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훌리아 Sep 26. 2015

신비한 결속... 엄마, 난 엄마를 사랑하지 않아

회생回生, Les solidarites mysterieuses

신비한 결속
Les solidarites mysterieuses



외국산이고, 낯설고, 미지의 것이고, 예측이 불가하고, 메스껍고, 그럴싸하지 않고, 이상야릇한 파스칼 키냐르 소설이었다. 일상에서 무의지적 기억을 탐한다. 전부 기억해내고 싶은 욕구, 옛날에 찾아냈던 것을 모조리 알아보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 클레르는 마흔일곱 직전 조용히 울었고 때때로 실컷 울었다. 작고 새까만 그 눈은 기억 속에서 찾아 헤매던 그 눈을 바라보았다. 도드라진 맨살의 두 무릎, 바로 클레르다. 그녀가 거닐던 길을 따라 이 책을 읽었다. 키냐르 작품의 재미는 언제나 풍경에 있었다.

그녀는 어린 시절의 나무들을 알아보았다. 나뭇가지의 잎들을 보자 어떤 열매가 달릴지 짐작되었다.(p59)



아버지와 어머니와 레나가 죽었을 당시에 클레르는 아홉 살, 동생 폴은 네 살이었다. 클레르는 딸을 둘을 낳았지만 이혼을 하면서 남편에게 맡겼다. 폴과 클레르는 1년에 모두 다섯 번 통화하는 게 전부다. 그녀는 번역 일을 어디서나 할 수 있었고 사람들이 자신을 필요로 하는 게 지겨웠다. 반면에 폴은 요약하기 어려웠다. 신경쇠약을 이겨내고 두려움과 무력감이 사라졌다. 여전히 두려웠지만 오히려 두려움이 의지가 되었고 있는 그대로 세계를 사랑하게 되었다. 새까만 머리칼에 주먹을 쥔 채로 잠든 폴은 아무도 사랑했던 적이 없다. 클레르처럼 작은 가방 하나면 어디서든 일이 가능했다.

나의 외침으로 목 놓아 부를 대상도 이 세계에는 별로 없었다.(p118)



클레르는 유년기의 고향 '디나르'에 머물게 된다. 낡은 자동차를 렌트하는 것은 덤-작가는 자동차의 구모델로 나타나 새모델들과 겨루길 즐겨한다-이고 불안은 그녀의 오랜 동반자였다. 침묵하며 걷고 또 걷는다. 동생 폴에게 알리고 라동 선생님을 만난다. 2월 햇빛이 드는 곳에 찾아든다. 자신은 모르고 있지만 언제나 누군가의 딸이었다. 자신의 고향 섬 언덕 위에서 오고 가는 순환선을 바라본다. 그녀는 느닷없이 정지하고 세계와의 접속을 끊었다. 곧잘 자신의 깊은 내면에서 영위되는 삶, 지나온 모든 여정을 거꾸로 바라본다.

아직은 메뚜기도 나비도 매미도 벌도 없다. 들리는 것은 그것들의 침묵이다. 바람조차 불지 않는다. 모든 게 텅 비었다. 구름들이 하나씩 조용히 갈라지면서 점점 더 많은 빛이 쏟아진다. 그러자 황야는 빛으로 흥건해진다.(p43)



행복이 따로 없는 라동 선생님의 품 같은 황야의 작은 개암나무-탄생목이라 부른다-숲 농가에 클레르가 은둔한다. 고독 속에 탄생된 연결고리는 무엇을 복원시키려는 것일까? 시몽은 '라클라르테'-가상의 항구도시, 클라르테라는 말은 태양의 솟아오름과 봄의 출현을 숭배해서 축하하던 옛 의미-에서 약국을 운영하고 시장을 역임하고 있다 때때로 그녀를 만나러 왔다. 6월의 미지근한 소나기가 그들을 흠뻑 적셨다. 자신의 샬루프-작은보트-에 클레르를 태웠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들은 사랑을 나눈다. 고독한 섬이었던 클레르는 그를 바라볼수록 점점 더 커져가는 무력감에 사로잡혔다. 그는 섬을 떠나 아내와 아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클레르와 시몽은 동갑이다. 열세 살 그를 떠올린다. 1977년 대학 입학한 그들은 더 이상 편지를 쓰지 않았고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다.

이 고장 사람들은 그 농가를, 사시나무들 때문에 라트랑블레라고 불러. 예전에는 사시나무에 낸 상처에 그냥 입술만 대고 말해 "떨어라, 나보다 더 세게 떨어라!" 그 즉시 열병은 나무로 옮겨가서 나뭇잎들이 떨기 시작하지.(p55)



한여름 내내 강렬한 기쁨을 맛보며 걸었던 클레르의 출발점은 늘 황야였다. 그녀에게서 사라졌던 것들을 생각해 보았다. 그녀가 앓았던 열병이 무엇이었을지 생각했다. 시몽보다도 더 잊힌 사랑이 있다는 걸 그녀도 모르지 않는다. 오히려 두렵게도 느껴졌다. 누구나 그것의 소중함을 무의지적으로 떠올린다..... 때로는 여름의 행복이 잊혔고 때로는 다시 바람에 맞서 싸우며 추위에서 자신을 지켜야 했다.

어린 시절부터, 그 이후로도 줄곧 클레르가 알던 해안의 풍경은 하나같이 육지에서, 암석 위에서, 가파른 오솔길에서, 수직으로 솟은 계단에서, 황야에서 본 조망들 일색이었다. 이제 그녀는 바다에서 보이는 조망을 알게 되었다.(p83)



사랑이란 이름에 합당한 그 무엇도 짐작도 할 수 없었던 폴이 보는 클레르는 시몽에게 연정을 느낀 적이 결코 없었다. 60년 넘게-사라지고 없을 때조차- 그를 사랑했다. 그의 죽음-누나 자신의 죽음이기도 한-을 목도하는 순간 누나는 지극히 행복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랑이란 명목하에 그들은 기다리고 온종일 엿보고 맴돌고 바라보고 생각하고 매달리고 필요로 하고 찾았다 달려가고 뒤쫓는다 마음대로 한다. 엇갈리는 한순간의 기쁨을 위해서...



계절은 매번 돌아왔다. 열쇠를 쥔 사람들 아니 존재는 이 남매에게 무슨 마법을 부린 것일까? 키냐르가 가장 애착한 소설이었다. 그는 언제나 수수께끼 같은 글을 쓴다. 폴 역시 유년기를 보낸 이 세계에서 차츰 자신의 좌표들을 되찾아갔다. 성인의 얼굴을 한 신부 장jean과 축복받는다. 복잡하기 그지없는 클레르와 폴이 '복원'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자신의 고통과 맞서든 맞서지 않든 끝없는 고통을 겪는다고 생각한다. 엄마가 우리 중의 누구도 사랑하지 않았음을 생각한다. 그리고 쥘리에트가 나타난다. 쥘리에트는 클레르의 작은 딸이다....

엄마, 난 엄마를 사랑하지 않아.(p177)



그들의 삶이 전복되면서 구원받았다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 슬픔과 퇴적된 감정과 그 기억을 달래주는 유일한 유산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그들은 많은 추억을 공유했고 가장 알아보기 힘든 사랑이었고 황금-기원-의 경계선에서 서로 지켜봐 주었다. 그들의 벌거벗은 어린 모습이 지금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는지 실감한다. 개암나무숲은 번지고 정원의 일부를 허물고 땅을 뒤엎고 씨앗을 뿌렸다. 황야 전체가 그녀의 정원으로 변한다. 그리고 자신도 던져진다.

살아있는 것들은 언제나 추억이다. 우리는 누구나 아름다웠던 것의 살아 있는 추억이다. 삶은 이 세계를 만들어낸 시간의 가장 감동적인 추억이다(p191)



바위에서 태양 안에서 바다의 파도에서 별들의 방위 안에서 하늘에서 시간과 언어와 속도가 없는 이전의 오래된 시간을 무한히 소멸하는 시간을 좋아했다. 과거를 불러오고 불타오르게 한다. 존재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녀만의 길이 만들어졌고 두 눈은 깊어지고 까매졌다. 열리지 않은 자물쇠는 사라졌다. 풍경은 스스로 다가왔고 냄새로 스며들고 빛으로 물들고 모든 것이 되었다. 그녀는 멀어졌다. 황야에 울리는 목소리 당신의 목소리...



키냐르작가 자신의 이야기가 리멤버 Remember 된다. 누이 마리안,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던 어머니, 자신의 유년기와 할머니 그리고 번역가의 이야기 편에서 안 '루키우스 아풀레이우스'의 <황금 당나귀>-모든 이야기의 원형이며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작품이라고 키냐르는 단언한다-.... 키냐르 소설의 아름다움에 항상 매료되고 존경심마저 느낀다.. 이 무더위도 잊힐 만큼 다 좋았다.



by 훌리아

보리차를 유리글라스에 담아...

http://roh222.blog.me/

매거진의 이전글 빌라 아말리아, 누구에게나 자신의 왕국이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