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칼 키냐르 <은밀한 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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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우리의 삶이라고 부르는 것.
어느 날 우리는 하나의 성姓을 선택해야만 하고,
기존의 가계사-우리가 생각하고 또 언어를 말할 수 있게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에서
갈라져 나오는 한 편의 절박한 전기를 써야만 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우리의 삶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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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각각의 삶은 한 번의 사랑의 시도가 아니다.
그것은 유일한 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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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죽음에 의해서
그리고 그들이 볼 수 없는 장면을 통하여 되풀이되는 인간들,
태어나고 죽는, 살아있는 유성有性의 존재들 간의 관계는 어떤 것인가?
인간을 유령으로 만들 뿐인 파롤 parole도,
시체만을 만들 뿐인 죽음도,
새끼들을 만들 뿐인 교미의 쾌락도 아니다.
사랑이 남아있다.
그게 바로 사랑인 것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고, 보여줄 수 없는 나머지 몫.
그렇기 때문에 언어와 빛이라는 두 가지 금기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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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들이 그들의 밤의 육체들을 떠나면
하나는 멀리 나뭇가지 위에 앉고
다른 하나는 창 턱에 팔꿈치를 괸다.
사랑은 영혼에 기댄 영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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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따로 떨어져 행해진다.
마치 생각이 따로 떨어져 이루어지듯이.
독서가 따로 떨어져 행해지듯이.
음악이 침묵 속에서 행해지듯이.
꿈꾸기가 잠들어 있는 어둠 속에서 이루어지듯이 말이다.
유성有性
[명사] <생물> 같은 종(種)의 개체에 암컷과 수컷의 구별이 있는 것.
파롤 parole
[명사] <언어> 특정한 개인에 의하여 특정한 장소에서 실제로 발음되는 언어의 측면.
파스칼 키냐르 <은밀한 생> p216~262 발췌함.
파스칼 키냐르 <은밀한 생>을 아주 오래 읽어나가고 있다. 사랑의 체험과 독서의 체험 그밖의 우리가 경험하는 것들에서 어떤 공통적인 부분을 느끼게 해준다. 올해는 꼭 마무리 짓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