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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훌리아 Sep 26. 2015

여자의 빛Clair de femme : roman

 아내를 잃은 고아같은 남자....

여자의 빛
Clair de femme : roman


마흔, 그 나이는 아직 나에겐 낯설다. 지금 내 나이도 낯설고... 낯선 것 투성이다.... 나보다 항상 나이가 앞서가는 것 같다.. 내 안에 깃든 사랑도 마흔이 될까? 계속 시간이 흐르다 보면 언젠가 모든 것과의 이별을 해야 한다. 나는 절규하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나도 당당하게 야니크처럼 미셸을 보낼 수 있을까? 나 스스로 자존감을 지킬 수 있을까? 그 사람에게 영원히 남겨질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이 들었다.



<여자의 빛>을 읽으며 작가 로맹 가리의 영화 같은 삶을 안 들여다볼 수 없었다. 그의 태생이며 사랑했던 여인 진 세버그, 그의 작품 활동, 생의 마감까지도... 주인공 미셸이 꼭 로맹 가리인 것 같았다. 그가 꼭 그녀를 그렇게 사랑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글에 담긴 것처럼 사랑도 그러했으리란 것은 어쩌면 그저 나의 상상일 뿐이다.



미셸은 야니크의 남편이다. 중년의 나이에 유머 있는 남자다. 아내를 무척 사랑해왔다. 그는 야니크에게 설득당하고 합의해 주었다. 야니크는 자살할 것이다. 그녀는 그에게 자신이 사라지더라도 계속해서 여자의 빛을 이어줄 다른 여자를 만나 자신을 기억하라고 한다. 그날 밤 야니크가 자살하기로 한 날 자신은 공항에 갔지만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리디아를 만난다. 그리고 자신의 여자의 빛이 되어달라고 한다. 그의 정신은 영원의 조각들 사이로 오고 간다. 그럴 때마다 절규하는 그의 슬픔 마음이 느껴졌다.


애니를 위하여 스틸컷_참조(미셸에게.... 아내 야니크는 온 사랑이자 빛)


나는 야니크처럼 될 수 없다. 그렇다고 미셸같이도 될 수 없다. 이건 로맹 가리의 이야기일 뿐이다. 어떤 사랑인지 알겠기에 슬프다. 세상에 성공을 거둔 하나의 커플이 있을 것이다. 하룻밤을 그 두 사람을 위해 보낸 리디아가 나 일지도 모르겠다. 할 말이 너무도 많을 것 같았는데 글이 이어지지가 않는다. 사랑에 대해할 말이 아주 많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로맹 가리의 탐나는 글을 옮겨 적고 나니 내가 쓸 말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기분이다.



<밤은 고요하리라>를 읽은 후 일로나 제스메가 그의 첫사랑임을 알았다. 그 사랑이 블랜치로 진세버그로 이어졌음을 알게됐다. <새벽의 약속>에서도 잠시 등장했던 일로나는 로맹 가리가 결혼을 할 마음을 먹었었던 여자였다. 지난 이야기 중에 하나라 큰 의미를 두지 못했고 그에겐 언제나 진 세버그가 존재하니깐 유일한 사랑이라면 당연히 그녀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여자의 빛>에서도 주인공 미셸의 사랑이 곧 로맹 가리 자신일 거란 생각은 했지만 그의 사랑이 진 세버그라고 하기엔 뭔가 믿기지 않는 베일의 감정이 있었다. 지금에서야 진 세버그가 아닌 일로나였음을 짐작한다.



그는 사랑할 줄 알되 행복할 줄 몰랐던 사람이다.



                                                                                                  

[사랑하는 그 남자 미셸, 그 여자 야니크 - 영원의 조각들]

여성성이라는 모국을 잃은 사내가 거울 속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 남자, 타자, 나, 무국적자. 사람들이 당신에게서 모국을 앗아갔군. 친구. 당신의 샘, 당신의 하늘, 당신의 밭, 당신의 과수원을. 그 나라에서 그녀의 금발은 유년의 은신처들보다 더 안전하고 은밀한 곳이었다. 그녀의 금발이 내 두 눈을 가려 세상으로부터 보호해주는 동안 나는 순간순간을 누렸다. 궁극적인 지각, 존재 이유라고 해야 할 그런 순간들을. 그 존재 이유가 그녀 아닌 모든 것으로 확장되었다. 마침내 가시를 벼리고 돌을 담금질하는 데 어떤 결핍감, 어떤 박탈감이 필요한지 알게 된 것처럼.(P38-39)

우리는 인간의 기억보다 더 오래된 존재들이었다. 태고의 맛을 지니지 않은 행복은 없다. 빵, 소금, 포도주, 물, 신선함과 불 둘이 함께 있으면 서로가 땅이고 서로가 태양이다. '우리가 서로를 만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종종 들어......'.(P39)

밤의 소리를 듣고 있었다. 내 가슴속 내레이터의 충실한 중얼거림을. 추억을 잃어버린 이들은 더 이상 오래된 프롬프터 소리를 듣지 못한다. 당신이 왜 거기 있느냐고, 이 모든 것이 무엇을 의미하느냐고, 어째서 세상은 거기 없느냐고 당신에게 묻는 오지랖 넓은 사람들. 마치 당신이 우주의 불심검문은 발화자가 없는 질문이라고 주장하기라도 한 것처럼. 지상의 육체에는 당연히 한계가 있었다. 우리 두 사람의 숨을 가르고 떼어내고 벌리고 들어 올리고 둘로 나누어야 했다. 그것은 언제나 그만큼 손실이다.  마음은 하나인데 몸이 둘이라면 언젠가는 반쪽이 되어야 한다..(P43)

'내가 당신의 조용한 시간을 방해한 거야? 지독한 방해지. 당신이 여기 없으니 말이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거울 앞을 떠났다.(P43)

그녀가 누워 있소. 이미 몹시 고통을 받고 있소. 나는 그녀 위로 몸을 기울이고 있소. '내가 있잖아'하며 상대를 안심시키는 남자다운 손으로 그녀의 손을 잡아주면서 말이오. 미칠 것 같았소. 그녀가 손가락 끝으로 내 볼을 만졌소. '당신이 나를 어찌나 사랑해주었는지 이건 거의 내 작품 같아. 마치 내가 내 삶으로 정말 뭔가를 만들어낸 것 같아. 수백만의 사람이 언제나 그런 시도를 할 수 있지만, 성공을 거두는 건 오직 하나의 커플뿐이야. 수백만 중에서 둘도 성공하기 어렵다니까.'(P.114)



[영원의 조각들 그방향 - 그남자 미셸 그여자 리디아]

나는 꼬부랑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살면서 당신에게 내 추억을 줄 거야. 조국을, 땅을, 샘을, 정원과 집을, 요컨대 여자의 빛을 포기하지 않을 거야. 엉덩이의 흔들림, 머리카락의 흩날림, 우리가 함께 만들 주름들. 그러면 나는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게 되겠지. 나는 여성적인 나라를 포기하지 않을 거야.  보초를 설 때가 아니라면 혼자가 되지 않겠어. 내가 잃어버린 모든 것이 내게 살아야 할 이유를 줘. 흠 없는 것, 행복한 것, 불멸하는 것......

여자의 빛을.(P115)

나는 그녀의 입술을 오래도록 쓰다듬었다.  내 손가락들이 줄곧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이어 내 손은 그녀의 머리카락 속으로, 세월로부터 보다 밝은 것을 취해 하얗게 센 그녀의 머리카락 속으로, 나아가 그녀의 주름 속으로 들어갔다. 미소가 만드는 주름, 날개 사이에 자리 잡은 십자가 같은 이마의 세로 주름, 부드럽고 섬세하게 파인 눈가의 주름 속으로. 세월이 해놓은 일. 삶은 자신이 해놓은 작업으로 명성을 누릴 만하다. "그러니까 당신이 거기 있군. 여자의 빛이 있어. 다른 남자들은 그것 없이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럴 수 없어." (P126)

지금 내게 남은 당신의 일부를 사랑하는 데에는 숲, 들판, 바다, 대륙, 세계를 보는 것으로 충분해. 그 무엇이 너무 빨리 지나갔어. 아주 멀리 날아갔어. 당신 기억나? 발데모사에서 본 두 개의 올리브나무가 어찌나 친친 얽혀 있던지 어느 게 어느 건지 구별할 수 없었잖아. 그런 우리를 도끼질로 갈라놨어.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아파. 특히 두 팔과 가슴이.(P142)



[영원의 조각들 - 그 남자 미셸]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여자의 빛을 갖지 못한 허깨비 같은 내 모습이 외지인처럼 보이는 모양이었다. 지붕들 위로 새로운 태양이 떠올랐다. 주위의 사물들이 나를 자기들 흐름으로 다시 끌어들이려 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영원과 우주와 광년이 벌이는 작업이 거기 있었다. 하늘은 짐짓 표정을 꾸며댔지만 그 광대함은 그의 뜻을 배반했다. 진짜 하늘은 손으로 가릴 수 있을 만큼 작으므로.(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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