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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훌리아 Dec 24. 2015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세상의 끝에서...'  

로맹 가리 프랑스 작가 단편소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Les oiseaux vont mourir au Perou
페루 리마 해변


이 새들은 모두 어디서 오는 건가요?


작중 화자는 페루 수도 리마에서 십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해변에서 카페를 운영 중인 마흔일곱인 남자다. 스페인 내전에서, 프랑스의 레지스탕에서, 쿠바에서 전투를 치른 다음, 모든 것이 종말을 고하는 안데스 산맥 발치의 페루 해변으로 몸을 피한다. 꼭 여기가 영혼을 반환하러 간다는 인도의 성지 바라나시라도 된 듯이...    



다른 이들이 하늘가에서 살듯,
그는 바닷가에서 살고 있었다.



자크 레니에는 죽어 있는 새들을 바라보았다. 새들은 언제나 밤에 죽어갔다. 그는 너무나도 많은 새들이 그 모래언덕으로 와서 숨을 거두는 것을 지켜보았다. 새들은 진짜 비상을 위해 이곳으로 왔다...

죽은 새들로 뒤덮인 이 후미진 해변에서 이 여자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얼굴은 어린아이를 연상시켰고, 화려한 치장 속에 웅크리고 있다. 파도가 부서지는 물속으로 걸어들어가는 그녀를 구했지만 그녀는 죽지 못한 것을 후회했고 흐느꼈다. 어떤 연약함, 어떤 무구함이 그녀에게 서려 있었다.



사육제-로마 가톨릭에서 부활절을 준비하는 금식 기간을 앞두고 갖는 관능과 자유의 축제 행사. 나라와 지방에 따라 여러 형태로 이루어지는데 가장무도회·익살극 등을 포함한 온갖 환락을 동반한 행사가 치러지며 때론 지나치게 과격한 나머지 폭동으로 돌변하여 수많은 사상자를 낳기도 한다.-의 마지막 물결, 희생된 후 벗겨진 마지막 편린-한 조각의 비늘-들 이 이곳으로 모였다.



그는 희망이라는 미끼를 물고 싶어 했다. 황혼의 순간 문득 다가와 모든 것을 환하게 밝혀줄 그런 행복의 가능성을 은근히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를 밀어붙인 환상의 힘을 애써 감추려 했다. 보호해 주고 싶은 욕구에 애써 저항했다. 쉰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그런 자신이 절망적으로 느껴졌지만 한번 더 마지막 남은 환상의 조각들을 빼앗기지 않는 법을 배우려 했다.


먼 바다에서 다가오는 강렬하기 짝이 없는 고독의 아홉 번째 파도에. 그 누구도 극복할 수 없는 단 한 가지 유혹이 있다면 그것은 희망의 유혹일 것이다.



그들-인간의 배설물-이 더욱 고통스럽게 죽어갈 방법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들이 빼앗은 그 무엇을 조금이라도 되찾기 위해서는 그들을 죽여야 할지도 몰랐다. 분명한 건 그들은 당신의 보석을 빼앗지 않았다....



모두 알아버린 나이, 고매한 명분이든 여자든 더 이상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나이에 불감증인 아내를 치료하려는 로저는 누구일까? 세상의 끝에 자신과 더불어 머물게 함으로써, 작은 새 한 마리를 보호하려는 자크 레니에는 누구인가? 곧 쉰 살이 될 남자로서 현실의 자신의 모습이상의 자신의 모습이 뒤섞인 듯 보였다.


죽어 있는 저 수천 마리의 새들의 무덤은 누구의 무덤인가? 하늘가에 있는 다른 사람들 누구인가? 차갑고 헐벗은 바위뿐인 조분석-바닷새의 배설물이 바위 위에 쌓여 굳어진 덩어리-섬을 떠나온 것은 누구인가? 세상의 끝... 부드럽고 따뜻한 모래가 있는 이곳을 향해 곧장 날아오는 새는 당신이다....              






조금은 시적이고 조금은 몽상적인 로맹 가리의 단편소설(1962)이었다. 그의 나이도 작중 화자와 거의 같다. 작품과 로맹 가리 떼어 놓으려 했는데 생각할수록 빠져만 들었다. 일약 스타덤에 오른 진 세버그, 외면하고 싶은 현실, 그가 쓰고자 했던 작품, 상처받은 영혼 하나하나... 자신이 더 이상 할 수 없다고 애써 외면하려 했던 것들을 마주한다.

그가 미국 영사로 발령받고 할리우드로 진출한 시점에는 그 어느 때보다 스스로 자유롭다고 여겼다. 기나긴 길 위에서 새롭게 시작할 무한함에 흡족해하기도 했다.  고독의 아홉 번째 파도를 맞으며... 세월을 낚을 뿐인 노후를 생각했을까? 예상하지 못한 진 세버그의 존재로 인해서 그는 사랑, 이별을 감당하고 그녀를 계속해서 주시한다. 만약 연상의 첫 번째 부인 레슬리 블렌치를 떠나지 않았다면 아마도 그는 오래도록 편히 글을 썼을 수도 있었다...

한편으론 인생의 후반에서는 가명으로 더욱 활발히 작품을 쓴다. 그의 가슴으로 떠밀려 오는 영혼들을 치유하기 바빴다. 이 책 읽는 동안 리마의 해변 모래 언덕에 앉은 내 모습이 그려지기도 했다. 그의 예상대로 떠밀려간 영혼 하나가 그곳에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싶었다. 언제나 그를 사랑하는 독자로서 남고 싶다.

다른 이야기지만... 레슬리 블렌치는 진 세버그가 그에게 불행일 것임을 여자의 직감으로 알아차렸다. 말려도 보고 회유도 하고 기다리기도 했던 그녀였지만... 그렇게 두 사람이 차례로 세상을 떠났을 때 그녀는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그녀도 작가였고 유능한 보그지 기자였다고 한다. 102세까지 생존했다고 하니... 그 긴 세월 잊어버리고 말았을까...


로맹 가리는 1959년 ~ 1968년  진 세버그를 사랑하고 이 작품을 쓰고 이 작품을 영화화하면서 그녀와 이별한다. 감독이 되어가면서 가리는 언제나 진 세버그의 재기를 도우려 한다. 결별이 눈앞에 놓인 가리는 줄곧 불안하고 난감한 감정이었다. 그녀는 갈수록 방탕하고 과격한 행동을 일삼았다고 한다. 마지막까지 그는 영혼 하나를 안타깝게 주시했다. 알겠지만 그녀도 그도 더 이상 이곳에 없다. 진짜 비상을 했기를...



**
시간은 아름다운 배설물, 새끼 바다표범을 죽이듯이 살아 있는 채로 당신의 껍질을 벗긴다. .(1979년 로맹 가리, 솔로몬 왕의 고뇌 중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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