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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훌리아 Sep 26. 2015

새벽의 약속La promesse de l'aube

어머니Mère 쉼 없는 사랑....

새벽의 약속
La promesse de l'aube


나는 로맹 가리 작가의 겸손과 유머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의 겸손과 유머는 나를 슬프게 한다. 그리고 그의 깊이 있는 이해와 통찰력을 어깨너머 배우게 한다. <새벽의 약속>은 자전적 소설이었다. 어린 시절 그가 하던 생각, 몸짓, 어머니의 시선, 사랑.. 어느 것 하나 놓칠 수가 없었다. 그동안 나는 알에서 깨고 나오는 것만 생각할 수 있는 책을 읽어 왔다. 또 그래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그 알에서 깨고 나오는 것은 (그에게) 정말 쉬운 일이며 자신의 온전한 것, 순수한 것, 그 이상의 것을 지키기 위해서 알 속으로 들어가기를 간절히 바랄 수도 있음을 느꼈다. 로맹 가리는 그의 어머니를 위한 것인지 자신을 위한 것인지 그 경계도 모호해진 실현을 위해 자신의 한계를 깨고 넘어선다. 그것은 어찌 보면 깨고 나오는 것이 너무도 쉬운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그가 잃고 싶지 않은 어떤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졌다...




새벽을 보게 된다는 것, 생을 시작해야 된다는 것 로맹 가리에겐 그것이 곧 어머니였던 것 같다. 그가 작가로써 벌여왔던 일들을 생각하면 아니 그의 인생의 결전의 그날조차도 이해하게 만든다. 그에게도 후회라는 것이 남아있을까? 그런 의문만이 남는다... 로맹이 한편으론 부럽기도 했다. 그런 채찍질이 없었다면 그는 다 이룰 수 없을지도 모른다. 원하든 원치 않았든 가난과 모멸을 홀로 감수하면서도 아들의 성공을 위해 애쓴 어머니를 위해 로맹 가리는 그녀의 소원대로 세계문학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소설가가 되고,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고, 프랑스 외교관이 되지 않았나? 미안하지만 난 겸손도 유머도 한참 모자란다. 이런 말을 하려고 한 것은 아닌데..


절망할 수조차 없는 로맹 가리를 보면서 나의 아버지를 떠올렸다... 생의 시작은 부모였으나 그 끝은 내 손에 달렸다고...





러시아에서 태어난 유태계인 로맹 가리는 폴란드를 거쳐 프랑스에 이주해 프랑스인 되어 파리 법과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고 장교 양성과정을 마친 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자유 프랑스 공군에 입대한다.  비행사 50명 중 단 3명만이 살아남았는데 그중에 하나가 가리였다. 그의 막후에 어머니가 있음을 가리도 나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이 책 속에는 전쟁 중 죽은 동료들의 이름들이 하나씩 불리는데 한참 후엔 가슴이 조금 아파져 왔다.... '그렇게 과거를, 어떤 목소리를, 한 친구를 되살아나게 하려 애쓴다. 그러면 마침내 살아있는 몸으로 내 곁에서 웃으며 일어난다'라고 그는 읊조린다...



이제 나도 마무리를 지어야겠는데.... 마음이 무겁다... 그가 향했을 그 길 위에 그만 홀로 남겨두고 와버린 기분이다... 그가 위안 삼은 몇 가지 떠올려본다... 장작, 가죽 재킷, 루이종, 그리고 탯줄...... 이 몇 단어와 관련된 이야기는 책 속에 정성스레 담겨있다. 이것 말고도 책을 통째 여기에 옮기고 싶을 정도로.. 어느 한 문장만 가져오기엔 나에겐 너무나 벅찼다.. 이제는 그가 전쟁 중에 써낸 <유럽의 교육>을 읽고 있을 나를 떠올려 본다....



                                                                                                  

[어머니]

때때로 나는 향긋한 내 장작 은신처로 가 몸을 숨기고서, 어머니가 내게 기대하고 있는 모든 것을 생각하곤 하였다. 그리고 나는 울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소리 없이. 어떻게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인지 전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p103)

어머니는 무표정한 시선으로 나를 힐끗 바라보더니 다시 창문을 바라보았다. 오늘에서야 그날 어머니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던가 알 것 같다. (중략) 내가 고생하여 기를 가치가 있는 인간인지, 당신의 모든 희생, 수고, 희망에 의미가 있는 것인지, 내가 다른 남자들이나 마찬가지가 될 것이 아닌지, 그리하여 다른 남자들이 어머니에게 했던 것같이 어머니를 취급하지나 않을 것인지, 그런 생각을 하였으리라.(p147)

비참한 공포가 나를 사로잡았다. 잿빛 얼굴 약간 옆으로 기울어진 머리, 감긴 눈, 고통스럽게 가슴 위에 놓인 그 손에 대한 기억은 그때부터 한시도 나를 떠나지 않았다. 어머니가 내게 기대하고 있는 것을 이루어내기도 전에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 정의를 보지도 못한 채, 무게와 척도의 인간적 법칙을 하늘에 투영하는 것도 보지 못한 채 어머니가 지상을 떠날 수도 있다는 생각은 나에겐 양식에의, 양풍에의, 순리에의 도전이요, 일종의 형이상학적 강도 짓이요, 경찰을 부르고 도덕과 법과 권위에 호소해도 좋을 무엇인 것같이 생각되었다.(p180)

나를 대상으로 한 어머니의 쉼 없는 사랑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이상의 것일 때가 종종 있었다. (중략) 나는 어머니가 내게 기대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실현시키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또 나는 어머니의 꿈이 너무 소박하고도 도에 지나친 점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느끼기엔 너무도 어머니를 사랑하였다. 또 어릴 때부터 내 찬란한 미래에 대한 약속과 어느 것이 어머니의 꿈이고 어느 것이 진짜 나인지 잘 구별되지 않곤 하였던 만큼 그 속에서 환상을 가려내기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제 그렇게 어머니의 치마 폭에 싸여 있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p191)

어머니의 용기 안에 있는 어떤 것이 내게로 옮겨와, 내 안에 영원히 남았다. 지금도 어머니의 용기가 내 안에 깃들어 살며, 절망하는 것을 막음으로써 내 인생을 힘들게 하고 있는 것이다.(p283)

(때때로 어머니가 끼어든다 로맹의 의식 속으로...) 나는 널 그렇게 키우지 않았고, 네게 기대했던 것은 그게 아니다. 네가 그 같은 행동을 할 것 같으면 절대로, 절대로 집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할 테다. 나는 부끄럽고 슬퍼서 죽을 것이다.......... (중략) 어머니는 어디고 쏜살같이 나를 쫓아왔다. 지팡이로 위협해 가면서 말이다. 어떤 때는 애원하며 노한 듯한, 어떤 때는 내게 너무도 낯익은 이해력 상실의 찡그림이 새겨진 어머니의 얼굴이 뚜렷하게 보였다.(p346)

'내가 한 모든 것, 그것은 네가 나를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에 한 일이란다. 나한테 화내면 안 돼.'(p403)


                                                                                                        

[실현사이]

어릴 때의 이 사랑은... (중략) 나는 칼자국이 난 어린아이 고무신 한 짝을 가지고 다녔다. 스물다섯이 되고, 서른이 되고, 이윽고 마흔이 되었어도 신은 항상 손 닿는 곳에 있었다. 언제든 나는 다시 한 번 내가 가진 최선의 것을 주기 위해 그것을 먹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런 기회는 오지 않았다. 마침내 나는 내 뒤 어디엔가 그 신을 던져버렸다. 사람은 두 번 살 수 없는 것이다. (p87)

예술에의 추구, 걸작을 향한 이 강박적인 추적은, 내가 드나든 모든 박물관들, 내가 읽은 모든 책들, 그리고 공중그네에 매달려 쏟았던 나 자신의 모든 피땀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나에게는 하나의 알지 못할 신비로 남아 있다. 삼십오 년 전 지붕 위에서,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제빵사의 그 영감에 넘치는 작품을 굽어보던 그때나 마찬가지로.(p98)

나는 평생을 노력하였다. 오랫동안 걸작들 사이를 방황하고 난 뒤 나이 마흔이 거의 다 되어서야 비로소, 조금씩 진리가 내 안에 자리 잡기 시작하였고, 마지막 공이란 존재하지 않음을 깨닫기 되었다. 그것은 슬픈 진실이며 어린아이들에게 그것을 알려주어서는 안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모든 사람의 손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p133)

나의 달음박질은 무엇인가에 대한 정처 없는 추적이었다. 예술은 나에게 그 추적에 대한 갈증을 주었지만, 인생은 그것을 진정시켜줄 수가 없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나는 나의 영감에 속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세상을 행복한 정원으로 바꿀 수 있기를 꿈꾸지만, 인간들의 사랑에 의해서 보다는 정원들의 사랑이 있어야 그렇게 된다는 사실을 이제 나는 알고 있다.(p335)

나의 그 끊임 없는 우울과, 내 피의 분노한 소란과 소생하고 이기고 극복하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욕망과 싸우면서, 지금도 나는 '그것'이 분명히 무엇인지 모른다. 아마도 인간적 상황이리라.(p397)


                                                                                 

[빛의 그물]

파도를 굽어보며 나는 지난날에서 한 아름씩 건져내었다. 예전에 주고받았던 이야기들의 조각들. 천 번이나 들었던 말들. 내 눈 속에 남아 있는 모습들. 몸짓들. 어머니가 손수 짠 뒤. 한사코 매달려 있던 빛의 그물. 어머니의 일상을 관통하는 그 근본적인 주제들을(p368)

횃불 때문에 내 손을 잃었을지언정, 그것을 잡을 준비가 되어 있는 모든 손들, 아직은 발휘되지 않은 숨겨진 우리의 힘, 잠재적이고 막 태어나고 있는 힘, 모든 미래의 힘들을 생각하며, 나는 희망과 기대에 미소를 짓는다.(p410)

나는 살아냈다.(p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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