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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훌리아 Sep 27. 2015

파스칼 키냐르 소설이해

키냐르식의 탈장르적 글쓰기란..

#1 키냐르 소설에 관한 생각


키냐르식의 탈脫장르적 글쓰기는 스스로 그저 문학이라 한다. 연작 '마지막 왕국' 속에서 죽어가게 될 것이라고 소명을 밝혔다고 한다. 작가라면 누구나 그러한가?.... 마지막 왕국 시리즈는 2002년 <떠도는 그림자들> <옛날에 관하여> <심연들>이 동시에 나오고 우리나라에도 번역이 되었다. 2005년 <천상적인 것> <더러운 것>이 2009년 <조용한 나룻배>가 현지에서 출간되었다. 그는 67세다.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듯 읽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키냐르에게 장르는 줄, 계통, 소속, 나라가 발급한 신분증, 영업을 위해 내미는 명함이다.(중략) 사회적 획득물을 찢는 것, 문학가가 하는 일은 바로 그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심연들_P287)



유일한 가치가 지배되는 세상, 나는 이것이 가장 싫습니다.



연작을 계획한 동기는 살아남기 위한 노아의 방주-종교적인 것 이전의 것을 의미함, 저 먼 태곳적-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 노아의 방주에 싣고 싶은 것은 무신론적인, 무국적적인 사고, 동요하는 생각, 불안한 성, 비이성, 비직선적, 비방향적 시간, 비기능적 예술, 비밀, 척도 없는, 예측할 수 없는 자연 같은 것이라고 한다. 무엇을 위한 대비책일까?

사회는 모두 '동일한 것idem同體'이 되라고 한다. 결혼, 교육, 양심, 도덕, 지식, 부부관계, 죽음까지도 실로 주체적인 것은 하나도 없다.키냐르는 자살의 문제까지도 논의를 확장해 idem(同體) 아닌 진정한 ipse(自體)를 향한 길, 자아 해방을 위한 길을 모색한다.(심연들_p302)



태생이 언어와 음악을 접한다. 여러 언어와 여러 악기를 습득하며 자랐고 자폐증세로 언어와 먹기를 거부한다. 출판사의 편집자이기도 했고 대학에서 고대 프랑스어를 가르치기도 한다. 조부와 부친에게 물려받은 악기를 모조리 도난당하자 크게 상심하였다고 한다. 이후 음악을 연주하던 시간이 책 읽기와 글쓰기에 바쳐졌다고 한다. 키냐르의 작품을 읽기 시작하면서 그의 작가 연보를 정리한 적이 있지만 다시 한번 읽어보았다. 그가 작가로서의 소명을 깨닫는 시점을 되짚어 보는 것은 나에게 흥미로운 일 중에 하나였다.



키냐르는 근원에 대해 과거로 태고로 역행한다. 그렇다고 복고풍 낭만주의자는 아니라고 한다. 생을 바라보고 있다. 그렇다고 고요한 사색만 하는 명상가가 아니다. 그는 허기와 질문, 호기심, 담대, 도약의 욕구로 피가 끓는 산속의 멧돼지라고 말한다. 요즘 같은 시대, 사회는 안전한 생각만 하고 살 것을 요구하지만 사회는 더 나은 방향으로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 돌아오면 안 될 것 같은 끔찍한 과거를 반복 더 큰 규모의 독재주의가 팽배해 있다고 역설한다. 역사란 사람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시간을 일정 방향으로 개념화한 보잘것없는 건축물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은밀한 생>을 일부만 잠시 보았다. 앞서 내가 읽은 <세상의 모든 아침> <로마의 테라스> <빌라 아말리아> <신비한 결속>에서 주인공들의 행동과 말을 따라갔지만 바닥없는 의식 저 밑바닥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은밀한 생>과 <마지막 왕국> 시리즈에서는 그 근원을 탐구하는 듯했다. 뱅상 랑델이 한 말처럼, "키냐르 문체의 힘은, 그것이 위대하다면, 그의 진지한, 가슴을 에는 듯한, 거의 고통이라 할 것에서 파생되기 때문이다. 들을 수 없는 것을 듣게 하고, 탄생 전 죽은 것 혹은 목 놓아 소리 부르는 것을 알게 하기 때문이다. 일종의 관조적, 비종교적 실어증 안에서 같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다음은 번역가 류재화의 심연들 끝맺음 말이다.



독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지 못하고 뛰어들어야만 하는 깊은 세계, 한번 빠지면 나오기 힘든 세계. 독서는 심연에 빠지는 일이다. 특히 파스칼 키냐르의 책을 읽는 일은. <심연들> p293




<심연들>을 읽기도 전에 생각부터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심연에 빠지는 일만 남았다... 다음엔 <은밀한 생>을 읽고 그다음엔 <떠도는 그림자들>읽고 2015년을 보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반기엔 로맹 가리 하반기엔 파스칼 키냐르... 독서로 가장 의미 있는 한 해가 되어준 것 같다. 다음에 만날 나만의 작가와 작품이 무엇이 될지 기대를 해도 좋을까?.... 한번 빠지면 나오기 힘든 세계로 또 나를 이끌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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