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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훌리아 Jan 25. 2024

<노르망디의 연> 로맹가리 '우리가 공유한 기억'

당신과 최선을 다해 이별하기 위해서 감동받기 위해서 이 책을 읽었습니다.

연을 "냐마 gnama"라 불렀다. 


그는 이 말을 적도아프리카에 관한 책에서 발견했다. 

인간, 날파리, 사자, 생각, 코끼리 등 생명의 기를 품은 모든 것을 의미하는 말인 모양이다.



'뤼도'의 이야기


나는 일곱 살부터 방과 후에 삼촌이 "훈련"이라고 부르는 활동에 따라다녔다. 때로는 라모트 앞쪽 풀밭으로, 때로는 조금 더 멀리 리골 강가로 갔다. 아직 채 마르지 않은 풀 냄새가 향긋한 냐마를 들고서.



사람들이 이미 보았고 알고 있는 것이 아닌 걸 시도해야 해.
진짜 새것 말이다.
그럴 땐 정말 단단히 줄을 잡아야 한다. 행여 놓쳐서 녀석들이 파랑을 쫓아 떠나버리면 다시 떨어질 때 크게 망가지게 될 테니까.

- <노르망디의 연> 로맹가리 -




오랫동안 내가 좋아한 연은 선량한 뚱뚱이였다. 뚱뚱이는 하늘로 오르면 배가 엄청나게 부풀어 올라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삼촌이 줄을 당기거나 푸는 대로 네 팔다리로 뚱뚱한 배를 두드리며 우스꽝스럽게 재주넘기를 했다.


나는 뚱뚱이를 내 옆에 재웠다. 땅으로 내려온 연에게는 우정이 많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형태를 잃고 땅바닥에 붙어사는 연은 쉽게 슬픔에 빠진다. 연이 활짝 피어나려면 높이가, 자유로운 대기가, 주변에 드넓은 하늘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우리가 기막히게 멋진 사대양 연을 잃었을 때, 바람이 대번에 그 12개의 돛을 부풀려 내 손에서 얼레와 연을 송두리째 앗아갔을 때 삼촌은 푸른 하늘로 사라져 가는 그의 작품을 눈으로 좇으며 울음 터트린 내게 말했다.


울지 마라.
저러라고 만든 거야. 저 높은 곳에서 녀석은 기분 좋을 거야.
- 로맹가리 -



삼촌과 그의 오랜 친구 두 사람은 풀밭으로 가서 예의 바르게 상대의 연을 골라 노르망디의 하늘을 한껏 즐겼고, 주변 아이들이 모두 몰려와 이 축제에 가담했다.



<노르망디의 연> 로맹 가리



“나는 마침내 나를 완전히 표현했다” 로맹 가리 생애 마지막 장편소설이라는 <노르망디의 연> 나는 이 말이 조금 아니 조금 보다는 더한 크기로 슬펐다. 내 독서의 절반이 로맹 가리의 책이었고 여전히 그의 책을 부여잡고 있으니 나에게 가족 같은 기분이 들게 하는 작가? 아니면 내 마음의 스승? 아니면 작품으로만 보아야 한다고 했으니깐 그저 그의 사상이 좋아서? 여러 가지 이유를 가져와 본다. 그러는 이유는 나에게서 그 어떤 해답을 찾고 싶어서다. 여전히 내가. 책 속에서 그가 한 마침내 완전한 표현이 어떤 식으로 되어 있는지 확인하는 게 나의 임무였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내게서도 그의 모든 게 흐릿해진다는 것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발견할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했는데 가는 길마다 그가 떨어뜨리고 간 것들을 쓰다 듬었다. 뤼도는 작가 자신이기도 했고, 뤼도는 '미래의 우리'인 것만 같은 이유...  작가 로맹가리는 삼촌인 앙브루아즈 플뢰리가 되어 뤼도인 저 자신을 위로하고 반대로 저가 그런 선망의 대상, 절망하지 않았던 인간으로서 그 존재를 그려본다.


작가 로맹가리는 꼭 그 자신이 뤼도였던 때를 떠올리는 것만 같았다. 연을 잃었을 때,  연을 송두리째 앗아갔을 때, 푸른 하늘로 사라져 가는... 그것들. 그래서 그는 자신이 배운 것들을 전해준다.
 "울지 마라. 저러라고 만든 거야."라고 위로해 주는 것만 같았다. 

- 훌리아 -




2차 세계대전 시기...

전쟁고아로 삼촌과 함께 사는 뤼도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뤼도의 삼촌인 앙브루아즈 플뢰리는 노르망디 지역에서 유명한 연 장인으로, 1차 세계대전을 겪은 후 평화주의자가 되고 연 만들기에 빠져 매일 들판에서 연을 날린다. 한편 뤼도에게는 집안 대대로 이어진 한 가지 능력이 있는데 한번 본 걸 절대 잊지 않는 뛰어난 기억력이다. 어느 날, 폴란드 귀족인 브로니츠키 집안이 노르망디로 휴양을 오고 뤼도는 그 집안의 딸 릴라에게 첫눈에 반한다.

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감돌고...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시작된 전쟁은 뤼도와 릴라를 갈라놓고 둘은 서로의 생사조차 알 수 없게 된다. 뤼도는 자신의 기억력으로 끊임없이 릴라를 상상하면서 재회의 희망을 꿈꾸고, 프랑스 레지스탕스에 합류해 나치에 맞서 저항한다. 전쟁의 한복판에서 릴라는 폴란드를 탈출해 프랑스 파리로 가지만, 살아남기 위해 몸을 파는 신세가 된다. 릴라의 먼 사촌인 독일 장군 폰 틸러가 노르망디 지역 사령관으로 부임하면서 마침내 뤼도와 릴라는 재회한다. 하지만 운명은 이들을 다시 예상치 못한 길로 안내하고

 2차 세계대전 최대의 격전이었던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디데이...



『노르망디의 연』'하늘에 띄운 모든 인간적 가치를 나타내는 동시에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고민하는 인간을 은유한다. 연은 하늘에 속했지만 동시에 줄로 땅에 매여 있듯, 현실에 발을 디뎠지만 인간은 계속 이상을 꿈꾼다. 그러나 연이 줄을 끊고 날아가면 결국 추락해서 “나무토막과 잔해”가 되는 운명인 것이다.'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무엇이라고 해야 할까. 작가는 네가 잡고 있는 연을 놓치더라도... 거듭거듭 소설로서 전하려고 한다. 스스로 무엇을 감수하려고 했을까 그럴 필요가 있을까 하는 것을 작가는 스스로 짊어지려고 한다 거창한 사명이라도 좋으니 내가 해보겠다고 저항하고 끝끝내 자신의 살을 도려내듯이 극적으로 표현했다.



그가 언제나 가까이 두고 말하고자 한 아모르 Amore. 너무나 지겹지 않나. 아무리 외쳐도 그 아모르는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은데... 끝내 지켜내는 사랑을 소설에 남기니... 로맹가리는 안타까운 노르망디에 자신의 연을 띄운다.
세상에서 상상의 힘으로 지켜야 하는 것들 잊지 말라고. 지겹다고 한 그 아모르가 영원히 저 하늘에 띄워져 있다. 자신의 신념과 인간에 대한 존엄성을 꿋꿋이 지켜나가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그리고 그렇게 인생을 살았던 모든 이들에게 자신을 추종했던 독자들에게 이 책을 헌사한다.

- 훌리아 -






(책 속에서 발췌)

노르망디의 연





우리는 루소도 아니고 디드로도 아니고 볼테르도 아니었다. 우리는 무솔리니였고 히틀러였고 스탈린이었다. 클레리의 옛 집배원이 만든 '빛'의 세기의 연들이 이제는 하찮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내 사랑에서 인류의 지혜를 믿는 데 필요한 모든 맹목을 길어냈고, 삼촌은 평화를 한순간도 의심하지 않았다. 마치 그의 마음 하나만으로도 역사를 이길 수 있다는 듯이.(p172) - <노르망디의 연> 로맹가리 -



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내가 아는 건 마지막 남은 연들을 구해야 한다는 것뿐이었다.

- 로맹 가리 -


모든 나라의 연들이여, 단결하라.(p176)


우리 같은 사람들을 지휘하는 건 언제나 희망이지. (p184)


나는 다시 우리의 생존과 미래를 확신했다. 내가 사랑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p213)


연을 포함해 공중에 던진 모든 사물은 그 희망의 힘이 어떠하건 결국 다시 떨어지기 마련이라는 걸 알았지만, 이제는 지상 15미터 이상을 올리는 것이 금지된 연을 향해 눈을 들고 아이들에 둘러싸인 채 들판에 선 모습으로 자주 보이던 그 천진한 노인에게 경의를 표했다.(p225)


20년, 30년 후엔 프랑스는 깨닫게 될 거네. 픽, 뒤멘, 뒤프라, 그리고 다른 몇 사람이 가장 핵심적인 걸 구해냈다는 걸.(p242)


중요한 건 진실한 순간에 포착한 맛이야.(p248)


성스러운 연합(p254)


전부 이미 본 것들이야. 요즘은 새 연을 만들지 않아. 옛날 것들로 만족하고 있어. 요즘 같은 때엔 혁신보다는 추억이 필요하지. 게다가 이것들을 날릴 수도 없어.(p283)


너는 네 기억으로 살았다고 생각했겠지만 사실은 상상으로 산 거야.(p298)



그곳 사람들에게 내가 필요하기 때문이지.
난 내일 아침 일찍 떠난다.
뤼도야, 무너지지 마라.
다시 돌아올 거야. 많이 용서해야 할 거다.

- 뤼도의 삼촌 앙브루아즈 플로리 -



역사나 영속성과 관계된 일과 정치처럼 변화무쌍하고 예측 불가능한 일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해요.(p324)


전후에 독일이 패배하고 나치즘이 달아나거나 묻히고 나면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의 다른 민족들이 교대하지 않을지 두고 보게 될 것이다.(p372)


절망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p367) 


희망으로 사는 거죠.(p376)


우애는 때로 추악한 얼굴을 갖는다.(p412)


영속성을 지켜낸 사람들... 우리 모두가 저마다 제자리에서 마주해야 했던 시련들.(p417)


우리가 겪어야 했던 세월 뒤로 공허한 시간이 이어질 겁니다.(p418)


드골은 위풍당당하게 펄럭였다.(p423)


더 멀리 보고 미래를 향해 가야 할 거야......(p424)







(책 속에서 발췌)

로맹가리 작가에 대하여 



난 아침부터 밤까지 끊임없이 달라질 필요가 있어. 현재의 나 자신밖에 되지 못하는 것보다 더 슬픈 일은 없어. 상황이 만들어낸 보잘것없는 작품 말이야‧‧‧‧‧‧ 난 영원히 결정되는 게 끔찍이 싫어‧‧‧‧‧‧.(p80)


심령술 자리에 참석한 사람이 환상을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 탁자를 흔들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건 재앙이었다.(중략) 나는 똑같은 선의의 악의로 암송했다.(p98)


그걸 잃었다면 빚을 잃었을 뿐이야. 홀가분하실 거야. 빚은 명예빚이야.(p99)


운명의 시간이 다가올수록 점점 시들어가는 나‧‧‧ 이별로 치명적인 고통에 빠진 사람이 세월을 견디며 사랑을 간직한 예들이 문학 속에 있다.(p 104)


어쩌면 이 모든 것의 밑바닥에는 그 무엇으로도 초월할 수 없었던 죽음의 불안이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p145)


때때로 운명은 눈을 감고 게임을 한다.(p149)



증오의 메트로놈(일정한 속도로 음악의 빠르기를 나타내는 기계)에 맞춰 역사 속에서 희생자와 학대자의 역할을 번갈아 만들어온 분노였다.(p159)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걸 용서하지.(p161)


나는 혼자 남았다. 멍청하게 발아래 핏자국을 쳐다보았다. 내 분노와 원한을 비우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대신 이제는 불안이 찾아와 도무지 떨쳐낼 수 없었다.(p163)


내가 그토록 강렬하게 증오한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p163)


그들 앞에서 치욕을 겪느니 차라리 내 영혼의 초라함을 받아들이는 편이 나았다.(p164)


난 오늘 밤 떠나.(p165)


전쟁과 증오와 학살의 기원에 대한 설명에 내가 뛰어든다는 건 주제넘은 일이었다.(p167)


현대 무기는 너무도 강력하고 파괴적으로 변했어. 누구도 감히 그걸 사용하지 못할 거야. 사용하면 승리자도 패배자도 없고 폐허뿐일 테니까‧‧‧‧‧‧.(p167)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월이 살짝 분별을 잃게 만드니 우리가 누구인지 꼭 기억해야 한다.(p171)


그 어느 때보다 각자 자신의 최선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p183)


불안과 애정 결핍 상태에 빠져 있던 내겐 삶이 그런 집착을 쏟을 만큼 가치 있어 보이지 않았다.(p193)


어쩌면 나는 사람들이 경멸을 실어 "창녀"니 "포주"니 말하며 인간의 존엄을 엉덩이 수준에 두면서 쉽게 머리의 천박함은 잊어버린다는 걸 예감하기 시작했는지 모른다.(p194)


모든 게 끝장난 것처럼 보일 때도 본질은 그대로 남아 있다는 걸 문득 깨닫게 되죠.(p205)


특히 밤이면 모든 게 끝장남 것처럼 보이는 시간들이 있었다.(p207)


기억으로 살기 시작했다는 걸, 이 자리에 없어 영원히 사라진 듯 보이는 것들도 우리가 노력하면 살아서 현존할 수 있다는 걸 체험하기 시작했다.(p207)


눈을 감아보아도 소용없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날 밤엔 늙은 상식이 유난히 질기게 버텼다.(p213)


"희망으로 산다"라는 오래된 표현이 있잖아. 그런데 난 희망이 우리로 인해 산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p233)


나는 몇 달 뒤면 아무것도 남게 되지 않을 사람의 머리카락 색깔이라도 기억해 내고 되살려보려고 지금도 애쓴다.(p240)


검은색을 너무 많이 보다가 파랑을 보니 정신을 잃게 되는 것 같구나.(p260)


이 궁지에서 벗어날 방법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찾아야만 했다.(p261)


아무도 우리를 돕지 않아. 우리는 혼자야.(p271)


문명이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의 목을 계속해서 비트는 방식일 뿐이지......(p275)


나의 모든 희망이 목구멍에 잠겨 있었다.(p278)


내가 무언가에 쓰였다니 거뻐.(p284)


확률에 맞서는 이 도전에서 나는 신이 내게 보내는 호의의 징후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p284)


"매일 아침 해가 수평선에서 떠오르게 하는 데 필요한' 힘을 내 기억 속에서 길어 올렸다.(p285)


난 삶에 의미가 없지 않다는 걸, 삶은 실패하게 되더라도 최선을 다한다는 걸 언제나 알고 있었다.(p293)


절망은 언제나 굴복이다.(p296)


밤이 엄마처럼 어루만져주길(p298)


죽은 시간이 이어지다가 내 안에 미끄러져 들어와 나를 고스란히 덮쳤다.(p304)


나는 평온했다.(p306)


꿈은 여전히 기어오르고 있었다.(p314)


꿈은 땅바닥까지 추락해 깨지고도 아직 힘없이 날개를 퍼덕이고 있었다.(p315)


달이 아름다웠다.(p319)


여기는 모든 게 좋구나.(p323)


난 최선을 다하려고 애쓰고 있어.(p331)


조소하는 듯한 별빛이 유난히 아름다운 밤이었다.(p338)


내가 왜 이리 슬픈지
알 수 없지만
옛날 옛적 이야기 하나가
내 마음을 떠나지 않는다.....
 
나는 떠올린다
흘러간 날들을
그리고 운다......

- <노르망디의 연> p361-362 -



내 목구멍에서 찢어지는 소리가, 울부짖음이 튀어나왔다.(p410)


이미 세상 끝에 있었다.(p410)


이미 실망과 절망으로 울고 있었다.(p423)


나머지 일은 행복한 망상 같았다.(p423)





(책 속에서 발췌)

그녀에 대하여 



나는 그녀를 잊은 게 아니라 그녀에 대해 말한 것이다. (p123)


어찌 내 나이에, 내가 살던 세상에 대해 그렇게도 아는 게 없었던 내가 "여성성'이라는 말이 여자들에게 감옥이 될 수 있다는 걸 이해했겠는가?(p126) 


정치적으로 문맹이지만, 스스로 꿈꾸는 방식만큼은 자신을 알지 못하는 여성 혁명가의 방식이지.(p127)



시간이 한 번도 찾아오지 않은 듯한 곳이었다.
지질시대의 포로로 잡혀 어떤 비밀스러운 몽상 속을 헤매는 듯한 그런 장소였다. 
모래는 며칠이 지나도 우리 몸이 누웠던 흔적을 그대로 간직했다. 
매번 포옹은 모든 위기와 실수에서 삶을 구했다.
의식이 돌아왔을 때 오랜 세월 떠나 있었던 큰 범선들처럼 평온하게 내 심장이 서서히 항구로 돌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노르망디의 연> 로맹가리 p130



나는 너무 높은 곳을, 너무 먼 곳을 꿈꾸었다. 내가 살아야 할 것은 내 삶이지 그녀의 삶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p137)


사람들이 추억을 준비하고 있어. 그녀가 말했다.(p150)


넌 안심해도 좋아. 내가 널 잘 돌볼 테니. 네가 오래전에 나를 떠났더라도 말이야.(p151)


무거운 마음.(p158)


사랑을 하면서 자기 사랑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연주뿐이라고 느끼는 건 분명히 꽤나 끔찍한 일이야.(p168)


끝나는 사랑들도 있는 모양이야. 그걸 어딘가에서 읽었어.(p169)


무엇이 몽상이고 무엇이 몸이며, 무엇이 보금자리이고 무엇이 날개인지 알 수 없는 그런 순간. 지금까지도 나는 내 가슴 위에 놓인 그녀의 얼굴을 느낀다.(p169)
- 로맹가리 -



내가 포기한다면 절망에 빠질 게 분명했고, 그건 그녀를 잃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p180)


넌, 나를 사랑하게 될 거야.(p183)


그녀의 존재가 마치 어떤 예감처럼 내 곁에서 점점 더 커지는 게 느껴졌다.(p198)


그녀는 사라져서 은신처로 돌아갔고, 나는 그녀를 더 잘 보호하기 위해 그대로 눈꺼풀을 감고 있었다.(p221)


그녀가 나를 구하러 오는 건 거의 언제나 좌절과 피로가 극한에 다다른 순간이다.(p232)


내가 자신만만하고 평온한 한 너한테는 아무 일도 일어날 수 없을 거야.(p271)


이 모든...... 불행 때문에 과거는 점점 멀어지면서 더 행복해졌지만.(p295)


넌 나를 온전히 지켜주었어.(p306)


넌 나를 떠난 적이 없어.(p387)



무거운 잿빛 구름 사이로 반짝 햇살이 비치던 순간, 언제나 좋은 순간에 최고를 내줄 줄 아는 푸르른 하늘 한 조각이 있었다. 그리고 릴라의 옆모습, 목덜미와 어깨 위로 늘어뜨린 금발, 두려움이 미소를 선택한 얼굴이 있었다.

<노르망디의 연> 로맹가리 (p398)







(책 속에서 발췌)

황금 도마뱀


도마뱀은 시간의 기원 때부터 살아남은 동물이야. 돌 틈으로 사라지는 데 따라올 게 없지.(p188)


이건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야.(p188)


나는 피난이나 가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 아니야.(p192)


이따금은 꼭 5000년은 산 것 같은, 아니 살아남은 것 같은 느낌이야. 심지어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도 난 있었던 것 같구나. 내 이름이 뭔지 잊지 마라. 에스피노자.(p193)


곧 상황이 아주 나빠져서 재앙이 될 테고, 너와 너의 큰 아픔도 모두 그 재앙 속으로 사라져 버릴 거니까. 우리는 전쟁에서 패배할 테고, (p194)


사랑해서 죽고 싶다며. 그러면 서둘러야 할 게다. 왜냐하면 곧 사방에서 죽어나갈 텐데 그건 사랑 때문에 죽는 게 아닐 테니까.(p194)


- 돈을 지불하고 사시는 거예요?

- 아니.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있지. (총살당한 미래가 그래.)(p196)


숨으려는 게 아니야. 숨는 사람들은 언제나 발각되지.(p199)


곧 너 같은 어린 친구들이 필요하게 될 거야.(p200)


너처럼 사랑할 줄 알 때는, 없는 여자를 사랑할 줄 알 때는 다른 것들도 사랑할 줄 알 가능성이 많아...... (p200)


가련한 내 새끼.(p341)


엄마가 장담하건대
대학살이 있을 거야.
(p372)



흑백이라면 난 지긋지긋해. 인간적인 건 회색뿐이야.(p382)








나의 마무리...



『노르망디의 연』이 출간되기 직전에 이루어진 생애 마지막 라디오 대담에서 작가는 이 작품이 자신에게 “대단히 소중하고 중요한 소설이라고 말하고 몇 개월 뒤 자살로 세상을 마감한다. 작가는 죽기 직전에 남긴 몇 줄의 글에서 자신이 죽는 이유를 마지막 소설인 이 『노르망디의 연』의 마지막 구절 “더 잘 말할 수는 없겠기에”에서 찾으라고 했다. 그리고 덧붙인 마지막 말은 “나는 마침내 나를 완전히 표현했다.”라고 한다.


누가 누구를 위로해야 할까... 작가의 인생사, 가족사 어느 것도 평범한 것은 없었다는 걸 그의 애독자로서 모르지 않는다. 그가 건네는 위로가 미안할 정도였다. 나는 이 작품으로 작가의 결을 읽으려고 했다. 서사는 뒤 편으로 두고 그의 진심을 알고 싶었다. 그가 흘려 둔 말들을 이어 붙였다.


읽는 이유... 나는 너무나도 인간적인 것에 목메어 있었다. 나란 사람은 평범했지만 이상적인 삶을 꼭대기에 두었다. '그 비인간적인 점은 인간적인 것에 속하는 거야. 비인간성이 인간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선의의 거짓말 속에 남아 있게 될 거야.(p303)' 말하는 대목에서 흐느껴 울 뻔했다. 알고는 있지만 누가 말해주지 않아서 와닿지 않았던 것이 갑자기 부딪쳐 오는 느낌을 내 나이만큼 느끼게 되었다.


로맹 가리의 작품들 어딘가에 순수한 것, 나 자신을 깨부수는 게 아니라 내 안의 '그것'을 지켜내야 하는 것도 있다는 말을 떠올렸다.

- 훌리아 -


한 장 한 장 무언가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며 읽었다. 이 책이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나는 나를 짐작하기도 했다. 로베르토 볼라뇨의 칠레의 밤, 늙다리 청년이 떠오른다. 지친 듯 지치지 않은 듯 세월이 그렇게 흘러버렸다. 당신과 어디에서 안녕을 고해야 할까. 이 책으로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가슴속에서 치열하게 부딪히며 싸워온 것들을 생각하며....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걸 용서하지.(p161)'라는 말을 이해하려고 나는 패잔병이 되어 돌아와 읽어나갔다. 그런 그 조차도 '이 오래된 말, 모든 포기와 체념의 어두운 골목마다 끌려다닌 이 말이 별 거 아니었다.(p302)'라고 말한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나는 책을 읽을 때 이 책 하나만 남았다는 절박함으로 읽어나간다. 그렇지 않다면 책을 읽을 수가 없다고 할까. 왜 읽겠는가? 읽는 이유가 무엇이라도 있어야 한다. 그렇게 읽고 또 읽었다. 그래서 어떤 깨달음을 주는 책이 기쁘기도 했지만 슬퍼지기도 했다. 


'내 기억은 매 순간을 포착해 따로 두었다. 이런 걸 우리 집안에서는 비밀 장소라는 뜻으로 "양말 속"에 둔다고 한다. 거기엔 한평생을 견디게 해 줄 만큼의 기억이 저장되어 있었다.(p169)' 로맹 가리를 생각하면 포착이라는 단어에 멈추게 된다. 그가 포착했던 것들을 생각나게 했다. 




브런치북 

Romain Gary 로맹가리




또다시 전쟁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신은 한계가 있지만, 인간은 한계가 없다는 듯이 승리자도 패배자도 없는 폐허만을 보고 있다. 우리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살게 되었다. '지금으로선 네가 둘 이상의 수를 셀 수 없다는 것 나도 이해한다.(p175)' '추악한 현실의 권리를 거부하는 데 인간의 권리가 있다'라고 말하는 로맹 가리... 그곳과 이곳이 여전히 다르지 않아서 그가 마지막까지도 우리에게 희망을 놓지 말라고 당부하는 것인가 생각했다.


억울한 죽음이 없이 조금은 사회가 전진하고 있기를 바라는 마음뿐인데 그마저도 어려운 건 안타깝고... 1센티는 아니더라도 1미리 미리는 보이지 않을 듯 제도가 개선되고 청렴한 언론이 되기를 바랐다. 한 세기가 저물고 다음 세기에도 다시 반복될 이 지지부진한 것들이 눈에 밟힐 듯도 싶다. 건전한 정신의 소유자들에게는 사랑삶의 의미가 아니라 삶이 제공하는 작은 특혜일 뿐이라는 깨닫기 시작했다.(p177)


작가 스스로 '우리의 먼 과거에서 오는 오래된 유쾌함이 지나는 길에 어느 얼굴에 잠시 머물렀다가 다시 미래를 향해 길을 떠나는 것만 같았다.(p209)'처럼 자신이 이런 얼굴을 하고 있었다고 말하는 듯했다. 세상을 조롱할 때는 정말 심각해지고, 누구도 광기에서 안전한 곳에 있지 않음을, 파랑을 쫓는다고 비난하기 어려운 그들(분별 있는 부르주아들, 노동자들, 농민들), 불멸을 주장하던 그들이 가장 먼저 죽어나갔다. 


로맹 가리를 자신의 위한 집을 짓기 시작한다. 그들에게 개가 한 마리 있고, 자신의 교사라는 직업을 가지며, 자신의 은신처로 향한다.  서로를 한 번도 떠나지 않은 이 부부의 영속성을 보니 마음이 놓였다. 내게는 그 지속성이, 둘이 함께 늙어가는 것이, 그 약속이 필요했다.(p273) 


그의 상상 속에서 되살아난 이들. 모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그들을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본다. 정신착란이란 말로 묻어버렸을 그였겠지만 그래도 좋았다. 나도 망상하며 읽었으니깐. 그가 전한 우정의 인사를 잘 전달받았다. 그가 홀가분해졌으리라 그렇게 믿기를 바라니 그 은신처에서 행복하리라 믿을 수밖에 없었다. 나라는 사람이 여전히 썩 믿음이 가진 않아서 미안하다. 용기를 끌어모으던 당신이 그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눈물이 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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