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too #with you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제야 뉴스를 보고 깨닫는다. 서지현 검사는 그 꺼림칙한 일들을 소설처럼 써 내려갔다. 검찰 내부에서 다시 문학계로 이어졌다. En 이니셜은 고은 시인을 빚대었고, 그의 성추행을 최영미 시인이 폭로했다. 입에 담기도 민망한 그런 일들을 시와 소설 속에 이니셜로 숨겨야만 했다. 자신이 느낀 더러운 것들이 묻어날까 봐 조심스럽다.
생각해보니 나에게도 그런 일이 없었던가 자문했다. (나에게도 그런 일들이 있었다.) 잊으려고 애쓰고, 묻어버린 기억들이 있다. 내 일이 아닌 것처럼 굴었다. 지금까지도 그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무감각하게 있었다. 끄집어내는 순간 얼굴에 불이나고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가면 '지금이라면 그 ㅅㄲ을 죽여버릴 수 있을 텐데..' 말하곤 화를 삭인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그 순간으로 돌아가서
나 스스로 분노를 표출하고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을
되찾고 싶다.
왜 그러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무저항도 유죄다.'
(나 스스로 행동하지 못한데서 오는 무기력함,
두려움, 공포를 이겨내지 못한데서 오는 좌절감이
끝끝내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20대의 여자였던 '나'와 30대 중반이 넘어가는 '나'는 달라졌다. 그때는 움츠렸고, 상황 파악이 잘 되지 않았다. 나에게 일어난 일을 분간하지 못했다. 모든 일이 일어나고 뜬 눈으로 지켜보다, 피할 수 있는 구멍만을 찾았다. 피하는 방법, 도움을 요청하는 방법 그 두 가지밖에 없었다. 내가 직접 나서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나 스스로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갔고, 나에게 남은 이 감정은 분출되지 못한 채 내 안의 어딘가에 조용히 닫혔다. 때때로 나약하기만 한 나 자신에 화가 생긴다. 10대 시절은 부모님의 안전망에서 모든 부도덕한 것들에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안전할 수 있었지만, 생각해보면 가까운 곳에 언제나 독버섯같이 있었다는 걸 느낀다.
사회에 나와서도 그만큼의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한 부분도 있었지만 당하고 말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 일들은 입에 담기도 싫어하는 나 자신을 느낀다. 폭로하는 그녀들의 심정은 어떨지 이해하고도 남는다. 이것을 여자만의 문제로 치부하고 싶지 않다. 사회의 약자 편에서 여자도 남자도 없다는 걸 알았다.
믿을 수 없는 사회가 아니라
믿을 수 있는 사회로 만들어가는 일이다.
모두가 동참해서 이 모든 일을 끝까지 지켜보아야 한다.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지 두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
이것은 여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문제다.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언제나 거리를 뒀던 상황들이 좀 더 믿을 만한 사회였다면, 나는 그렇게 거리를 두지 않았을 테고 훨씬 자연스러운 유대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 스스로 갇히게 만든 것은 누구의 잘못이라고 할 수 없겠지만, 분명한 것은 그럴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어왔다는 데는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언제나 말과 행동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생각할 수밖에 없었고, 이 사회를 믿을 수 없게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까. 진실을 왜곡하고 거짓을 살아남게 한 자들이 누구인가 따져 묻기 전에 우리는 하나의 문제들이 닥쳤을 때 타인의 문제로만 인식하지 말고, 누구에게라도 있을 수 있고, 나에게도 닥칠 수 있는 일이며 함께 동참해서 이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사회를 더 안전하게 모두가 믿을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내 생각을 전달하는 일이 중요하다. 내가 #미투 #위드유 밝혀서 동의하고 있다는 것을 전달하는 일이 중요하다. 아무도 말하지 않고 행동하지 않고 폭로한 그들만이 힘겹게 싸워간다면 우리는 그 하나의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 것을 지켜볼 뿐이다. 그 일이 내 일이 되는 순간 후회만 남을 것이다.
인간과 관련한 문제에 '최종 해결책'이란 있을 수 없다
- 로맹 가리 -
아마도 한 세기가 바뀌어도 쉽게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얼마나 많이 산재해 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오늘 99주년 3.1절을 맞이했다. 이 기분을 뭐라고 설명해야 될지 모를 정도로 기뻤다. 내년엔 100주년 기념행사를 멋지게 치를 수 있겠다는 상상도 되었다. 너무도 당연한 일들이 미뤄지고 미뤄졌다. 한 TV 프로에서 10살 소년이 소녀상 앞에서 영어로 소녀상에 얽힌 이야기를 외국인들 앞에서 설명했다.
작은 일 하나가 세상을 바꿀 힘이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하지 못한 일을 드디어 저 아이가 해내는구나 미안한 일이고, 고마운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살아볼 만한 세상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세상이구나 싶다. 돌아보지 않고 나만 잘 살면 되는 세상에서 살고자 무감각하게 살아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군가가 목숨을 다 바쳐 살려낸 나라에서 뿌리내리고 살고 있다. 잊지 않아야 하고, 더욱 잘 그 정신을 지켜내야 한다. 감사하고 감사해야 한다. 그동안 어떤 식으로 은폐되고 왜곡되었는지 알았다. 지금도 그 거짓과 앞다투기 일쑤다. 언제나 그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인식이 바로선 사람 하나가 더 보태어졌을 때 평화로운 이 땅에 함께 살았다고 기뻐할 수 있을 테다.
불꽃이 아름다워라.
순수한 그대들의 고귀한 정신에
항상 감사합니다.
- 훌리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