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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훌리아 Apr 11. 2023

나의 미카엘 - 아모스 오즈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은 내가 사랑하던 사람들이 죽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은 어렸을 때는 내게 사랑하는 힘이 넘쳤지만 이제는 그 사랑하는 힘이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잊는 것은 죽는 것이다) 나는 죽고 싶지 않다.

아모스 오즈 <나의 미카엘> p7




<나의 미카엘>은 1956년 수에즈 위기 전후를 무대로 한나와 미카엘의 사랑과 결혼에 대한 이야기다. 여기에서 수에즈의 위기란, 제2차 중동 전쟁을 의미한다. 1956년 말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침공하고 여기에 영국과 프랑스가 개입한 전쟁이었다. 거기에 미국과 소련이 반발하고 UN이 정전을 요구하는 등 영국과 프랑스는 수에즈에서 철수한다.  이스라엘이 원했던 것은 티란 해협을 확보하는 것이고 영국과 프랑스는 이집트가 국유화한 수에즈 운하를 회복하고 이집트 대통령 나세르를 축출하는 것이었지만 아랍 세계는 유럽 제국주의 몰락으로 회자되고 있다. 




이스라엘이 티란 해협을 확보하고자 했던 이유는 1950년 이집트가 이스라엘 항해를 봉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2중동전쟁이 발발했고, 이후 1967년 이집트는 주변국(요르단, 시리아, 레바논)과 연합하여 이스라엘과 제3차 중동 전쟁을 발발시킨다.  6일간의 전쟁후 휴전 협정이 체결된다. 1000명 이하의 이스라엘군이 사망한데 비해 아랍군은 20,000명 이상이 사망했고, 이스라엘은 이집트로부터 가자 지구와 시나이반도를, 요르단으로부터는 동예루살렘과 요르단 강 서안 지구를, 시리아로부터는 골란 고원을 획득하며 영토를 3배나 넓혔다. 

이후 다시한번 1973년 이집트와 시리아가 주축인된 욤키푸르 전쟁이 일어났고, 초기 자만에 빠진 이스라엘이 전쟁이 밀렸으나 다시 공세를 저지하고 격퇴하게 된다. 이 전쟁으로 100,000명의 시리아인이 골란 고원을 떠났고, 300,000명의 팔레스타인이 서안 지구를 떠났는데 모두 난민이 된다. 아랍 세계는 소수의 유대인들을 축출하여 유럽이나 이스라엘로 이동하게 되었다. 이러한 역사를 바탕으로한 <나의 미카엘>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마음이 심란하여 진다...





▲ 홍해입구의 티란해협(구글어스 갈무리, 그래픽=김영수). © 경기도민뉴스   발췌





서른 살의 한나는 10여 년 전 남편과의 만남을 회상하고 있다. 남편은 테라 상타 대학에서 미끄러진 자신을 잡아주며 만나게 되었다로 시작하고 있다. 우연한 계기로 만나게 되는 두 사람, 그 여자 한나와 그 남자 미카엘. '나의 예루살렘'이라는 말이든지, '고양이는 자기를 좋아할 것 같지 않은 사람은 결코 사귀지 않지요.'라는 말이라든지. 그의 미소와 손가락이라든지. '발목'이라는 말을 좋아했다는 말이든지.. 그녀의 그의 단상들을 엮어나가고 있었다. 미카엘은 지질학과 3학년, 홀론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한나를 예루살렘에서 태어나고 자란 것을 그는 한눈에 알아보았다며 그녀를(예루살렘 사람)을 고양이에 비유했다. 





קרסול (히브리어, 카울소르) : 뜻 발목, 나는 발목을 삔 것 같다고 답했다.
그는 자기가 항상 <발목>이라는 말을 좋아했다고 말했다. 그는 미소지었다. 
그는 나더러 차갑고 아름다운 예루살렘 사람이라고 말했다.

나의 미카엘 p8-9, 22





홀론은 이스라엘 텔아비브 구의 도시




겨울이 돌아올 것이다. 
비가 와서 모든 것이 사라질 것이다. 
예루살렘에는 다시 거센 바람이 불 것이다. 






겨울밤 예루살렘

억눌린 폭력 

잉태하고 있는 풍경





우연히 마주친 두 사람은 저녁에 다시 만나 자신의 부모들에 관한 이야기 주고받았다. 미카엘의 아버지는 한 세대를 건너 친할아버지처럼 미카엘이 예루살렘 교수가 되는 것을 바란다. 외동아들에게 큰 기대를 품고 교육에 봉급을 다 쏟았다. 한나는 자신의 어머니가 자신의 오빠와 올케가 예절을 가르치지 않는다며 손수 손자들에게 예절을 가르치고 다 틀린 히브리말로 자신에게 편지를 쓰고 라디오 듣기가 취미인 것을 말한다.




한나의 아버지는 수리공이었고 1943년에 돌아가셨다. 그의 아버지는 삶이란 사람이 교훈을 찾아내야 하는 수업이라고 생각했고, 야포 거리의 가게에 작가나 대학교수가 들어온 날은 무슨 환영이라도 본 듯한 얼굴을 하고 집에 돌아왔다. 자신과 오빠 에마뉴엘을 데리고 텔 오르 영화관에 데려가서 평화주의 단체에서 후원한 회의에서 마르틴 부버와 휴고 베르그만의 연설을 듣게 했다. 




한나는 미카엘과 짧은 시간에 결혼에 이르게 된다. 조금은 암울한 꿈이 한나에게 어떤 불운이라도 끼칠 듯이 느껴졌다. 한나는 아들 야이르를 결혼 첫해가 끝나갈 무렵 1951년 3월에 낳는다. 미카엘의 고모들에게 임신 중절이란 말까지 듣는다. 임신 초기 식량배급 장부를 두 번 잃어버리고, 몇 주씩이나 비타민 결핍 증세에 시달리다. 쓰러져 유치원 일을 관두게 된다. 자존심이라는 말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미카엘 고모에게서 돈을 감사히 받았다. 미카엘은 언제든지 공부를 그만두고 일자리를 찾을 용의가 있다는 사실을 한나가 기억해 두 길 바랐다.





안녕, 미카엘.

나는 창가에 서서 김 서린 창문에 손가락으로 여러 가지 모양을 그릴 거예요. 원한다면 당신은 내가 당신에게 손을 흔드는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당신의 환상을 깨지는 않겠어요. 난 당신과 함께가 아니에요. 우리는 두 사람이지 한 사람이 아니랍니다. 더 이상은 내 사려 깊은 장남 노릇을 할 수는 없어요. 잘 가세요. 당신에게 달려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는 게 너무 늦은 건 아니겠죠. 나에게도 말이에요. 

미카엘, 이번만은 미소짓지 말아요.p289-290




평화로운 미풍이 소나무를 건드려 흔들어놓는다. 먼 하늘이 서서히 창백해진다. 그리고 저 광대한 공간에 조용하고 차가운 정적이 내려앉는다.


       

나의 미카엘저자아모스 오즈출판민음사발매1998.09.30.


        

아모스 오즈, 현대 이스라엘의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이자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 중동 평화를 위한 활동가로도 유명하다. 본명은 아모스 클라우스너(Amos Klausner)이며 오즈(Oz)는 히브리어로 '힘'을 뜻한다

작가 아모스 오즈는 이스라엘 작가이며 소설가, 저널리스트, 벤구리온 대학의 문학교수이기도 했다. 그는 1939년 예루살렘에서 태어나 자랐고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히브리 대학에 들어가 철학과 문학을 공부했고 후에 25년간 키부츠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글쓰기와 농사일을 병행했다고 한다. 그의 1965년 첫 소설 <자칼의 울음소리>를 발표한 이후, 문단과 대중의 관심과 찬사를 받으며 현대 히브리 문학의 거장이 된다. 1968년에 발표된 <나의 미카엘>은 1975년 영화로도 제작이 된다.

그의 집안은 시오니스트였으나 오즈 자신은 시나이반도에서 '6일 전쟁'을 겪은 1967년 이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해결에 있어 두 국가(two-state) 체제를 옹호하며 1977년부터 평화 단체 ‘샬롬 아흐샤브Peace Now’를 이끌고 1978년 반전단체 '즉시 평화'(Peace Now)에 참여하는 등 두 나라의 평화공존을 위해 힘써왔다. 그 활동의 결과로 프랑크푸르트 평화상, 프랑스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은 바 있다. 조국의 부흥을 위해 힘쓰면서도 아랍 국가들과의 평화공존을 주장했기에 이스라엘 안팎에서 ‘배신자’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그는 평생을 글로써 행동했던 ‘침묵하지 않는 작가’였다. 자신의 조국과 동포, 그리고 전쟁으로 인해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의 삶에 대해 증언하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2018년 오즈는 일흔아홉을 일기로 영면했다. 유해는 키부츠 훌다에 묻혔다.

1965년 출간한 첫 소설집 『자칼의 울음소리(Where the Jackals Howl)』를 시작으로, 1968년 발표한 장편소설 『나의 미카엘』은 대중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아마도 다른 곳에』, 『블랙박스』, 『여자를 안다는 것』, 『밤이라 부르지 마오』,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 『물결을 스치며 바람을 스치며』『삶과 죽음의 시』 등 18종의 저서를 썼으며, 그의 책들은 30여 개의 언어로 번역 · 출간되었다.

이스라엘의 가장 권위있는 문학상인 이스라엘 문학상을 비롯해 페미나상, 런던 윙게이트상, 하인리히 하이네상 등의 문학상을 받았으며, 2005년에는 이스라엘 작가로서는 이례적으로 괴테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마무리.


<나의 미카엘> 제목이 서정적이라서 무척 기대를 많이 했었다. 하지만 한나는 히스테릭했고, 미카엘은 전사하는 줄 알았지만 그들은 계속해서 살아갔다. 모든 이스라엘 풍경 속에 살아가서 인간적이었다. 한나의 히스테릭과 꿈에 대한 이야기가 반복적이어서 여기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은 했다.




더 이상 날 미치게 하지도 말아요. 

잘못 알아들었군요. 미카엘. 당신이 당신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게 끔찍한 게 아니라 당신이 당신 아버지처럼 말하기 시작했다는 게 끔찍한 거라구요. 그리고 당신 할아버지 잘만. 우리 할아버지. 우리 아버지. 우리 어머니. 그리고 우리 다음에는 야이르. 우리 모두가요. 인간이 계속해서 거부당하는 거잖아요. 계속해서 새로운 초안이 만들어지는데 결국은 다 거부되고 구겨져서 쓰레기통에 던져지고는 새롭고 약간 발전된 개작으로 대체되는 거죠. 이 모든 게 다 얼마나 쓸데없는 일인지. 정말 무의미한 농담이죠.

<나의 미카엘> P269



한나는 자신 때문에 슬펐다. 그리고 심하게 고통받는 영혼들 때문에도. 분명 결혼 전과 후의 한나는 다른 사람이 되었던 걸까 아니면 처음부터 한나는 한결같았으나 숨겨져 있었던 걸까. 한나의 본성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한나 피지배자로서는 무능했다. 우울과 발작을 동반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그녀가 미카엘에게서 '좋았다'는 무엇이었을까. 좋았다고 해서 모든 걸 순종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곁을 내주겠다는 의미였다.



지배자로서 한나는 자신을 조금이라도 좋아하는 것들에 한해서 정신을 흔들고, 들끓게 하고, 위협하길 서슴지 않았다. 악몽, 꿈속의 쌍둥이(단치히와 수에즈운하 사건)에게도 그러했고, 남편 미카엘에게도 그랬고, 아들 야이르에게도, 이웃집 소년 요람에게도, 자신의 어머니에게도 이웃에게도 그러했다. 자신의 사랑은 한 톨 내어주지 않고 이별했다. 한나는 차갑고 아름다운 예루살렘 그 자체였다.



1956년 배경이 지금으로선 현대라고 할 수 없지만 그 당시의 현대인의 외로움과 절망, 여성이 결혼 후 남편과의 삶에서 자신의 꿈이 축소되고 실존 상황에 주시하고자 했다는 해설은 좀처럼 와닿지가 않았다. 이스라엘 사람들과 풍경이 전체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에 한나의 히스테릭은 이질적으로 겉돌고 있었다. 그래서 더 그것이 이스라엘 현 상황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은 내가 사랑하던 사람들이 죽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은 어렸을 때는 내게 사랑하는 힘이 넘쳤지만 이제는 그 사랑하는 힘이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잊는 것은 죽는 것이다) 나는 죽고 싶지 않다." 이 말이 좋았고 마지막까지 좋았다. 작가의 소신이자 한나의 사랑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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