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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훌리아 Apr 24. 2023

읽는 인간, 리터러시를 경험하라

조병영 저



수많은 텍스트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시대에 우리는 좀 더 정밀하게 읽는 인간,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포용적으로 소통하는 주체가 될 필요가 있습니다.


<읽는 인간, 리터러시를 경험하라 > 책의 저자, 조병영 교수는 읽기와 리터러시를 교육하고 연구하는 교육학자이자 리터러시 연구자다. 외국인 최초로 2026 개정 미국 국가교육발전평가 위원에 위촉되고, 국제리터러시학회에서 올해의 박사학위논문상을 수상하는 등 리터러시 분야의 최고 권위자로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저자는 리터러시에 관한 연구 결과를 정리해 새로운 논문을 발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연구한 이론들을 다양한 실험을 통해 실제 사회에 접목시킴으로써 더 나은 미래를 직접 만들어 나가고 있다.



저자는 연구를 통해 얻어낸 리터러시에 대한 모든 것을 『읽는 인간 리터러시를 경험하라』에서 차근차근 풀어 나간다. 1부에서는 리터러시가 무엇인지 개념 이해를 돕는 내용이, 2부에서는 리터러시의 부재로 인해 나타나는 현실적 문제들을, 3부에서는 급변하는 사회에 바뀌어야 하는 새로운 리터러시에 대해, 마지막 4부에서는 리터러시를 통해 학교와 세상을 바꾼 실제 사례들을 다루면서 조금 더 긍정적인 개인 그리고 발전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






문해력이든 문식성이든 

또는 (탈)문맹이든

이 말들은 모두 'literacy'라는 

영어 단어에서 온 것이다.



파울로 프레이리(1921~1997)는  리터러시를 정의할 때 늘 '단어 읽기와 세상 읽기'라는 대구적 표전을 사용했다. 세상을 읽기 위해서는 첫째로 글을 읽을 수 있어야 하지만, 글을 읽는 일(수단)은 늘 세상을 읽는 일(목적)에 종사해야 한다는 뜻이다. 리터러시는 정확한 낱글자 읽기가 복잡다단한 세상 읽기로 전환되는 과정에 기여하는, 매우 정밀하고 섬세한 지적, 정서적, 사회적 의미 구성과정과 실천의 스펙트럼을 포괄한다. 리터러시는 글자 읽기에서 출발하여 세상 읽기로 발전된다.



읽기는 글자와 문자와 기호가 드러내고 있는 의미 또는 이면에 감추고 있는 속뜻에 접근하여 그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자 하는, 꽤 분석적이고 면밀한 생각하기의 과정이다. 책과 나의 정보를 연결하고 섞어서 새로운 모양과 느낌의 독특하면서도 수긍할 만한 의미를 빚어내는 참으로 구성적이고 창의적인 과정이다. 머리와 몸이 함께하는 체화된 경험이다. 진정으로 잘 읽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다양한 텍스트를 찾아 읽으려는 꾸준한 노력과 읽기 과정 자체에 대한 몰입이 필요하다.



"읽기란 복잡하다"라는 것. 우리가 글을 읽는 동안 마음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완벽하게 분석하는 것은 심리학자들이 이룰 수 있는 최고의 학문적 성취이다. 인간 정신의 가장 섬세한 작용을 설명하는 일이자 인류 역사를 통해서 문명이 학습해 온 가장 주목해야 할 구체적 수행에 얽힌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풀어내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읽는다는 행위는 글이나 이미지 등의 기호를 통해서 표현된 정보뿐만 아니라 그 정보가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한 '출처source'를 다루는 용기가 필요한 지적 작업이다.



좋은 독자는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해하기 위해서인지를 활용한다. 행간을 넘어서는 대화적 읽기를 위해서는 스스로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 메타인지는 '생각에 대한 생각'이다. 인지적 역량과 메타인지적 역량을 동시에 갖추어야 한다. 지식은 결과이고 앎은 과정이다. 열린 독자는 앎의 과정에서 텍스트와 대등한 권위를 가지려고 노력한다. 하나의 텍스트만 읽기보다는 다양한 텍스트를 찾아 읽으려 한다. 다양한 기원의 지식, 관점과 해석이 존재할 수 있음을 이해하고 그것들을 손수 찾아 탐구한다.






© benwhitephotography, 출처 Unsplash






아이마다 다른 리터러시 발달은 

대개 한 개인의 탓이 아니라

그가 경험한 '기회'의 양과 질의 

차이에서 빚어진 결과다.




글을 읽고 쓰는 일이란, '기호 sign'로써 '의미 meaning'를 다루는 행위다. 기호들을 선택, 연결, 조합, 분석하면서 어떤 의미를 만들어 내는 일은 고도로 복잡하고 정교한 지적 사유의 과정을 요구한다. 글을 읽는 두뇌는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후천적 경험과 자극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활성화되고 발달해 가는 것이라고 현대 뇌연구자들은 말한다. 글을 읽고 쓰는 것과 같이 매우 낯설고 부자연스러운 일은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수없이 연습하고 경험해야 제대로 배울 수 있다.



힘든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의 평균적인 읽기 능력 발달에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 읽기가 더딘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그들을 도와줄 수 있는지 알지 못한 채 우와 좌왕 한다. 심지어 아이들의 읽기 능력 차이를 태생적 차이라고 은연중에 규정하고 노력의 문제이지 학교가 해결해 줄 수 있는 게 아니라면서 학교의 책무를 저버리기도 한다. 어른들의 무관심을 먹고 자라는 기회의 공백과 배움의 손실은 아이들을 평생 고통스럽게 한다. 시민 권리인 리터러시를 모든 아이들이 잘 배우고 익힐 수 있는 기회가 묵살될 때, 우리 사회는 잃지 않아도 될 수많은 공동체적 성장의 기회들을 포기해야 할지 모른다. 





트리샤는 영특하고 그림을 잘 그리는 소녀입니다. 어느 날, 저녁 식사를 하던 할아버지는 트리샤에게 아주 특별한 선물을 합니다. 책 한 권을 집어 트리샤에게 접시처럼 받쳐 들게 하고는, 꿀 한 숟가락을 그 위에 살며시 떨어뜨려 준 것입니다. 

"트리샤, 꿀맛을 한번 보렴"

트리샤는 책 표지 위에 떨어진 꿀을 찍어 먹어 봅니다. 

"아주 달콤해요!"

즐거워하는 트리샤를 향해 할아버지가 따뜻하게 이야기합니다.


"책은 달콤한 것이란다. 책 안에는 지식이라는 것이 들어 있거든, 그런데 트리샤, 그 지식은 책 안에 그냥 있는 것이 아니란다. 네가 직접 찾아 나서는 것이지, 마치 꿀을 찾아 나서는 일벌처럼 말이야"


페트리샤 폴라코<Thank yo, Mr. Falket><고맙습니다, 선생님> 그림책 한국출간 - 책을 읽지 못하는 소녀 '트리샤'가 꼼꼼하고 자상한 '파커 선생님'을 만나면서 스스로 읽을 수 있는 독자로 다시 태어나는 이야기.




독립 독자 independent reader

읽기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스스로 결정하고 수행할 수 있는 사람



누군가로부터 글 읽기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없는 아이, 글자 읽는 법을 스스로 터득할 기회가 부족했던 아이, 그 의미가 떠오르지 않고, 단어를 읽지 못하니 당연히 문장과 글도 읽지 못한다. 글 읽기에 자신이 없는 아이들은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볼지가 늘 신경 쓰이고, 심리적으로 불안하고 예민해지고, 교실에서 읽는 일이 점점 끔찍한 경험으로 바뀐다. 



학교생활 자체가 고통이던 트리샤는 파커 선생님을 만나게 되고 그는 아이들의 읽는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트리샤가 글을 읽지 못한다는 것도 알게 되고 학교에서 글 읽기를 가장 잘 가르치는 선생님에게 부탁하여 트리샤를 지도한다. 트리샤는 선생님들에게 한 학기 동안 글자 읽는 법을 시작으로 문장을 유창하게 읽는 법, 글 내용을 파악하는 법까지 배운다. 트리샤는 이제 두렵지만 용기 내어 단어 하나하나를 천천히 그러나 또박또박 발음하며 문장을 읽는다. 한 문장, 한 단락, 한 쪽, 한 편의 글을 그렇게 끝까지 읽어 나간다.



당신은 아이들을 읽을 때 무엇을, 왜 어려워하는지, 글을 읽지 못하면 어떤 기분일지, 남들 앞에서 더듬거리면 어떤 심정일지 짐작해 보았는가? 리터러시의 성패는 한 개인의 능력 여부나 노력 여하에만 달려 있지 않다. 다양한 개인들이 소속된 공동체적, 사회적 역량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읽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기회다. 읽을 수 있는 기회, 더 잘 몰입해서 읽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기회. 이들이 학교를 졸업하면 스스로 읽을 수 있는 독자가 되는 것이다.




       

읽는 인간 리터러시를 경험하라저자조병영출판쌤앤파커스발매2021.11.25.


        




마무리.


내가 어릴 적에 트리샤 같은 아이였다. 부모님은 바쁘셨고, 나름 학교에서 아이를 잘 가르칠 거라고 생각하셨을까. 나는 초등학교 입학해서 겨우 한글을 읽고 쓰게 되었다. 그런데 문장에서 문단, 한 쪽,  한 권의 책으로 읽는 게 되지 않았다. 난독증인가라고도 생각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 문제점을 다시 되돌아보게 되었다. 이런 상태에서 고등교육을 받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런 상황 속에 있어왔기 때문이다. 이건 내 개인적인 문제라고 생각했고, 주변에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학업은 분명 이어갔다. 그런데 독학이 되지 않았다. 갈수록 학업을 따라가기 어려웠고, 스스로 나는 공부에 소질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20십 대에 나는 왜 읽지 못하는가 의문이 들고 무조건 읽었다. 책에 매달렸다. 이해가 가지 않아도 책을 들고 읽어갔다. 장르소설, 역사소설, 영미문학으로 읽어나갔다. 중고등학교 때는 만화를 아주 많이 봤었다. 그런데 문학책을 읽기가 어려웠다. 책 한 페이지를 두고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읽는데 배로 시간이 들었다. 그런 과정이 너무 답답했다. 행동에 있어서도 소극적이게 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기능인이라고 생각했던 건 읽지 못하는 내가 있어서였다. 손으로 하는 것, 컴퓨터로 하는 것, 단순한 것, 이런데 발달되어 있는가라고 생각해서 기능적인 사람이라고 지칭까지 했었다. 그랬던 내가 느지막이 방통대 국문학과에 편입해 졸업까지 했으니 감개무량한 것이다. 트리샤를 위해준 파커 선생님이 나에게도 있었다면 나는 좀 더 행복한 삶을 살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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