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경계를 지나면 당신의 승차권은 유효하지 않다 Au-dela de cette limite votre ticket n'est plus valable
이 책은 로맹 가리가 만년에 이르러 쓴 책이다. 그의 가명 에밀 아자르로 <자기 앞의 생>을 펴 낸 시기이기도 하다. 주인공 자크 레니에는 37살 연하 로라를 사랑하고 있다. 그들의 사랑은 모욕적인, 파렴치한, 특권을 부여받은 뭔가가 있다고 그들 스스로도 생각하고 두려워한다. 난 자크와 <자기 앞의 생>의 주인공 어린 모모를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희망이라곤 눈곱만큼도 남지 않은 자크와 먼 미래의 알 수 없는 기대가 남아있는 모모는 같으면서도 아주 먼 사이같이 느껴졌다.
로라의 사랑이 자크의 경계가 되리라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로라의 편지를 읽는 자크의 모습에서 그가 그가 될 수 있도록 힘을 주는 원천이 꼭 편지(그녀의 언어)에 있다고 생각됐는데 그것은 아마 작가 로맹 가리의 자전소설 <새벽의 약속>에서 어머니로부터 전쟁 기간 동안 받은 편지가 떠올랐기 때문이기도 하다. 살아내겠다는 다짐 비슷한 것을 하리라 생각이 들었다. 작가를 너무 의식한 나머지 뭔가 찾아내려는 듯 읽는 나를 발견하기도 하는데 그건 그의 팬이라면 누구라도 비슷한 심정이 아닐까...:)
우리가 보통 터부시한 것들 중에 하나이기도 한데 유럽이나 아시아나 서양이나 동양이나 다를 게 없기도 한 '노년의 성性'문제이다. 출판사 대표인 자크는 회사의 어려움과 자신의 성 불능 예감으로 각종 치료와 상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불편한 진실을 내가 지금 이 책을 통해 알아버린 것에 대해 약간의 충격도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음... 그의 유서와 같은 글을 읽노라면 가장 중요한 걸 잊어버린 듯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아마 자크도 가장 중요한 것을 잊었기 때문에 스스로 타살을 계획하지 않았나 싶다.
나이 든 남자라도 자신감이 필요하다. 그것은 지키고 싶은 몇 가지 때문이다. 가족과 사랑이다. 그것을 지키기가 점점 어려워지자 자크는 멈추기를 원한다. 나는 완전히 이해하긴 어려울지 모르겠다... 그 고통과 비참함을 알아도 모르는 것과 같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나도 나이가 들고 함께 늙어갈 남자를 생각하면 로라와 같이 안아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랑에 관해서는 그 어떤 것도 잘못이 없다' (p245)고 말해 준 것처럼....
행복한 섬, 로라
오래전부터 나는 침묵하고 있는 순간이 가장 행복했다. 당신에게로 가서 무릎을 꿇으면 당신이 이마를 내 어깨에 대는 그때, 당신 팔이 내 목을 감싸고 있음을 느끼는 그때, 내가 소곤거렸던 사랑의 언어들은 막 태어나서 아직 아무런 일도 겪지 않았을 때처럼 어린 시절을 되찾지.(p200)
석양의 불안감
난 이제 그다지 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행복을 망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프랑스 화가 피에르 보나르가 말했듯이, 이 순간은 다른 어떤 순간들보다도 힘든 시간이다. 계속하고는 싶지만 캔버스에 한 번 더 손을 대면 모두 망칠 것이라는 사실을 화가라는 직업이 조곤조곤 알려주기 때문이다. 제때 멈출 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