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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훌리아 Sep 25. 2015

흰개Chien blanc

증오Haine

당신 또는 누군가의 증오...


흰개Chien blanc


그가 표현한 녀석은 어린 시절 짓궂은 친구를 떠올리게 만든다. 나는 솔깃하게 귀 기울여 듣곤 하는데 내 친구 '해피'를 떠올리게 한다. 읽기 시작할 때부터 든 예감은 슬픈 것이다. 살아있는 짐승과 우정을 나누는 건 언제나 한쪽의 수명이 짧은 탓이거나 다른 여러 가지 이유가 동반되어서다.

짐승을 사랑한다는 건 꽤나 끔직한 일이다. 개 안에서 인간을 본 사람은 인간 안에서 개를 보고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p272)



로맹은 버마고양이 '브뤼노', 샴고양이 '마이', 도둑고양이 '비포', 거취조 '빌리빌리', 비단뱀 '교살자 피트' 그들과 함께 프랑스 파리에서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로 온다. 그가 진 세버그가 영화 촬영을 하는 동안 함께 있기 위해서.... 녀석은 회색 독일 개 셰퍼드인데 로맹이 기르는 덩치 큰 누렁개 '샌디'가 비 오는 날 어디선가 우연히 데려왔다. 그 녀석의 이름은 '바트카' 러시아어로 '키 작은 아버지' 또는 '할아버지'란 뜻으로 불렀다. 7년 생쯤 되는 노년기에 접어든 개였다.



로맹의 소설 속엔 언제나 그가 느껴지는데 <레이디 L>과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잠시 읽었지만 나는 익숙한 듯이 빠져들 수가 없었다. 레이디 L의 화자는 고령의 귀부인였고, 새들은 페루..는 16개의 단편으로 이뤄졌다. 단편의 시작은 책 제목과도 같았는데 난 9번째 파도를 이해하기도 전에 다른 이야기로 들어가기란 쉽지 않았다. 그가 만든 소설 속에 내가 들어가는 일 뿐인데... 내가 '지금 책을 읽고 있어'하는 기분인 채로 더 읽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좀 더 나중으로 미뤘다. 그러고선 이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나는 해피의 기억이 떠올라 간질간질한 감동받았다. 차가운 코, 뜨거운 혀가 내 손바닥에 닿는 듯이 느꼈기 때문이다.



바트카는 사교성을 겸비한 우호적인 짐승이었다. 로맹은 가족으로 받아들이면서 불행의 징후 보게 된다. 치료를 위해 잭 카루더스의 동물원 '노아의 목장'에 데려간다. 나이 든 개는 바뀌지 않는다고 거절하려고 하는데 로맹은 잭을 설득하고 맡긴다.


흰 개로군요


미국 남부 경찰이 흑인을 체포하는 걸 돕도록 훈련한 개를 '흰 개'라고 불렀다고 한다. 예전엔 달아난 노예들을 뒤쫓기 위해 훈련시켰고 지금은(1968년) 시위자들을 쫓기 위해 그런다고 한다. 1959년 로맹이 진 세버그와 동거를 시작하며 레슬리 블랜치와 이혼한 그는 1961년 외교관직을 사임했다. 1968년 그녀와 이혼하기까지 <스가나렐을 위하여> <별을 먹는 사람들> <징기스콘의 춤> <죄지은 축제> <게리 쿠퍼여, 안녕> 등 사회문제에 관한 소설을 썼다. 한 테마처럼 느껴지기도 한데 국내에는 번역되어 나온 책과 될 책들이다.



로맹 가리는 1970년 인종차별과 이념 대립으로 인한 폭력성을 비판하는 내용의 장편 <흰 개(Chien blanc)>를 발표했다. 하지만 당시 임신 중이었던 진 세버그의 아이를 두고 과격파 흑인 민권운동단체인 블랙팬서(Black Panthers) 지도자의 아이라는 언론의 악의적 루머가 퍼졌고, 충격을 받은 진 세버그의 자살 시도로 딸 니나 하르트 가리가 태어나자마자 2일 만에 사망하기도 했다. 난 이 책이 셰퍼드와의 우정만으로 끝나지 않겠구나 하는 무거운 마음으로 읽어나갔다.



백인들에게 잘 훈련된 공격견이었던 바트카는 더 이상 치유 불가능해 보였다. 증오심을 가득 품은 흑인 '키스(keys)'는 바트카를 심하게 떼리고 동물치료소를 나간다. 로맹은 흰 개를 데리고 총으로 쏴 죽이려 하지만 총알은 빗나가고 바트카를 끌어안았다. 그는 동물조련사 키스에게 바트카를 다시 맡긴다. 그는 나약하고 아름다운 영혼을 보면 전투적으로 변모한다. 얼마 후 바트카의 주인으로 보이는 노인과 두 어린아이가 집으로 찾아온다. 바트카를 흑인만 보면 으르렁거리고 미친 듯이 달려들게 한 주인 말이다. 편안한 노후만이 남은 듯이 보이는 노인은 전직 보안관이고 아들도 곧 20년간 경찰직을 관두고 개 사육장을 열어볼 생각이라고 말한다. 로맹은 반짝거리는 위트에 빵 터졌다. 가관이었다. 그 노인은 쉰 목소리로 묻는다. "당신의 깜둥이 친구가 개를 아프리카로 데려갔습니까?" 로맹은 "그렇습니다. 제가 비행기 삯을 대주었죠. (중략) 아프리카에는 흑인이 2억 명이나 있으니까요."라고 말한다.


Jean Seberg( 1938. 11. 13 - 1979.08.30)


진 세버그는 14살 때부터 인권운동을 시작했다. 영화 스타로서 부각되며 그녀 주변에 그러한 조직들의 자금 맥이 되어던듯하다. 로맹은 그녀 스스로 가진 죄책감을 그들이 이용하는 걸 알면서도 막지 않는다. 아니 막지 못한다. 그는 절대 흑인에 관한 책을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진이 말한 대로 로맹은 썼다. 그녀도 분명히 이 책을 읽었겠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책에선 비폭력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의 암살사건을 바라보고 그 후 흑인 폭동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다. 11년후 1979년 9월 8일 그녀의 죽음이 정신에 병이 든 채인지 아니면 로맹이 말한 것처럼 누군가에 의한 죽음인 건지 의문이 들었다.


 

키스는 흰 개를 조련시켰다. 증오가 있었지만 두려움이 개로 하여금 공격을 못하도록 막았다. 바트카는 정신분열에 가까운 신음을 흘린다. 키스는 어떤 방법으로 바꿔놓은 것일까? 바꾼 게 맞는 것일까? 인간들끼리의 문제에 개를 끌어들인 것이데 또다시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 것일까? 키스는 이 개에게 집착하고 있었다. 로맹은 비난하기 전에 문제를 한 번 더 들여다보라고 말한다. 그가 아는 열 살 아래 흑인 레드는 파리의 매춘 포주였고 지금은 미국 흑인 저항을 위해 베트남 전쟁에서 2만 아니 5만의 흑인 전문 군인 양성을 꿈꾼다. 그의 이상은 극단 주의자들이 온건파를 위해 일하는 것이다. 그 중도파들은 그들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한다고 말한다. 20년 우정으로 진심 어린 조언을 하지만 그는 뒤돌아 보지 않고 출발했다.

소수자인 흑인이 계속해서 폭력에 기대는 한 다수인 백인은 겁낼 게 전혀 없지. 현실적인 해결책이 한 가지 있긴 해. 정치적 방법으로 지역의 정치 세력을 정복하는 것이지. 그렇지만 내가 이 말을 하면 청년들의 눈에는 내가 틀려먹은 사람이 되고 말아. 그러면 더는 그들을 구할 수가 없어.....(p270)



이야기는 쉽게 끝이 나지 않는다. 베트남 반전시위, 와츠지역 폭동, 마틴 루터 킹 암살, 프랑스 68혁명 등을 보여주고 있다.. 로맹의 실제와 허구가 뒤섞인... 솔직히 나는 어디가 허구일지 모르겠다!  그는 흑인을 두둔하지도, 백인을 정당화하지도 않는다. 그의 눈에 집단의 이념에 사로잡힌 인간의 광기를 경계했다. 흰 개와 진 세버그가 오버랩되었고 다시 나와 오버랩이 되었고 우리와 오버랩되었다. 어느 한편이 되어서 주입식 훈련 또는 핏속에 각인이 되었다면 증오가 쌓이고 물어뜯을 목을 찾아 두리번거릴 수 밖에 없다. 두려움은 은밀한 곳에 깔려있어서 지워지지 않는다. 두 편을 옹호할 자신이 없으면 어느 쪽의 하인이 되는 수밖에 없는 중간 인간이 그려졌다. 차가운 지성과 뜨거운 인간미는 어디로 내팽개쳐 버린 것일까?

대체 누가 우리에게 이런 짓을 한 거지? 내게 " 사회"라고 답하지 말아달라. 우리 뇌의 본성 자체가 원인이다. 사회는 진단의 한 요소일 뿐이다.(p163) 좌파건 우파건 나는 쇄도하는 인파라면 모두 추악하게 느껴졌다. 나는 태생이 소수자다.(p262) 나는 쓰러진 동료들이 내 곁에서 죽어가는 것도 보았지만, 절망과 이해할 수 없음과 고통의 표현이 어떠할지 떠올리고 싶을 때면 이 개의 눈길을 더듬는다..(p277)



                                                                                               


한 권의 책 속

나는 이미 전쟁과 점령을 가지고, 내 어머니와 아프리카의 자유와 폭탄을 가지고 문학을 했어. 미국 흑인들을 가지고 문학을 하는 건 절대로 거부하겠어. 당신은 이게 무슨 태도인지 잘 알 거야. 내가 바꿀 수 없고 해결할 수 없고 바로잡을 수 없는 문제를 만나면 난 그 문제를 없애버리지. 그걸 한 권의 책 속에 배출해버려. 그러고 나면 더 이상 억눌린 것처럼 답답하지 않아. 잠도 잘 와. 그러곤 달아나버리지. 흑인에 대한 책은 출간 못하겠어. 절대 거부해, 난.....(p64)


형제

내 말 잘 들어봐, 친구. 흑인을 물지 말라고는 하지 않겠어. 흑인만 물지는 말라는 거야."


감정가치

나는 '감정 제거'라는 현대적 흐름에 굴복하기를 거부한다. 감정의 인플레이션을 빌미로 감정을 평가절하하길 거부하고, 100프랑의 고통이 1프랑의 가치밖에 없다고 받아들이기를, 다시 말해 어제는 단 한 사람의 죽음으로 충분했던 곳에 백 명의 죽음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p75)


더 중요한 것

인간에게 실망하고 배신당하고 조롱당하는 편이 그들을 계속 믿고 신뢰하는 것보다는 덜 중하기 때문이다. 쓰라린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이 성스러운 샘에 수 세기 동안 악의에 찬 짐승들이 물을 먹으러 오도록 내버려 두는 편이 샘이 마르는 걸 보는 것보다는 낫다. 자기 자신을 잃는 것보다는 샘을 잃는 편이 덜 심각한 것이다.(p77)


구원

흑인의 폭발이 눈에 보이지 않는 곡괭이질로 꼼짝 않는 구조에 갇혀 혈관이 막힌 채 발이 썩어가는 걸 막아주리라는 건 알았다. 미국은 흑인의 도전으로, 토인비가 말한 그 '도전'으로 구원받을 것이다. 문명이 변화하면서 부추기는 도전 말이다. 이런 도전이 없다면 문명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p96)


                                    

이전 07화 다시 읽는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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