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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훌리아 Oct 20. 2015

남자의 부드러움

죽음은 참으로 성가신 일이다

시모네타 그레지오, 남자의 부드러움 La douceur des hommes



# 포스카

이제 돌이켜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말하는 젊음의 낭비가 내게는 유일하게 바람직한 삶의 방식처럼 보이는구나. 나이가 들어서까지 사랑과 그 달콤한 신기루를 갈아탈 수 있다는 건 특혜란다. 난 60년도 넘게 남자들과 싸워왔단다. 남자들을 사랑했고, 남자들과 결혼했고, 남자들을 저주했고, 남자들을 버렸지. 남자들을 열렬히 사랑했고 증오했지만 결코 남자 없이 지내진 못했어. 결국엔 남자를 끊었다고 생각했지. 머리로만 그랬을 뿐 마음은 그렇지 못했다는 걸 몰랐던 거야.



# 콩스탕스

모두를 위해 대가 없이 주어진 모든 감미로움이... 우리가 가장 필요로 할 때 돌아올까? 우리가 떠날 때? 어루만져지고, 더럽혀지고, 씻기고, 지친 모든 살갗을 남기고... 죽음은 참으로 성가신 일이다.



(과거 회상)
부모님은 개를 한 마리 데려다 길렀는데, 이름이 롤이었고, 스패니얼계 잡종으로 순하고 재미있는 녀석이어서 우리 셋만 있을 때보다 훨씬 행복했다. 늘 기분이 유쾌한 개였다. 그 개는 매일 아침 학교까지 나를 따라다녔다. 어느 날, 내 뒤에서 소란한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다보았다. 롤이 자기보다 훨씬 크고 사나운 다른 개와 싸우고 있었다. 다른 개가 롤의 넓적다리를 물었다. 나는 그 개가 머리를 흔들어 롤의 살점을 뜯어내더니 거의 내 발밑에다 피범벅이 된 살덩이를 내뱉는 걸 보았다. 롤은 배를 보이고 드러누우려 하지 않았다. 싸움은  계속되었다. 두 개는 무게가 10여 킬로그램이나 차이가 나서, 롤이 용감하게 싸웠지만 상대 개가 우위를 차지했다. 그 개는 훈련된 전사처럼 빠르고 거만한 승리를 표시하기 위해 한 발을 높이 쳐들더니, 침과 피로 뒤덮인 채 신음하는 롤을 남겨두고 거의 실망한 표정으로 떠나갔다.

나는 부모님에게 알리고 도움을 구하러 가야만 했다. 뭔가를 해야만 했다. 그런데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롤은 나를 쳐다보더니 집을 향해 천천히 쩔뚝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나는 차라리 롤이 죽는 걸 보기를 바랐던 기억이 난다. 왜일까? 롤이 맞았기 때문일까? 졌기 때문일까? 아니다. 롤이  고통받는 것이 내게 고통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롤을 돌보아야만 했다. 그런데 나는 이미 학교에 늦었다. 마음속으로 나는 롤이 너무 심하게 상처 입어서 더 이상 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고통을 거부했던 것이다. 개의 고통과 나의 고통을.





시모네타 그레지오(SIMONETTA GREGGIO)

1961년 이탈리아의 파노바에서 태어나 1981년부터 프랑스의 파리에서 거주하며 기자로 활동했다. 이탈리아인이면서 프랑스어로 글을 쓰는 작가는 그 이유를 “사랑 이야기를 쓰는 데에는 이탈리아어보다 프랑스어가 훨씬 더 섬세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녀에게 있어 프랑스어는 바로 ‘자유의 언어’이다.




콩스탕스의 내면을 잘 들어낸 과거 회상씬이다. 포스카와 콩스탕스의 관계는 이야기의 뒷부분에서

밝혀지는데... 포스카는 자신의 살아온 날들을 들려주며 콩스탕스가 열지 못하는 마음을 어루만지려 한다.

이야기의 배경과 그들의 인상적인 차림을 상상하며 읽다 보면 나른하고 몽롱한 여윤으로 더운 여름을 낭만적이게 보낼 수 있을 같은 그런 기분에 사로잡힌다.


늙음이란 슬픈 것 같기도 하지만 어차피 나이 듦을 받아들이고 담담하게 여기자 그런 생각이 든다.

요즘 나는 어떻게 나이 들어가고 있나. 앞으로 난 나이가 들어도 어떤 마음으로 살까. 그런 생각이 부쩍 많이 든다. 인생이란, 이렇게 흘러가고야  마는구나.. 어떻게 만들어 나아가야 할까. 어떻게 이 생에 후회 없이 떠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문뜩 들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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