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훌리아 Sep 26. 2015

빌라 아말리아, 누구에게나 자신의 왕국이 있다...

달이 뜨지 않을 때까지 ​

모든 게 최초의 순간에는 일종의 크림빛 물질로 발현되다가 차츰 보라와 검은색이 섞여들었다.(p163)


빌라 아말리아Villa Amalia




 7월 여름에 읽고 싶은 책이었다. '푸른 지중해 굽어보는' 그곳 빌라 아말리아를 상상하면 더없이 좋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파스칼 키냐르의 현대물을 보면서도 특유의 환상을 빚어내는 묘사가 그대로인 점이 눈에 띄었다. 슬프고 아름다운 글이었다. 소설 속의 한 부분을 인용해 표현하자면 그가 꾸며낸 가장 눈에 띄지 않는 극히 정교한 현대화를 추진하고 더욱 드물고, 소중하고, 자연스러우면서 덜 구식이고 훨씬 풍요로운(p44) 소설이었다.



한 여인이 인도 위에 나타나 월계수 잎들 속으로 얼굴을 들이밀던 순간 '토마'를 보던 '안'을 지켜보던 '조르주'를 동시에 만나게 된다. 15년을 함께 산 토마와 40년의 세월이 흐른 후 만난 조르주는 그녀에게 애원한다. 무엇을? 왜? 그녀는 지금 울고 싶고 괴로움에 고통이 심해졌다. 진정한 기쁨은 침묵이라고 말한다. 혼자이고 싶다는 욕구, 도주의 욕망을 느낀다. 비탄의 물결에 휩쓸려 철저한 고독으로 향하고 있다. 마흔일곱, 네가 도달할 연령.......



지금까지의 삶은 지워버리고 싶어.

 


작곡을 하고 악보사에서 일하는 '안'은 '안이덴'으로 이름이 알려지기 전 '엘리안'이란 옛날 이름이 있었다. 그녀는 극도의 소극성, 거의 관조적인 성향. 지극히 차분했는데, 평온이 부재하는 차분함, 끈질기고 집요하며 매 순간 집중된 차분함이 있었다. 아무에게도 복종하지 않고, 더욱이 누구에게도 명령하지 않았다.(p37) 그녀는 피아노 앞에 앉아 작업을 한다. 줄곧 악보를 읽고, 초견으로 연주하고, 기보하고, 압축하는 작업을 계속했다. 자신이 발굴한 악보나 그것에 대한 기억을 최대한 단순화시키는 작업을 했다. 요약하고, 장식을 제거하고, 잘라내고, 쳐내고, 압축했다.(p83) 그녀의 작업은 글쓰기와 매우 비슷한 기분을 느꼈다. 작가는 '안'이기도 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 같은 성격이 나는 참 매력적이다.

 


토마는 '안'에게 자신의 인생을 결정하게 놔둘 수 없다고 하는데 이해할 수 없었다. 진심으로... 다른 여자와 키스를 하면서 도대체 어떤 믿음과 사랑이 있다고 말하는 것일까? 분노의 감정을 품고 있는 동안 그녀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떠날 준비를 한다. 사막으로 산맥으로 오아시스로 다른 시간, 다른 세계, 다른 삶으로..... 그런 그녀를 보면서 상상했던 것을 이룰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여자든 남자든 왜 있던 곳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일까? 삶이 고통이라서? 고통에서 벗어나면 진정한 행복이 있을까? 한 번도 상상을 실행해본 적 없는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이 소설은 나를 그 상상 속으로 밀어 넣었다..

네 마음 깊은 곳에서 원하는 그런 곡을 쳐보란 말이야.(p87)



'안'의 어머니 마르트 이델스텐은 오래도록 남편을 기다렸다. 제 몸 안에서 엄마를 느꼈던 '안'은 언제나 철책 어디쯤을 서성인다. 자신을 가두는 것인지 지켜주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이따금 울었고 행복을 거스르려 노력했다. 덜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상태가 돼서야 울음이 멎었다. 어쩌지 못하고 '안'에게 맹세한 조르주는 그녀에게 우연히 나타난 인물이 아닐지도 모른다. '안'은 그의 오두막을 은신처 '굼펜도르프-하이든이 작품 활동을 하고 사망할 때까지 줄곤 이곳에서 산다-'로 정한다. 현물現物을 통째 넣어두고 아무 흔적도 없이 사라질 준비를 마친다..

자신의 삶 전체가 더러워진 낡은 사면의 벽에서, 검정 래커 칠이 된 대형 악기 앞에서, 단번에 떠올랐다. 17년, 그리고 47년의 세월이 돌아와 그녀를 집어삼켰다.(p105)



최초의 목격, 창조의 목마름을 느꼈다. 중요한 건 저 자신을 이해하는 것뿐이다. 자신은 곡 속으로 편입되어 만灣을 볼 것이고 더 이상 만灣을 보지 않게 된다. 밤낮으로 만灣을 바라보겠지만, 보면서도 내면세계 만灣을 보게 될 터다. 만灣의 소리를 듣게 되고 그 소리에 자신도 휩쓸릴 거라 여긴다. 이제 그녀는 삶의 기쁨을 다시 누리게 된다. 예술가들이 하는 오롯이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삶이 그려졌다. 사람은 누구나 다 예술에 가까이 있지 않을까? 모두가 미처 깨닫지 못할 뿐...



어떤 시간들이 흘러갔다. 건너뛴다. 또 건너뛴다. 남자와 여자, 노인과 아이는 그녀의 삶에 섞이어 들었다. '안'은 자신의 허기에, 노래에, 걸음걸이에, 열정에, 수영에, 운명에 몰입하는 여자였다. 반지 보다 어린 소녀에게서 받은 젖니와 까만 조약돌이 더 마음에 들었다. 탐욕에서 멀어질수록 더 좋았던 걸지도 모른다. 다시 몰아친 거센 폭풍우는 그녀에게 비로소 거울을 통해 처음 보다 더 처음이었던 바닥없는 고통을 바라보게 했다. 사건은 그 사람의 시련으로 축소되고. 어떤 위로도 위로가 되지 못함을 깨닫는다. 고통이 하나의 존재인듯했고 다시금 고독해진 자신의 삶을 돌아보았다.

이따금 슬픔은 어떤 방법으로도  치유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커질 뿐이다.(p268)



'안'은 누군가의 삶을 환히 비춘다. 그거면 충분하지 않을까? 그녀는 여전히 아무것도 받고 싶지 않고, 어느 누구에게도 전혀 바라는 게 없다. 아무에게도 매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음악은 단순하게 고통의 기록일 뿐이다. 내가 줄곧 해왔던 말들이고 내 친구가 했던 말들이고 우리 모두가 했던 말들일지도 모른다. 시간은 건너가고 또 건너가고 저물어가는 해가 두려워지기 시작할지라도...

욘강 기슭의 바위 틈새에서 어린 자두나무가 자랐다.(p49)





빛은 아이의 마음에서...

빌라 아말리아에서, 섬에서, 테라스에서, 레나에게 봄의 소리를, 갓 돋아난 잎의 소리를, 햇살을 즐기며 지저귀는 새들의 소리를, 밤에 부는 바람 소리를, 이따금 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절벽 아래서 부딪치는 파도 소리를 듣게 해주었다. 아이의 귀가 들리는 소리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었다. 처음에는 이해 불가능한 시간의 심포니를 공간 안에서 관현악으로 편곡할 수 있도록 말로 가르쳤다.

"왜냐하면 자연의 모든 것, 가령 새, 밀물, 꽃, 구름, 바람, 별들의 시간, 이런 것은 시간에게 자신의 시간을 말하기 때문이란다." 아이는 산꼭대기의 모든 장소를, 집 주변의 모든 삶을 소리로 바꿀 수 있게 되었다.(p204-205)


자신의 왕국

누구에게나 자신의 왕국이 있다. 이탈리아에 머물 때 레나의 왕국은 폭풍우였고, 안나에겐 티레니아 해를 굽어보는 기다란 방, 줄리아에겐 소파와 백포도주, 아르만도에겐 강철로 만들어진 아틀리에, 조비알 세닐에겐 야밤의 마약 파티, 필리스에겐 성당의 긴 의자, 크로포트킨에겐 산, 샤를에겐 서재의 책 들이었다. 그들은 서로 친구지만 거의 만나지 못 했다. 각자 황급히 자신의 왕국으로 돌아갔으므로.(p245)


매거진의 이전글 혀끝에서맴도는이름.. 언어와 한몸을 이루면 시詩가 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