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훌리아 Oct 13. 2015

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의 숨 가쁜 사랑

세기의 커플이란 수식어는 과거일 뿐이다

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의 숨 가쁜 사랑
Romain GARY Jean SEBERG


모로코 출신의 프랑스 작가 폴 세르주 카콩은 그들을 가까이서 본 듯이 이야기한다. 세기의 커플이란 수식어는 과거일 뿐이다. 작가는 그와 그녀의 첫 만남을 그려내고 진 세버그의 눈빛을 그의 어머니 니나의 눈빛으로 기억해낸 것이 그저 상상일 뿐일지 궁금했다. 사실 이런 식의 이야기는 별로 듣고 싶지 않기도 했다. 어디에도 진실이란 것이 없다고 느껴진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이 기억하는 그들을 만나보고 싶은 이중성이 나에게도 있었다.

그 남자는 어딘가 비현실적이면서 지독히도 진실하고, 강하면서 자유로운 무언가를 집약하고 있었다.(중략) 그는 마흔다섯 살로 황금기이기를 바라는 나이, 아직 욕구로 들끓는 과거와 인내로 가득 찬 현재 사이의 노란선 위에 선 나이였다. 그는 시간에 시간을 내주는 그런 부류가 아니었다. p22

                                                                                             

                            


로맹 가리를 생각하면 처음으로 떠올리는 것이 그의 태생이다. 그에 대해 무언가를 쓰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의 이력을 정보 캐듯 나열하곤 한다. 러시아계 유대인인 가리는 그것마저도 부정한다. 아버지에 대한 부정이기도 했다. '몽골과 타타르의 피가 섞인 유대인'이라며 출생 정보를 뒤섞기도 한다. 평범한 가정이었고 홀어머니 아래 유랑하듯 살았던 그의 삶은 그렇게 이상적이라고 할만한 것은 없다. 프랑스로 가는 계기가 마련되었을 뿐이란 생각만 강하게 남는다. 어머니가 어린 아들에게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를 부르게 함으로서 스스로 문화적으로 영원한 프랑스인이 되도록 했다.

로맹 가리는 로만 카체브라는 이름으로 러시아에서 태어나 유년기의 초반을 빌노에서 보냈는데, 그곳은 유대 지식인들의 삶의 중심지였다. 빈곤을 일상으로 접하면서도 문화생활이 꽃을 피웠는데,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성서에 대한 애착으로 유지되고, 자신의 조건을 바꾸면 모두의 운명을 어느 정도 완벽하게 만들 수 있다는 신념 가운데 정신적인 것에 집착하는 문화였다.P27



이 책은 두 사람의 사랑뿐 아니라 만나기 이전의 각자의 삶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가리의 작품과 작품의 배경, 그의 사상과 이념을 되짚어 보기도 한다. 그는 언제나 용기를 주고 싶어 했고 절박하게 옹호하는 것들이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다. 내가 로맹 가리 작가에게 반한 이유 중 하나다.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해준다. 한편 진 세버그는 인기 스타, 반항적 이미지와 정반대로 바른 교육 속에서 순종적이면서도 배우로서 도전적으로 살아온듯했다. 다만 인종주의 차별을 인식하고 스스로 미국에 대해, 자신에 대해 수치심을 가졌고 이것은 그녀를 평생 미국 흑인들을 위한 전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했다.



그에게는 꽤 멋진 여자들이 함께 했다는 생각마저도 든다. 연인 사이에서 일어나는 공명작용으로 서로의 최고의 모습을 닮게 하는 것이다. 상대 쪽의 닮은 '나'를 보곤 성가셔하기도 하지만 발전적 관계를 유지해온듯하다. 외교관이었던 가리는 레슬리와 함께 한 시간 동안 그의 문체가 완성되었다.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거대한 탈의실> 작품 완성을 하고 그녀에게 헌정한다. 두 사람이 함께 한 프랑스 니스의 퀘렌시아에서 그는 <낮의 빛깔들>을 그녀는 <거친 사랑>을 쓰는데 몰두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여전히 불충실하기도 했다. 이후 가리는 <하늘의 뿌리>로 콩쿠르상을 수상한다.

그는 사랑에는 언제나 한결같은 끈기를 보이며 더없이 충실했다. 레슬리를 일로나-정신분열로 첫사랑과 헤어짐-의 기억과 이었던 것처럼 동일한 사랑이 생애 마지막까지 그를 진 세버그에 묶어두었다.



로맹 가리의 첫 번째 부인 레슬리 블랜치가 그린 연하장(1961).


                                                                                                               

역사의 한 단면 속에 아롱, 사르트르, 보부아르, 말로, 카뮈 등이 있었고 그 한편에 가리도 있었다. 로맹 가리 한 사람을 조명하는 동안 여러 나라, 언어, 인물들이 섞이고 스쳐 지난다. 그의 작품을 읽으면서 내가 느낀 새로움이었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현재에서 20세기 초반이 우리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시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아니 어느 한 시점만으로 이루어진 건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중년의 나이에 이르러 모든 것에 만성적 무력감이 있었다.



진 세버그는 <네 멋대로 해라> 작품으로 가리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재 프랑스 총영사로 지내며 <새벽의 약속>작품으로 성공적인 제2의 인생이 기다리고 있는 시점이었다. 가리는 잃어버린 사랑을 끝없이 찾아내고 소유하고 조급하게 끝냈다. 정복의 염주라도 있듯이 숱한 연문을 뿌리고 다녔던 그가 진 세버그에 앞에서 그 바람이 멈춘듯했다. 그녀의 나약함? 위태로움? 가리는 지나칠 수 없었다.

그녀에겐 보호가 필요했다. 보호라니, 무엇으로부터? 그는 알지 못 했다.



가리가 자신의 사랑을 위해서 또 다른 사랑을 저버리는 행위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연상의 레슬리가 느낀 굴욕감, 열정에 휩싸인 진 세버그 그녀는 가리의 아이까지 출생하는 동안 가리와 레슬리는 긴긴 줄다리기를 한다. 가리는 진과 레슬리 사이에서 번민하면서도 글쓰기와 출간에는 여전히 열정적이었다. 1959년 <레이디 L> 레슬리에게 헌정한다. 1961년 <탤런트 스카우트>를 영어로 썼고 이 책은 프랑스에서 <별을 먹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이 책의 여주인공은 진 세버그였다. 그는 사랑할 줄 알되 행복할 줄은 몰랐던 사람이란 생각도 들었다.




                                                                                                 

1960년 1월 4일 알베르 카뮈 47살의 나이에 자동차 사고로 사망하며 그는 끔찍한 고통의 시간을 보낸다. 케네디 암살, 마틴 루터 킹 목사 암살, 체 게바라도 암살되었다. 1968년 5월 미국에서는 여성해방 시위, 베트남 전쟁 반대 시위, 대도시의 흑인 폭동 지지 시위 등 난무했다. 역사의 페이지는 그렇게 넘겨지고 있었다. 가리와 진 세버그는 자신들의 열정을 맛볼 수 있는 유일한 것들을 쫓았다. 작가로서, 배우로서의 사명을 다하려는 모습이었다.

이 세기의 가장 멋진 문장은 알베르 카뮈의 것이었다. "나는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는 모든 사람에 반대한다."p101



<흰 개>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징기스콘 의 춤>으로 이어진 가리의 작품은 그와 진 세버그의 삐걱거리는 사랑이 겹쳐진다. 결별이 눈앞에 놓인 가리는 줄곧 불안하고 난감한 심정이었다. 결국 그녀와 헤어졌다. 그녀는 갈수록 방탕하고 과격한 행동을 일삼는다. 흑인 인권운동으로 FBI 표적이 되었고 위험한 곳으로 끝없이 모래 구덩이 속에 빠진 것처럼 보였다.

아무리 직업 작가라도 1700만의 미국 흑인들을 집에 들일 수는 없어. 이 일에 내가 내놓을 수 있는 건 또 한 권의 책뿐이야. 나는 이미 전쟁과 점령, 나의 어머니, 아프리카의 자유, 폭탄을 가지고 문학을 했어. 미국 흑인들을 가지고 문학을 하는 건 절대 거부하겠어."P171



아들에게 친 <아듀 게리 쿠퍼>, 지칠 줄 모르고 다니는 여행에서 건져 올린 <홍해의 보물들> 작품을 출간한다. 그러는 동안 진 세버그는 흑인 행동주의자 휴이트 마사이의 아이를 가졌다는 기사가 실린다. 가리는 그녀를 보호하고 그녀의 딸의 이름을 '니나 하르트 가리'라고 지어준다. 니나는 알다시피 가리 어머니의 이름을 딴 것이다. 아기는 곧 하늘로 돌아갔다. 가리는 그녀를 위해서 영화 제작을 하지만 실패한다. 그녀는 그가 자신의 목숨을 구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았다.



1973년 성난 듯 쓴 <마법사들>, 불안에 평온의 옷을 입힌 듯 <밤은 고요하리라>, <인간사>를 출간한다. 동시에 샤탄 가보트라는 가명으로 <스테파니의 머리들> 첩보소설을 출간했다. 진 세버그는 공허함에 벗어난 듯 또 다른 사랑을 시작하고 영화도 찍었지만 제대로 이루어진 것이 없었다. 가리는  신중하게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진에게 기회가 되면 위로와 재정적 도움을 주려고 애썼다. 가리는 이 시점에서 자신의 분신 에밀 아자르로 <그로칼랭>과 <자기 앞의 생>을 출간한다. 그에게 그칠 줄 모르는 작품의 힘은 무엇이었을까?.... 그에게 이젠 모레도 오후도 없었다.



그의 작품을 이어 읽기 하면서 그의 생과 작품을 마주 보고 있으려니 마음이 착잡해진다. 여기서부터의 이야기는 나도 나름대로 알고 있는 부분이다. <여자의 빛> <이 경계를 넘어서면 당신의 승차권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영혼 충전> 집필할 당시 진 세버그는 알코올 중독에 빠졌고, 그는 새 유언장을 작성했다. 아들에게 재산을 물려주기로 결심하고 이 말을 명시했다. 레슬리 블랜치와 진 세버그를 경제적으로 돕는 데 신경을 써야 한다고...



그녀의 때이른 죽음... 나이 마흔하나였다. 진 세버그는 자신을 왜 그토록 추스르지 못했을까. 조급하게 사랑을 찾았고 알코올에 빠졌고 자살기도를 하고 공허한 삶을 살았다. 쟁취하려던 꿈은 손아귀에서 사라진지 오래였다. 가리는 아들 디에고와 함께 갈리마르 출판사 사무실에서 기자 회견을 한다. 그는 FBI가 진을 파괴하려고 했으며 아기가 죽은 뒤로 점차 미치게 만들었다고 비난했다. 이후 그가 어떤 생으로 마감했는지 알고 있다. 나는 아자르가 쓴 <솔로몬 왕의 고뇌>를 가장 좋아한다. 그가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어준 그 작품이 가장 마음에 든다.... 사랑 가득하면서 인간적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