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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훌리아 May 22. 2017

사랑하다, 즉 책을 펼쳐놓고 읽다.

피에 흥건히 젖은 베개에 머리를 묻고 
내가 병원에서 죽어가던 어느 날 밤,
나는 얼굴과 두 어깨를 일으켜 세웠다.
벗은 상체를 베개에 기댔다.
조금 후에 나는 M에게 읽을 것을 달라고 했고, 
읽기 시작했다.


독서는 자신에 대한 망각이다.


피를 흘리면서 책을 읽기란 불편하지만
죽어가면서도 책을 읽는 것은 가능하다.
고대 로마의 문인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이 최후의 장면을 명예로 삼았었다.


책 읽기는 이 세상과 어긋나고 알 수 없으며
그 자체로 좋은 다른 세계에 두뇌를 집중함으로써
 하나의 세계에 접속되는 일이다.
그 세계가 나의 구석진 장소였다.


구석진 곳에서in angulo.
구석진 곳에서 책을 들고in angulo cum libro.



파스칼 키냐르 <은밀한 생> p214-215에서...









왜 독서를 하는지.. 독서의 이유는 알면 알수록... 많은 걸 깨닫지만...


'독서는 나의 망각이었다'고 생각하면 너무 허무하다.
그게 아니라고 한다면 또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독서하고 있지만 독서하는 나를 가장 이해할 수 없다.

그 망각을 손에 쥘 수 없어서 아쉽다.


독서를 하면서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 펼쳐졌다 사라져 버리고, 잊고.. 

그래서 그 접속이 좋으면서도 가질 수 없는 게 왠지 모르게 놀림받는 기분이 든다.


쓰러져가는 생.


<자기 앞의 생> 모모가 된 기분 같다.

그냥 그런 기분이 나도 모르게 든다.

'우리의 시'


독서가 어렵다.

책 펼치기를 머뭇거리게 된다.

뛰어들지 말지 고민하게 된다.


다시 책을 펼칠 때, 

다시 읽을 때, 

모든 게 사랑이다.

다른 이유는 모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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