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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훌리아 Apr 04. 2023

사물들 - 조르주 페렉

'행복에 대한 긴 담론'

I


먼저 시선은 높고 좁은, 긴 복도의 회색 카펫을 따라 미끄러져갈 것이다. 그곳은 길이로 약 7미터, 넓이로는 3미터가량의 거실일 것이다. 이 모든 것이 갈색이거나 황토색, 혹은 노란색일 것이다. 다소 구식의 색깔들이 어우러진, 하지만 매우 사려 깊게 공을 들여 꾸민 이 세계에서는 약간의 흐릿한 얼룩, 쿠션의 짙은 오렌지 색깔, 얼룩덜룩한 책표지조차 눈에 거슬릴 것이다.



혹 한낮의 눈부신 햇살 속에서라면 아무리 장미꽃이 있다 할지라도 다소 슬퍼 보일는지 모른다. 분명히 방은 저녁에 더 어울린다고 생각될 것이다. 그러나 겨울에 커튼을 잡아당겨 몇 점 햇볕을 비춘다면, 반들반들한 마루와 화려한 명주, 정교한 크리스털, 부드러운 가죽, 이 모든 사물들이 빛을 뿜어내는 어둠 속에서라면-책꽂이, 전축, 책상, 두 개의 소파 사이에 놓인 낮은 테이블, 그리고 거울 속에 비치는 희미한 그림자들로 가득한 -  방은 틀림없이 평화의 항구이며 행복의 대지일 것이다. 



그들은 우편물을 끌러보고, 신문을 집어 들 것이다. 


그들은 부자이기를 원했을 것이다. 


그들의 아파트는 뜰을 향해 자리를 잡은, 천장이 낮은 작고 아담한 아파트였다. 


그들은 언제나 이 매력에 감탄해 마지않았고 처음 이사 오던 때처럼 늘 예민한 기쁨을 잃지 않았다. 


그들이 그때까지 감히 확인조차 하지 않았던 총면적 35편 방미 터 인 그들의 아파트는 협소한 입구와 반은 개수대로 낸 비좁은 주방, 검소한 규격의 침실, 그리고 모든 것이 다 가능한-서재, 작업실, 혹은 접대실 쓰이는-방 하나와 다용도실, 냉장고나 간신히 놓일까 말까 한 복도 중간의 어정쩡한 구석, 온수기, 임시변통의 옷걸이실, 식사 테이블, 의자 노릇을 하는 더러운 천이 깔린 큰 궤짝으로 구성돼 있었다. 


그들은 너무도 과거에 얽매여 있었던 것 같았다. 



제롬은 스물넷이었고 실비는 스물두 살이었다. 


그들의 모든 동료들처럼 제롬과 실비도 창의적인 선택이 아닌, 필요에 의해서 사회심리조사자가 되었다.


그들의 결과는 매우 고무적인 것이었다. 


그들이 직업의 a, b, c와 같은 반드시 필요한 요령뿐 아니라, 다른 훌륭한 기술들을 터득해가자 동기조사연구에 발을 들여놓은 지 1년도 되지 않아 회사는 그들에게 <내용 분석>이라는 중요한 책임을 맡겼다. 


그들은 처음으로 돈을 벌었다. 


그들은 오랫동안 익명성 속에 살았다. 


그들의 꿈은 런던 여행이었다. 


그들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그들은 하숙방과 학생식당을 버렸다. 


그들은 고블렝과 테른느, 생쉴피스가의 작은 레스토랑들을, 그리고 주말마다 파리 교외로 나들이를 갈 때면 들르는 한적한 바와, 가을이며 랑부이에, 보, 콩피엔느 숲속에서의 긴 산책을, 도처에서 그들의 눈, 귀에 주어지는 완벽한 작은 기쁨들을 발견했다. 


그들의 삶은 친구들과 있으면 소용돌이 그 자체였다.


그들은 떼를 지어 다니는 하나의 세련된 팀이었다. 


그들 거의 모두가 광고계에 몸을 담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에게 쉽게 동화해갔다. 


그들은 낮은 목소리로 『엑스프레스』와 함께 체스터필드의 긴 의자를 꿈꾸었다. 


그들은 <새로운 사람들>이었고 아직 젖니가 남아 있는 젊은이들이었으며 전도양양한 테크노크라트였다. 


그들은 시대에 걸맞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이러한 장난 같은 싸움을 즐겨 했고, 좀 더 다른 일에 사용될 수도 있었을 소중한 시간을 보냈다.


그들은 자유에 취해 있었다.


그들의 가장 큰 즐거움은 함께 망각하는 것, 즉 긴장을 푸는 것이었다. 


그들은 대개 아홉이나 열 명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혼돈된 상황을 그대로 드러내었다. 


그들은 친구들은 혼잡하지만 아늑한 아파트에서 산책과 영화, 우정에 가득 찬, 신기한 계획들을 공유하며 살았다.


그들은 행복했다. 영원히 고갈되지 않는 행복의 확실한 징표처럼 느껴졌다.




하늘에는 완벽하게 둥근 보름달이 떠 있었고, 세상의 모든 사물들은 고요한 달빛 속에 반짝거렸다.

<사물들> 조르주 페렉 p54




그들은 세계와 일치했고 세계 속에서 헤엄치며 편안하고 두려워할 아무것이 없는 것 같았다.


그들이 고요한 평안과 영원의 감정에 흠뻑 젖어, 추호의 긴장도 존재하지 않는 달콤한 균형의 순간에도, 무언가 일시적이고 연약한 어떤 것이 흔들리고 있는 듯했다.


그들은 덫에 걸린 쥐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장 불행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진부하고도 어리석은 상황 한가운데 놓여 있는 것이다.


그들은 점차 임시적인 것에 길들여졌다. 이따금 경제적인 것이 그들 모두를 삼켜버렸다. 비참한 무언가를 느꼈다.


그들의 현실적인 삶은 늘 불안하고 허구적인 것처럼 보였다.


그들에게는 자유로운 시간이 있었다. 


그들 사이에는 돈이 놓여 있었다. 


그들 세상을 저주하며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잠을 잤다.


그들뿐 아니라 또래의 모든 젊은이들을 완벽하게 규정할, 어떠한 길도 부재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몇몇 시위에도 참석했다. 


그들의 일도 언제나 같은 것이었다. 


그들의 진짜 삶은 다른 곳에, 가까운, 혹은 먼 미래에 있었다.


그들은 다시 두려울 정도로 막연한 자신들만의 삶과 꿈에 집착했다. 


그들은 더 이상 지탱할 수 없었다. 


그들은 싸움과 승리를 원했다.


그들은 경멸하는 세상의 충실한 그림자 언제나 목 안으로 과자 부스러기만을 꾸역꾸역 집어넣고 있는 길들여진 사소한 존재들 같았다. 


그들이 돈을 경멸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저녁마다 바람 부는 거리의 쇼윈도에 코를 갖다 대고 산책을 했다. 


그들은 <부>의 총 애자들이 걸어 올라갔던 계단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꿈인지 생시인지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눈을 깜박거리며 손을 얼굴로 가져갈 것이다. 


그들은 드루오와 갈리에라의 경매장을 자주 방문했다. 


그들은 농촌에 관한 앙케이트 설문지를 들고 프랑스 전국을 누볐다. 


그들이 자신들의 녹음기를 작동시킨 곳이 바로 거기였다. 


그들은 소리가 울리는 세탁장과 나무 저장소, 석탄 저장소, 감자와 배가 큰 망에 담겨 줄지어 있는 과일 창고, 신선한 버터 조각이 겹겹이 쌓여 있고, 우유 양철통, 생크림, 흰 치즈, 크림치즈의 시큼한 냄새가 풍겨 나오는 우유 저장소를 거닐었다.


그들은 추사와 외양간을, 또한 목공 실과, 대장간, 헛간을, 그리고 커다란 둥근 빵이 구워져 나오는 부엌, 차고 등을 차례차례 가로 질러갔다. 


그들은 맛있는 냄새가 풍겨 나오는 향료 저장 창고와 수백 개의 과일잼 통조림이 진열되고 있는 거대한 빵 저장소, 그리고 구리 냄비가 번쩍거리는 부엌을 지나쳤다.


그들은 풍요로움 속에 완전히 몰입됐다. 


그들은 동과 희귀목, 유리와 대리석으로 만든 입구를 따라 걸어갔다. 


그들 앞에 문들이 열렸다. 


그들은 놀람에 놀람을, 경탄에 경탄을 거듭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들은 셀 수 없는 행복을 경험했다. 


그들의 육체와 몸짓은 무한하게 아름다웠고 그들의 시선은 신성했으며 그들의 가슴은 투명했고 그들의 미소는 순결했다. 


그들은 화려한 풍경 속에 거대한 왕궁이 세워지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사소한 것들의 퇴적 아래에서 숨이 막혔다. 결코 다시는 붙잡을 수 없는 조각난 꿈이었다.


그들은 행복을 상상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II


그들은 도망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들은 다시 제로에서 출발하여 새로운 토대에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단절이 아니면 완전한 작별을 원했던 것이다.


그들은 떠났다는 그 자체로 행복했다. 


그들은 화물 보관소에 가방을 맡겼다. 


그들은 스팍스(튀니지 동부 도시)에서 그들 전 생애의 가장 호기심 많은 8개월을 살았다. 


그들이 다시 유럽 마을로 들어올 때, 힐랄르 영화관이나 누르 영화관 앞을 지날 때, <레장스>의 테이블에 앉아서 다시 손뼉을 쳐 종업원을 불러 코카콜라나 맥주 한 조끼를 시킬 때, 전날치 『르 몽드』를 사고 사계절 내내 마 두건에 긴 소매의 더운 와이셔츠 차림인 노점 상인에게 휘파람을 불어 땅콩이나 훈제 아몬드, 잣을 살 때, 그때서야 그들은 집에 돌아온 안도감에 젖곤 했다.


그들은 먼지 나는 종려나무 옆을 걸어갔다. 


그들의 고독은 완전했다. 


그들은 그저 이방인일 뿐이었다.


그들은 기쁨도 슬픔도, 심지어 권태마저 느끼지 않았지만 이따금 그들이 존재하고 있는 것인지, 진실로 숨을 쉬며 살고 있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볼 때가 있었다. 


그들의 삶은 마치 너무도 지루한 습관과도, 평화로운 권태와도 같았다. 무위의 삶 그 자체였다.


그들은 스팍스에서 벗어나기를, 무력한 거리와 공허함에서 빠져나와 지평선 너머 온갖 풍경 속에서 그들을 눈부시게 하고 감동에 떨게 할 그 무엇인가를, 그들을 완전히 압도할 뜨거운 섬광을 발견하기를 원했다. 


그들은 거대한 저수탱크를 따라 걸어갔다. 


그들은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그들에게도 소유의 광기가 불처럼 일었던 적이 있었다. 


그들은 매우 오래된 꿈의 잔해 속에, 형태 없는 파편 속에 길을 잃은 것 같았다.




에필로그


그들은 스팍스에서의 마지막 시간을 위하여 습관적인 산책을 더욱 진지하게 할 것이다. 


그들은 카르타즈와 마르사의 폐허에서 오래 돌아다닐 것이다.


그들은 저녁 11시에 도착할 것이다.


그들은 드디어 돌아왔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들은 파리를 다시 볼 것이며 그것은 진짜 축제가 될 것이다.


그들은 전처럼 살고 싶어 할 것이다.


그들은 다시 행운을 꿈꿀 것이다. 


그들은 그리 오래 견디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보르도의 한 지사를 맡을 것이다.


그들은 고물장수에게 책을, 헌 옷 장수에게는 옷을 팔 것이다.


그들은 체스터필드산 소파와 이탈리아 자동차 좌석처럼 유연한 생가죽 의자, 복고풍의 테이블과 보면대, 카펫, 실크 벽걸이, 연한 갈색의 전나무 책장을 가질 것이다.


그들은 공간이 넓은 햇볕이 잘 드는 방과 널찍한 다용도실, 유리벽 시원하게 트인 창문이 있는 집을 가질 것이다.


그들은 서른이 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9월 초에 파리를 떠날 것이다.


그들은 가벼운 옷차림 속에 편안할 것이다. 



스물을 갓 넘은 실비와 제롬이 사회에 진입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이 작품은 사회학적 보고서라는 평을 받을 정도로 사회상을 압축적으로 묘사하는 한편 도시적 감수성을 절제된 언어로 표현해낸 수작이라고 평하고 있다. 작품은 표면상 주인공들이 갈망하는 물건들에 초점을 맞춘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우리가 끊임없이 추구하고 있는 행복에 대한 긴 담론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사회인 현대 소비사회는 중세에는 왕들조차 생각하지 못했던 풍요로움을 보통 사람들에게 안겨주었다. 하지만 손에 닿을 듯 닿지 않는 소비에 대한 욕망은 더욱 심해졌다. 페렉은 스물을 갓 넘은 실비와 제롬이 학생 신분을 벗어나 사회에 진입하기까지의 과정을 통해 현대인이 시달리는 상대적 빈곤감을 날카로운 필치로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출판사 서평-





데뷔작인 이 작품으로 조르주 페렉은 대중적인 성공을 거둠과 동시에 그해 1965년 르노도 상을 받음으로써 모두에게 스물아홉의 신인 작가를 각인시켰다. 페렉은 클래식의 전통을 이으면서도 지극히 현대적이며, 소설적 재미를 잃지 않는 감각적인 작품을 꾸준히 발표했다. 페렉이 사회 학도였다는 사실은 '사물들'에‘사회학적 소설’이라는 꼬리표를 달지만 더 나아가, 페렉은 사회비판적, 분석적인 작가라기보다 사회의 하부구조, 일상을 기술한 한 세대의 기록자였다.


비슷한 작품을 두 번 다시 쓰지 않는다는 작가의 다짐처럼 페렉은 길지 않은 삶을 통해 자신의 과거를 반추하며 동시에 자아와 세계의 관계를 새로운 언어 형식으로 남기고자 노력했다. 다양한 문학적 실험들이 독자들에게 자칫 일관 정시 결여된 산만한 결과물로 보일 수 있지만 페렉은 자신의 작품을 사회학적, 자전적, 유희적, 소설적 질문의 결과라고 말했다.


조르주 페렉(Georges Perec, 1936년 ~ 1982년

1936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은 1920년대에 프랑스로 이주한 폴란드계 유대인이었다. 1940년 이 차 대전에 참전한 아버지가 전사한 후 1943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어머니가 목숨을 잃자, 고모에게 입양되었다. 소르본 대학에서 역사와 사회학을 공부하던 시절, 『라 누벨 르뷔 프랑세즈』 『파르티장』 등의 문학잡지에 기사와 비평을 기고하면서 글쓰기를 시작했다. 1959년 군 복무를 마친 뒤 국립 과학 연구센터 CNRS 신경생리학 자료조사원과 파리 생탕투안 병원 문헌조사원으로 일하며 글쓰기를 병행했다. 직업상 다양한 자료와 방대한 기록을 다루어야 했던 이 경험은 그의 작품세계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65년 『사물들』로 르노도 상을 받았다. 1967년 작가와 화가, 수학자 등으로 구성된 실험 문학 모임 울리 포 OuLiPo에 가입하고, 예술적 창조의 근간을 형식 제약에 두는 울리 포의 실험정신을 수용해 매 작품마다 새로운 세계를 구축해낸다. 그중 프랑스어에서 가장 자주 쓰는 모음 e만 빼고 쓴 소설 『실종』(1969)과 e만 쓴 『돌아온 사람들』(1972)은 ‘언어’와 ‘기억’에 천착한 작가의 특별한 작품으로 주목받았다. 특히 1978년 메디치 상을 수상한 『인생사용법』은 10차 직교 그레코 라틴 제곱 방진과 체스 행마법을 도입해 완성한 명실상부한 걸작으로 손꼽힌다. 이 독특하고 방대한 작품으로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서지만, 1982년 45세의 이른 나이에 기관지암으로 생을 마감했다. 길지 않은 생애 동안 『잠자는 남자』(1967), 『어두운 상점』(1973), 『공간의 종류들』(1974), 『 W 혹은 유년기의 추억』(1975), 『나는 기억한다』(1978), 『어느 미술 애호가의 방』(1979), 『생각하기/분류하기』(1985), 『겨울 여행』(1993) 등 다양한 작품을 남기며 독자적인 문학세계를 구축한 페렉은, 오늘날 20세기 프랑스 문학의 실험정신을 대표하는 작가로 꼽힌다.







마무리.

책장에 오래 묵힌 책 중에 하나인 조르주 페렉의 <사물들>이다. 몇 번이나 읽다가 중단된 채 다시 책꽂이에 넣고야 말았는데 이번에는 시간 내 읽을 수 있을 분량으로 여기고 그냥 단숨에 읽어 넘겼다. 그저 감상에 지나지 않고 기록의 차원에서 대략적으로 이어 발췌했는데 이렇게 이어붙여도 내가 느낄 수 있는 그런 글이 되었다.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기기묘묘했다. 

인물들이 독자를 두고 자신들끼리 알아서 살아가고 있다. 내가 볼 수 있는 언어라는 정밀한 대사가 없이 정밀한 상황 없이 쏜살같이 직행을 해버리니 쫓아가기 바쁘다고나 할까. 읽으면서도 카프카 같은 느낌을 받긴 했다. 카프카는 소설 형식으로 갖추기라도 했지만 이것은 독자가 알아서 소설화하기 위한 감독까지 해야 한다. 

작가와 작품에 대한 해설 편도 상당한데 다음 작품을 읽게 된다면 좀 더 이해하고 싶은 작가이다.  1965년 작품이기도 한데 이런 기발한 생각을 어떻게 하게 된 것이지 궁금하기도 하고.. 작가의 삶도..  지금은 제목만 쓰다듬던 책들을 꺼내 볼 수 있어서 다행이고 행복하고 서점에 가서 사 올 책들도 기대하고 있다. 오랜만에 읽는 기쁨을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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