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은 어떤 걸까?
고래는 지쳐가는 바다를 보며 SOS를 나에게 보낸다. 파도를 만들고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나에게 도와달라고 외친다.
내가 고1 6월 자퇴하고 나서부터는 주변에는 나처럼 마음이 아픈 친구들이 많았다. 똑같이 자퇴한 친구들을 찾아서일까 아님 서로 같은 아픔을 품은 사람끼리 마음이 맞은 걸까? 나에게 있어 나의 친구들은 너무나도 소중한 존재이다. 그들이 나에게 하소연을 하든 나에게 화를 내던 나는 그들을 이해할 수 있다. 나에게 그들은 빛 같은 존재이고 나의 우울증 극복에 가장 많은 기여를 한 사람은 역시 나의 소중한 친구 연이다
연이는 좀 색다르게 만난 친구이다. 막 자퇴하고 나서는 친구는 필요 없는 존재라고 여기며 홀로 지냈었다. 그러나 아직 피아 나지 않은 꽃에게는 많은 것들이 필요했고 나는 오픈채팅이라는 수단을 통해 나에게 물이 되어줄 친구를 찾기 시작했다. ‘자퇴생 방’이라는 제목으로 톡방을 개설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연이가 들어왔다. 처음에는 만나기 두려웠지만 연이는 너무나도 착했고 나와 너무나도 잘 맞았다. 그리하여 연이를 만나게 되었다. 서로의 첫인상은 매우 웃겼다. 서로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를 착용한 체 광장 한가운데서 만났다. 연이는 어딜 가든 1시간 30분이 걸리는 마법의 마을에 살았기에 우리의 집합소는 홍대가 되었다.
연이와 친해진 지 거의 1년이 되어간다. 우리는 서로의 아픔을 나누고 나는 연이에게 나의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 비록 연이는 자신의 힘든 일을 잘 말하지 않지만 나는 연이가 힘들지 않도록 병원을 소개해주고 입원을 도와주고 연이의 어머니와 전화번호를 나누며 연이가 다칠 때마다 연락을 드렸다. 이런 나날이 지속되다 보니 나는 연이가 나를 부담스러워하까 겁이 났다. 아직도 그 답은 찾지 못했지만 연이는 반대로 나에게 집이 될까 걱정하고 있었다.
나는 약을 맞추기 위해 연이는 자해충동을 줄이기 위해 같은 보호병동에 입원하게 됐다. 처음에는 고등학교 때 못 간 수련회 느낌에 마음이 들떴다. 그러나 나와 다르게 연이는 너무 힘들어했고 나는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매번 연이가 날 부담스러워하진 않을까, 내가 귀찮진 않을까 걱정하며 연이에게 힘이 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연이에게 그런 생각이 있는지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솔직히 연이가 나에게 100퍼센트 짐이 안됬다고 말할 순 없다. 연이는 혼자서 나와의 관계를 생각하고 우울할 때면 매우 극단적이었다. 나는 그런 연이에게 상처받으면서도 그 아이를 이해했다. 나도 그러했고 연이와 지내며 나의 옛 친구들을 대한 나의 태도를 반성하고 그들에게 사과했다. 그렇기에 나는 연이를 더욱이 이해하 수 있다. 연이에게 나와 무조건 친하게 지내라고 강요하지는 않지만 나에게 연이는 너무나도 소중해서 그 아이가 힘든데 굳이 내가 붙잡고 있는데 아닌지 밤을 지새울 때가 많았다. 그런 나와 연이에게 간호사 선생님들은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식으로 말했다. 작은 불씨에 기름을 부은 것이다. 나는 연이가 나에게 이별 통보를 내릴까 무서웠다. 그러나 이 관계는 지속되고 있고 나는 아직도 두렵다.
나는 연이다 주는 시원한 물에 이미 중독되어 버렸고 연이는 나의 꽃향기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는 것이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솔직히 나는 연이가 웃을 수 만 있다면 나의 뿌리까지도 내줄 수 있기에 연이가 나에게 조금만 더 기대어 줬으면 좋겠다.