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의 목적

죽음은 왜 고통스러운가?

by 고냥이

"고래야 너는 어떤 삶을 살고 싶어?"


인간의 본능은 생존이다. 기본적인 인간의 본능은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며 고래는 절대로 죽음을 의도하지 않는다. 인간은 고래의 지속성과 파괴성으로 인해 생존욕구를 상실한다. 그렇다면 고래는 부정적은 존재 일까? 고래는 모두의 바다에 존재하고 보편인 우울증 환자들은 고래와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이로 인해 우리의 몸은 고래를 거부하고 고래의 파괴성은 커져만 간다. 나는 알고 있다. 알고 있음에도 아직까지 고래와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그래서 그런 걸까? 아프지 않은 죽음애 대해 의문감을 가졌다.


지금의 나는 딱히 우울감을 느끼지 못한다. 파도가 오늘은 잠잠해진 거 같다. 그러다 보니 안 아픈 죽음은 없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인터넷은 답을 제공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혼자 고민하기 위해 글을 쓴다. 인간은 신경계가 건강하다면 모두 고통을 느낀다. 왜일까? 이는 첫 문단에 나와있듯 인간은 생존본능이 무조건적으로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의 팔목의 상처가 떠올랐다. 정신의학과를 방문했을 때 교수님이 나에게 물었다.

" 고냥이는 죽기 위해 자 1해를 했어? 아님 살기 위해 했어?"

처음 들어보는 질문이었다. 그때는 당연하게

"죽으려고요"

라고 답했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정도로 죽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고작 팔을 몇 바늘 꿰맬 정도의 상처로 인간이 쉽게 죽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어쩌면 스스로를 아프게 함으로써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려고 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울증은 사람의 판단을 흐리게 한다 나도 그러하였다. 내가 사는 건지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건지 살기 싫은 건지 살고 싶은 건지. 자1해할 당시에는 미친 듯이 죽고 싶어 한 판단이지만 어쩌면 내 안의 생존본능이 날 구하기 위해 그러한 선택을 의도한 건지 의문이다.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그럼 고통을 못 느끼는 걸까 생각해 보면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니라고 장담한다. 죽음을 택하는 건 고래와 진솔한 대화를 해보지 못한 채 자 1살 욕구가 생존욕구보다 커졌기에 그런 거 아닐까? 그렇다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잘못한 거 절대 아니다. 그만큼 궁지에 몰렸을 것이고 괴로웠을 것이다. 그래도 한번 선택하기 전에 나처럼 깊게는 말고 자신의 바닷속에 있는 고래를 보듬어 주었으면 좋겠다. 물론 나도 연습할 것이다. 언제 가는 고래와 눈 마주쳐 대화하는 날을 꿈꾸고 있다.


"고래야 너의 목적은 날 살리는 것이지? 아니더라도 한 번이라도 너와 고요한 바다에서 대화 나누고 싶어."


나는 오늘도 살아야 한다. 고래와 대화하고 나의 진정한 가치를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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