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가 있는 바다

고래와의 첫 만남

by 고냥이

나는 중학교 2학년 여름, 고래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고래는 어디서 온 걸까? 어쩌면 당연하게도 고래는 원래 바닷속에 있는 포유류이다. 근데 왜 몰랐을까? 고래가 바닷속에 숨어 나오지 않는 부끄럼쟁이 여서? 아니면 매번 구슬프게 울어도 내가 알아주지 못한 걸까. 결론적으로 아직도 난 고래와 눈을 맞추며 대화한 적이 없다. 고래는 시위하듯 바닷속에서 거대한 몸으로 헤엄치며 거대한 파도를 만들고 구슬픈 울음소리로 분위기를 암울하게 만들며 존재감을 뽐낸다. 나의 바다이기에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불청객이 있었던 걸까? 나는 내가 누군지도 모르게 되어갔다.


중학교 2학년의 이야기를 하기 전에 나의 초등학교 시절을 말해보자면 딱히 행복한 추억이 떠오르지 않는다. 다들 내 이야기를 들으면 “와 너 인생이 스펙타클하다!” 며 놀래던 기억이 대부분이다. 초등학교 5학년 시작된 사춘기로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하던 공부들이 역겹게 느껴졌다. 막상 지금 생각해 보면 사춘기는 하나의 트리거였다. 어려서부터 쓴 일기에는 대부분 화내거나 욕하고 부정적인 단어들로 가득했고 침대에는 ‘죽고 싶으면 떼세요 ‘라는 포스트잇들이 붙어있었다. 이러한 감정들이 모여 폭탄이 된 것이다. 폭탄은 터지지 않고 나를 달구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나는 독특했고 관심받는 걸 즐기고 주위에서는 나에게 항상 통통 튄다고 말해줬다. 그래서 그런 걸까 중학교 1학년은 순탄치 않았다. 학폭위, 학생부, 소외, 괴롭힘이 계속되었고 난 매우 힘들었다. 인정한다 나의 관종적 성향으로 인해 눈에 띄고 반대항 경기가 있음 항상 표적이었다. 급기야는 학원 선생님이 나의 사건사고를 알게 되고 모르는 아이들이 나의 욕을 하고 패드립을 하기 일 수였다. 그때에도 관심받고 싶은 감정은 누구나에게 있고 나는 굳이 숨길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하지만 이는 다른 학생들의 생각과는 달랐던 모양이다. 학교에서 배우는 사실은 실제 생활에서 적용하기엔 어려웠던 모양이다. 내가 그리 이상하고 미움받을 만했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사랑이 받고 싶었다. 우울로부터 온 결핍일까? 나는 사랑받지 못하면 죽을 거처럼 굴었고 지금도 역시 그러하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나는 그 시절 사랑받지 못해 고래를 무시했다. 사랑을 갈구하느라 고래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다. 지금은 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를 사랑하는 일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것은 연애를 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생각한다. 남을 사랑하는 것은 나를 사랑하는 거보다 어려웠다. 나를 사랑하지 않았기에 사람들의 시선에 미친 듯이 신경 쓰고 그들에게 어떻게든 사랑받으려고 발버둥 쳤다. 모든 사람이 날 좋아할 순 없다는 것을 알고도 너무 많은 사람이 날 싫어하는 거 같았다. 괴로웠다 왜 이렇게 학교만 다녀오면 지치고 눈물이 나는지 학교에서 활짝 웃고 다녔으면서 내가 더 미웠다. 공부가 하기 싫어 힘들어지는 거 같아 내가 미치도록 한심했다. 고래는 그 순간에도 자신을 이해해 달라고 애원한 것이다. 내가 그 당시 나의 감정을 이해하고 보듬어주고 나를 위한 행동을 더 했더라면 많은 인간괸계에서 상처받지 않았을 텐데 그렇다고 지금 인간관계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이해가 안 간다 왜 왜 왜 계속마음을 주고 상처받는지 어쩌면 지금 글을 쓰는 순간에도 고래는 외치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 고래의 눈을 마주 보지 못했다.



이제는 고2이고 비록 자퇴했지만 아직도 나를 사랑하지 못한다. 이 글 문득 재종학원에서 내 인생의 행복은 죽음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 네이버에서 ‘사라지고 싶을 때‘를 검색했더니 나온 한 글로 인해 작성하고 있다. 이젠 중학교 때의 일은 웃으면서 말할 수 있다. 회복된 것이 아니라 이제는 스스로 가치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눈치챘을지도 모르겠지만 바다는 나의 마음과 정신이고 고래는 나의 우울이다, 우울이라는 감정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감정이다. 그럼 우울증은 뭘까 고민해 봤다. 모두가 우울하면 모두가 우울증일까? 그건 아니었다, 우울증을 겪고 있는 사람들은 에너지가 없는 상태인 거 같다. 난 그래도 나를 지적하고 혼냈다 “에너지? 네가 에너지가 없는 이유는 네가 스스로 우울하다고 생각하니까 무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거고 그러려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알고 있으면서 바뀌지 않으려고 하잖아, 솔직히 이 정도 사건 사고면 네 문제도 있는 것이고 남 탓 할거 없이 언제까지나 우울할 거면 그냥 죽어” 실제로 내 일기장에 적혀있었다. 사실 잘 모르겠다. 왜 알면서도 바뀌지 못하는가, 에너지라는 건 언제까지 바닥일 것인가, 매번 우울을 탓하며 합리화하는 게 맞는지. 고래는 원래 바다에 있었고 바다가 불안정하기에 불평을 토한 거 아닐까. 우울해서 정신이 불안정한 게 아니라 불안정해서 우울한 것은 아닐까. 나는 방법을 알고 있다 분명히 아는데 모르겠다.


"고래야, 나도 너를 인정하고 달래주고 싶었어 근데 미안 진짜 모르겠어."


앞으로 이렇게 감정에 휘둘려 쓴 글이 내 생각을 담을지는 모르겠다

그냥 이렇게 해서라도 고래와 가까워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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