뿐인 차원으로, 커다란 하나의 진주unio처럼 생각해야 한다. 책의 구성과 책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책의 형태와 책이 무엇에 호소하는지, 보여지는 것의 의미는 그것을 관찰하는 얼굴의 표정에서 얻어진다. 책은 진주의 영롱한 반사광을 독자에게서 얻는다. 무수히 여러 번.
이 글을 쓴 파스칼 키냐르는 자신이 네미와 함께 경험했던 것, 함께 경험했지만 아직도 완전히 느끼지 못했던 것에 (가까워 질 수 있도록) 다시 느끼게 하면서, 그녀의 가장 사소한 행동까지 언급하도록 자신을 부추기고 (여.전.히. 부추기고), 그것을 표현하기 어려운 어떤 증여(일방(一方)의 당사자(贈與者)가 자기 재산을 무상으로 상대방에게 준다는 의사를 표시하고 수증자가 이것을 수락함으로써 성립하는 계약)를 증명하려 한다.
2000년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을 수상하면서 '문학사에 기록될 만한 프랑스 현존 작가 중의 하나'라는 평가를 받은 파스칼 키냐르의 작품이다. 이 작품은 소설도 자서전도 철학 에세이도 심리 분석도 명상록도 이야기도 아니면서 동시에 그 모두이기도 하다. 최근 프랑스 문학의 동향을 철학과 문학의 사이, 시와 산문의 사이, 연대기, 자아에 대한 글쓰기, 과거, 일상으로 요약할 수 있다면 이 작품은 '프랑스 현대 문학'이라는 하나의 흐름, 그 한가운데에 있다.
내용적으로 보면, 이 작품은 스탕달의 『연애론』이후 사랑에 대한 가장 독창적인 담론이며, 사랑에 대한 담론을 통해 산란지로 모천 회귀하는 연어처럼 근원을 향한 탐색을 추구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은밀한 생'이라는 제목은 집단의 동의 없이 사랑에 빠진 연인들이 살아가는 방식, 즉 결혼이 아닌, 번식의 목적성이 배제된 철저하게 반사회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은밀하게 살아가는 방식을 의미한다.
키냐르 바다로 휩쓸리는 것, 침묵으로 흘러드는 것, 과거로 흡수되는 것을 이야기할 테다. 언제 어디로 빠져들지 모르기 때문에 예의주시해야만 한다. 강물, 삶, 나이... 열정의 정점에서 그것이 곧 소멸하리란 사실을 알게 된다. 갑작스럽게 닥칠 불행에 언제나 미리 울어버린다. 강물도 삶도 나이도 흐름을 바꾸기란 절대로 불가능하다. 그저 무력하게 기다릴 뿐이다. 화석으로 굳어질 이 순간을 찾아낼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깨달을 뿐이다.
다시 바다, 침묵, 과거.. 심연으로 가는 길. 우리가 절대로 멀어지지 못하는, 머물러 있는, 연어들과도 흡사한, 근원, 여명... '발견하다'와 '알아보다'는 '태어나다'와 '늙다'의 차이와 마찬가지다. 키냐르 자신은 아주 사소한 동요만 있어도 다른 세계 속으로 잠수한다. 잠긴 채 살고 있었다고 얘기한다. 그는 전날 밤의 꿈들,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기억을 떠올리거나, 그저 오래된 이미지들부터, 솟아오르는 새벽녘에 글을 쓰며 욕망을 낚는다고 한다. 사랑Amour이라는 라틴어 명사의 어처구니없는 무게에 얽어매는 불안한 관계에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
오래된 사랑이 있다.
오래된 사랑은 사랑의 맨 밑바닥에 있다.
첫사랑이 아니다.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비로소 우리들에게로 와서
오래된 사랑이 되었다.
그녀의 생각이 그녀의 삶이라 한다면, 그녀의 생각을 말하기란 어렵다. 수년전 자신이 사랑했던 그 여자(네미 사틀레_이름은 가짜다)는 이제는 이 세상에-다른 어떤 세상에도-살고있지 않지만, 그녀의 몸인 어떤 것이 아직도 자신의 몸 안에서 혈액처럼 순환하고 있다. 온 몸으로 살고있음을... 생각속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음을... 가르침으로 배우는게 아니라 그저 떡갈나무를 찾아내 비로소 벼락처럼 태우려고 수천 날들이 걸린 것처럼 기억한 것이다.
키냐르 잘 사용하지 않는 표현들이 이 세계의 빗장을 푸는 열쇠들인양 중요하게 여긴다. 이 기이한 표현들, 헤아릴 수 없는 가치(의미)를 발견하려한다. 두꺼운 얼음층에 뚫어 놓은 구멍, 하늘의 검은 바탕 저 뒷면에 박힌 별, 호흡하는 언어의 눈이다. 간단히 영혼을 열리게 하며 거역할 수 없는 자기 최면상태, 돌아올 수 없는 여행, 갈구하며 뛰어드는 것이다. 침묵에서, 목소리에서, 연주에서 동시적인 리듬으로 온다.
우리가 흡수된 순간들이 있다.
그때 보이지 않는 과거가 우리를 삼켜버렸다.
우리의 존재는 여행한다.
음악을 가르친 네미와 키냐르는 나타내지 않고 비밀사랑을 나누었다. 그녀의 가르침과 육체와 침묵을 공유했다. 그들의 한 동작 속에, 취향 속에, 목소리의 음향속에 거의 무의식적으로 남았다. 썰물이 바다로 끌어갈 수 없었던 파편들이다. 키냐르 그렇게 네미의 소리 없는 피아노를 생각했다. 그녀의 음악속에는 자아도 육체도 악기도 작곡가 마저도 없다. 순수한 기호만이 울리고 이미 그것을 듣고 작곡한 순수한 듣기다. 기원의 소리, 최초의 텍스트, 선행되는 기표, 다가오는 별이다.
네미와 같은 명인들이 대중앞에서 연주를 포기한 것-음악적 자살 혹은 직업적 자살-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려 든다. 창작의 기쁨과 욕망을 키우는 것은 비난의 불쾌감, 상처 받을 위험, 죽음을 무릅 쓴 경쟁, 끊임없이 죽이거나 살행당하는 것, 결투, 죽음의 가능성, 매번 새롭게 죽을 수 있다는 것이 서로 구분되지 않아서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흡사 신분을 감춘 오디세우스 같다. 생전에 불가능한 귀향이라 키냐르 그 생애를 기리기 위해 쓰는 지도 모른다....
사랑은
자기 앞의 모든 영역과 영역에 대한
과거의 기억까지도 소유하게 된다.
최초의 이미지는 어머니의 환영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우리를 바라보며, 우리가 떨어져나온 그 시선 속으로 우리는 추락한다.
우리가 떨어져나온 그 육체 속으로 우리는 다시 몸을 숨긴다.
그것은 공모 관계 내에서 재개되는 매혹이다.
죽게 만들지는 않는 시선 속에서,
꿈꾸는 자의 잠긴 두 눈처럼 감은 시선 속에서.
나는 표현하기 어려운 것들, 끊임없이 낯설음을 향해 선회하는 것들을 떠올린다.
사랑이라는 이 기이한 관계, 결국 인간에게는 극도로 희귀하지만 인간 모두를 백일몽처럼 (열린 채 다시 감긴 눈꺼풀처럼) 소리쳐 부르는 관계가 언어학과 문헌학 이전의 육체라는 외피 자체를 거의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에 나는 놀란다.
그리고 나는 강기슭에 홀로 외롭게 서 있음을 깨닫고 놀라는 한 인간이다.
- 파스칼 키냐르 <은밀한 생> p337
파스칼 키냐르 자신의 삶의 혼란스런 한 부분에 관한 총안이 바로 이 책이다. 한 사람이 사랑이란 말의 의미하는 바에 관해 쓴 글이다. '사랑이란 대체 무엇인가?' 사랑은 사회에서 수행할 수 있었던 역할보다 개인의 정체성을 더욱 심하게 난폭하게 다룬다. 우리의 괴로움, 불행, 고통은 타인에게 닿을 수 없다. 그러나 힘, 사고, 쾌감, 눈물은 육체를 통과한다. 『사랑하는 두 사람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두 사람의 사랑보다 더 이 세상을 경멸하는 것도 없다.』
결별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가?
온통 흘러가는 시간으로 변한다.
<마무리>
2015년 10월부터 읽기 시작했다. 펼칠 때마다 메모한 글이 아주 낯설었다. 언젠가 다 읽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지 이렇게 오래 걸릴 줄 몰랐다. 다시 처음부터 읽어도 새로운 느낌일 것 같다. 적어놓은 글만 겨우 기억해낼 뿐이다. 필사라는 것을 토시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이 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그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책을 간혹 필사했다. 중간중간 다른 메모가 들어가도 상관없는 그런 엉터리 필사다. 책을 펼치고 적고 싶은 부분을 적었다. 적었다기보다 그렸다. 그런 필사도 되는 책이다. 새로웠고, 근사했고,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그마저도 좋았다.
이 책은 사랑이야기고, 풍경이 가득 들어차 있다. 공모에 대한 논증을 이해하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았다. 글자를 따라 거기에 닿고 다시 빠져나와 앞으로 걸어나갔다. 내가 읽고 있는 곳이 여기라면 잠시 놓아두고 다시 찾곤 했다. 발췌한 글은 나의 발자국이다.
*. 결코 나는 글을 쓰고 있는 내 손을 본 적이 없다. <은밀한 생> p29
https://blog.naver.com/roh222/220615977137
*.언어는 사랑에 적합하지 않다. <은밀한 생> 중에서 p74-89
https://blog.naver.com/roh222/220707779457
*.언어가 우스꽝스러워지는 이런 밤들 <은밀한 생> p90~133
https://blog.naver.com/roh222/220736852333
*.사랑의 체험과 독서의 체험 사이에서 <은밀한 생> p143-190
https://blog.naver.com/roh222/220808646901
*.사랑하다, 즉 책을 펼쳐놓고 읽다 <은밀한 생> p214-215
https://blog.naver.com/roh222/221005814826
*.살아있는 유성 <은밀한 생> p216~262
https://blog.naver.com/roh222/221046497975
338페이지에서 멈추고 (의미없이) 마지막 페이지에서 앞으로 읽어들어갔다. 파스칼 키냐르는 이 글을 읽는 독자는 자신이 진실에 다가가려고 애쓰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길 바란다. 자신은 이 시대의 기호에 비위를 맞추거나, 이 사회의 가장 훌륭한 표본 같은 사람들이 집착하는 보편적 규범을 정착시키는 자들을 유혹하지 않는다 한다. 다만 자신의 글을 읽는 독자가 자신 눈을 들여다보듯이 즉각적으로 느끼기를 바라고 있다.
*<은밀한 생> 파스칼 키냐르, 그에게 독서하다는 사랑하다와 음악을 하다와 동일어이다.
https://blog.naver.com/roh222/2206183984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