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에르노의 장편소설 '집착' 중...
글쓰기, 그것은 무엇보다도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서 행하는 것이다.
나의 얼굴, 나의 육체, 나의 목소리, 나라는 인간의 특징을 형성하는 이 모든 것을
나와 마찬가지로 집어삼킬 듯 바라보고는 내팽개쳐버릴 누군가의 눈앞에 드러내는 것은
더없이 잔인한 짓이라고 생각했던 만큼이나,
지금은 내 강박증을 드러내고 헤집어보는 일이 전혀 거북하지 않다.
마찬가지로 반항심도 전혀 없다.
진실을 말하자면, 난 정말이지 아무 느낌도 없다.
나는 나를 본거지로 삼았던 그 질투가 꾸며내는 온갖 상상과 행동들을 묘사하려고만 애쓰며,
개인적이며 내밀한 것을 느낄 수 있고 알 수 있는 실체로 변모시키려고만 애쓰고 있다.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 형체 없는 익명의 사람들이
아마도 그것들을 제 것으로 삼을 것이다.
여기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더 이상 나의 욕망, 나의 질투가 아니라
그저 욕망, 질투에 속하는 것이고,
나는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난 곳에서 작업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에르노의 글을 참 좋아한다. 젊었을 적 그녀의 모습은 아름답고 지적이다. 나이 든 모습은 다소 생소할 정도로 거칠고 꾸밈없다. 그냥 내려놓은 듯이 보였다... 그녀는 살아온 삶을 가만히 들여다 본다. 그래서 사랑, 그래서 가족, 그래서 기억,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히 말한다. 거짓이란 게 느껴지지 않아서 좋았고 이렇게도 글을 쓴다는 사실이 새로웠다. 글을 쓴다면 그녀 같이 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 보인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아마도 그녀 같을 순 없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불륜마저도 글이 되었다. 적나라한 감정은 날 것 그대로였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그런데 그것마저도 이제는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자신 것이 아닌 그저 욕망, 질투에 속하는 것이라고 익명의 사람들 독자가 이제 그것을 제 것으로 삼을 것이라고 말한다. 틀리지 않다. 그녀의 말이 맞다.
나는 작가와 마주하고 이야기하는 지금 같은 시간이 좋다. 나는 사라지고 없는 이 순간이 좋다. 내가 누군가를 골몰히 생각하는 이 시간을 즐긴다. 이상하기도 할 것이다. 나라는 게 느껴지지 않을 때가 좋다니...
by 훌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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